[Project 당신] 예민한 게 어때서

글 입력 2021.01.0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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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가 뭘까.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형태의 글을 써 왔지만, 자기계발을 도모하는 대학교 교양 강의를 빼곤 나에 대해 적어온 기록은 많지 않다. 일기장, 블로그에도 나 아닌 타인과의 일상이나 그들과 함께하느라 뒤섞여버린 감정들뿐이다.

 

글쎄, 내가 뭘까. 차라리 ‘프로젝트 가족’이나 ‘프로젝트 친구’였으면 조금 더 쉬웠을 텐데.

 

 

 

예민한 게 어때서.


 

어릴 적부터 거의 모든 감각이 예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의 집 핸드폰 벨 소리가 어느 드라마의 어떤 OST라는 건 물론이고, 버스에 탄 사람들이 어느 어느 향수를 뿌렸는지, 저녁은 뭘 먹었는지도 짐작이 됐다. 누군가의 목소리는 국적 불문 평생을 안고 갈 빅데이터처럼 느껴졌다.

 

감각뿐만이 아니었다. 타인의 좋고 나쁜 기분이며 그들의 정신 상태, 눈빛 같은 것들이 종종 눈에 걸리곤 했다. 불행이 걸린 얼굴을 만나면 누굴 달랠 상황이 아닌데도 끝끝내 다가갔다. 이타성이라는 예쁜 마음이 아니라, 지금 가만히 있으면 나중 잠들기 전에 죄책감이 드니까. 좋은 점이라곤 없는 것 같았다.

 

피곤했다. 자다가도 자주 깨고, 잊어지는 게 없으니 과부하가 자주 걸리기도 한다. 향수 매장에 오래 있지도 못하고, 공연을 보고 나오면 머리가 통째로 삶아진 듯 무거워졌다. 불만스러웠다. 감각이 조금 더 가벼우면 편하지 않을까. 왜 늘 남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을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지.

 

 

파리.PNG

 

 

프라하에 지낼 때, 혼자 깨어나 무심코 창문을 열었다. 밖에선 파티가 막 끝난 듯 신이 난 몇몇 사람들이 와인병을 흔들어대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 저마다의 음성에 귀는 열려 있었지만 순식간에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다. 시끄러워 잠에 깼는데 그렇게 평화로운 장면을 만나다니. 잠결이었지만 멍한 상태에서도 컵 안쪽의 물 비린내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예민한 게 어때서. 내가 내 마음에 지적질을 했다.


이후로는 그날 느꼈던 커다란 감각을 기록했다. 그렇게 해서 하나씩 날려 보고자 했다. 그 중 ‘윗집 강아지 발톱 소리가 옛날보다 느려졌다’라 적은 적이 있었다. 우리가 이사를 오던 날부터 마주치는 족족 컹컹 짖어대서 우리 가족의 미움을 샀던, 할머니는 해피라 부르고 할아버지는 럭스라 부르던 강아지였다.

 

두어 달 후부터 강아지 발톱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파트가 아니라 주택이었기 때문에, 마주치고 싶지 않아도 종종 만나곤 했던 해피(혹은 럭스)가 보이지 않았다. 어리숙한 모양새로 주인집 할아버지를 위로했다.


예민한 특징을 장점으로 가지자고 다짐했다. 다른 사람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는 점,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젠가 증인 자리에 서게 된다면(그럴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유익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터무니없지만 그랬다. 증인 자리가 아니더라도, 장점이라 생각하니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 써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효과는 잘 모르겠다. 마음을 바꾸자마자 세상이 뒤바뀌어 다른 이들과의 연결이 뚝 끊겼기 때문에.

 

 

 

환영해 이공이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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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오늘, 파리에 있었다. 살면서 인파가 많은 곳에서 카운트다운을 본 적은 없지만 파리에선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일념 덕분에 일행과 함께 개선문으로 향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지친 카운트다운이었다.

 

여행 도중 만든 영상 자막엔 '환영해 이공이공아'라고 써져 있었다. 올해 코로나 사태를 지나오며 ‘2020 없던 걸로 치자’라는 문구를 상당히 많이 봤다. 환영하던 마음과 없던 걸로 치자는 마음들이 부딪히는 혼란한 시기였다. 그래도, 나는 올해가 소중하다.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나의 주관을 세울 시간이 단 1초라도 있을까 싶을 만큼, 그들의 것을 흡수하고 지내다 보니 알맹이가 없었다. 여행을 마치고 2월에 돌아왔더니 덩그러니 혼자였다. 너무 어색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학과 교수님과 엘리베이터에서 단둘이 조우한 상황보다 난감했다. 내가 나랑 있는데 이렇게, 고장 난 로봇처럼 되어 버리다니. 안 되겠다!


내가 나와 보내는 시간을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자며 무던히 노력했다. 좋아하는 향을 피우고, 글을 쓰고, 외국어를 하나 공부하고, 그간 술값과 커피값에 가려 엄두도 내지 못했던 헤드셋을 샀다. 책을 읽고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주 안정적인 사람이 되는 한 해였다.

 

심지어 타고난 예민한 기질이 아주 조금 무뎌졌다. 아무래도 인풋(Input)이 적어지니 평화를 찾은 것일까? 로마 군단 속 전사 같았던 이전이라면, 지금도 남들이 필요하다는 것과 서둘러야 한다는 것에 휘둘려 냅다 앞으로 달렸을 것이다. 내가 나를 돌보며 ‘꽉 찬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 그래서 나는 2020을 없던 걸로 치고 싶지는 않다.


환영해 이공이일아.

 


[이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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