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답습되는 사랑, 극복되는 사랑 - 내일의 연인들 [도서/문학]

글 입력 2020.12.3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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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작품은 정영수 작가의 단편소설 「내일의 연인들」이다. 정영수 작가는 2014년 창비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하여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단편소설 「더 인간적인 말」과 「우리들」로 젊은작가상에 2년 연속으로 이름을 올렸다. 젊은작가상은 문학동네에서 등단 10년 이내의 신인 작가의 작품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문학상으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젊은 독자들에게 크게 환영받고 있다. 창비신인문학상은 창비에서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등용문으로서, 2018년에는 『일의 기쁨과 슬픔』를 쓴 장류진 작가가 창비신인소설상의 주인공으로 당선돼 대중에 처음 소개되었다. 정영수 작가는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독자들 곁을 머물고 있는 작가이다.


그런데 이렇게 화려한 데뷔와 수상경력과 훌륭한 작품들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있어서 정영수 작가는 그렇게 익숙한 작가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근래 문예지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임솔아 작가나 강화길 작가를 비롯하여 최근 독자들에게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진 작가들의 경우 집필 활동 외에도 에세이나 인터뷰, 특집 기획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통해 독자와 가까이서 소통하고 있다. 작품 외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독자에게 노출되고 있는 이들 작가들과 달리, 2020년 한해 동안 정영수 작가의 인터뷰는 아무래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업 작가가 아닌 탓에 그런 것일 수도, 혹은 작품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그다지 익숙지 않았던 정영수 작가를 나의 글에서 다루게 된 것은, 정영수 작가의 「내일의 연인들」을 꼭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일의 연인들」은 문예지 《자음과 모음》 2019년 여름 호에 처음 발표 되었으며, 문학과 지성사가 선정한 ‘이 계절의 소설’인 『소설 보다 : 여름 2019』에 선정되었으며, 2020년 10월 동명의 단편집 『내일의 연인들』의 표제작으로 실렸다. 말하자면, 발표되자마자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고, 발표된 지 1년 만에 정영수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단편집으로도 발표된 것이다.

 

단편집 『내일의 연인들』을 읽으며, 나는 정영수 작가를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수록작 「우리들」과 「내일의 연인들」은 서로 다른 연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연인들은 서술자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혹은 서술자의 눈에 비친 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타의 구분 없이, 개개의 특별하고 고유한 사랑 이야기는 어쩐지 화자의 경험과 병렬적으로 배치되어 그 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하나의 빛이나 어둠이 되어 화자에게 다가온다. 「내일의 연인들」에 숨겨진 그 의미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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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애가 정안(소설의 주인공)에게 자신의 집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며 소설이 시작된다. 선애는 같은 동네에 살던 6살 많은 누나이고, 그녀가 결혼을 하여 신혼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5년 동안 연락이 끊겼었다. 파경을 맞이하고 매물로 내놓은 신혼집이 팔리지 않자, 집 관리를 정안에게 부탁하면서 정안은 서울 끝자락 산자락 아래의 빌라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정안과 그의 여자친구인 지원은, 교외에서 통학을 하던 정안이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게 되면서 그의 새 보금자리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정안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인내를 목격하며 자란다. 그리고 지원 역시 군인 출신 아버지의 엄격한 규율 아래서 살아왔다. 이러한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건설적인 관계를 이끌어 가려고 한다. 새 집에서 평범한 나날을 보내던 정안은 선애와 만나 집 문제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이야기는 어느덧 다른 방향으로 흘러 선애의 결혼과 파경에 대한 것으로 옮겨진다. 정말로 자신을 사랑해주던 남자를 뒤로하고 선택한 새 남자, 그리고 영원히 행복할 것 같던 신혼과 결국 끝난 관계에 대해 정안은 듣는다. 정안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지원과 공유하지만 지원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


본 작품에 있어서 내가 가장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부모님 세대에서부터 선애 누나 커플을 거쳐 정안에게까지 이어져오는 수많은 연인들의 모습이다. 연인들 당사자의 모습뿐 아니라 주변의 반응 같은 것들까지 소설 내에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다. 정안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언어적, 물리적인 폭력을 가했고, 돈을 이용해 아버지가 사과를 시도할 때 어머니는 거절하지 못한다. 이러한 가정의 모습을 정안의 형은 버티지 못하고 먼저 집을 나가버린다. 부모님의 불화와 그에 대한 형의 부정적인 반응을 정안은 쭉 봐온 것이다. 정안은 지원 역시 평화롭지 않은 가정에서 살아왔음을 전해 듣는다. 유년의 아픔을 간직한 두 사람은 더욱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로를 통해 과거의 불행을 극복하기로 다짐한다.


