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 - 케빈에 대하여 [영화]

글 입력 2020.12.2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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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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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빨간 토마토로 물든 거리와 사람들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시끄러운 토마토 축제를 누구보다 신나게 즐기고 있는 에바는 당시 여행가였고, 그의 표정과 웃음은 매우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삶