한편 정안과 6살 차이나는 선애는 약 5년 전에 결혼 생활에 돌입하지만 결국 행복한 생활을 이루지 못하고 파경에 이른다. 선애는 자신을 위해 살신성인하던 전 남자친구를 거절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이때 선애의 선택에 대해, 정안의 가족을 비롯하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치며 선애를 비난한다. 나는 이러한 시선을 무릅쓰고 결혼을 결심한 선애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해보고 싶다. 자신에게 너무나도 잘해주는 남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자를 선택했을 때는, 그 남자와 미래를 함께 해도 괜찮을 것 같은 확신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미래를 함께 견뎌내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신을 생각해주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는 그 낭만적인 태도 이외의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고, 그 특별함을 그 남자가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선애가 파경에 이르고 자신에게 집을 내어준 이 시점에, 정안은 선애가 결혼을 준비하던 그 나이가 되었다. 그때 선애가 그랬던 것처럼, 정안 역시, 선애가 그랬던 것처럼, 함께 있어서 행복한 사람을 만나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생각한다.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잘 이해하고 있고, 앞날을 함께 하고자 하는 잠정적인 동의가 이루어진 두 사람이다. 그렇다면 현재 이들의 모습은, 5년 전 선애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 정안은 선애에게서 결혼 생활의 이야기를 전해듣고서야 그 집안의 가구와 소품들이, 선애와 그의 전남편이 함께 알아보고 조금씩 수집해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선애 부부의 정성과 사랑으로 완성된 그 집에서 행복한 여가를 보낸 정안과 지원의 모습은 그들의 신혼과 얼마나 다른 것인가.


정안이 지원과 함께 누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장면에서 정안은, 자신과 지원이 선애 부부의 ‘유령’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이 ‘유령’이라는 표현이, 그들 연인으로부터 느껴지는 이질감이나 거부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히려 시간을 달리하면서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파경한 커플의 영혼과의 묘한 동질성에 관한 것처럼 느껴진다. 정안과 지원은 각자의 부모와는 피를 공유하고 있고, 파경한 선애 부부와는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함께 미래를 나아가야할 이 어린 연인들에게는 연인으로서 실패한 자들의 이야기가 함께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내일의 연인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계승되고 있는 서로 다른 연인들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부모님(들)의 이야기, 선애의 이야기, 그리고 정안과 지원의 이야기가 직간접적으로 소설 속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개연적인 방식으로 각각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개연적인 연관성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묘한 연결감을 우리 역시 우리 주위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인물들에게서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느 인간도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태어나서 주변과 관계를 맺어 함께 영향받으며 살아갈 뿐이다. 그렇다고 정안과 지원이 과거의 불행한 연인들의 모습을 답습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만 영향 받고 극복하고, 또 다시 영향 받고 또 극복하며 살아갈 것이다. 정안도 그렇게, 선애 부부의 과거를 간직한 ‘유령’의 감각과 감정을 잘 기억한 채로 더 상승된 방향으로 극복해갈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


정영수 작가가 「내일의 연인들」에서 그리고 있는 모습은 일상적은 감각과 감정은 아니며, 그렇다고 픽션상의 비약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의 주변에 머물고 있지만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감각과 감정들을 정영수 작가는 세심하게 포착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사랑은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인 동시에 각 개개인이 자신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경험한 고유하고 특수한 감정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그리는 사랑은 그 보편성과 특수성 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정영수 작가는 사랑의 발생과 좌절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승되어 가는 과정을 세심하게 그려내었다. 그는 진정으로 독자에게 감동을 전달할 줄 아는 작가이다.


이러한 계승이 반드시 사랑의 좌절에 대한 불길함만을 간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서로 다른 커플들의 모습들 사이에 보이는 접점이, 사랑은 물론 모든 연대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정안과 지원 커플이 세상 모든 사랑의 변주를 경험하고 성장해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독자인 우리들 역시,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다양한 사랑의 사상(事象)을 몸소 느끼며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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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수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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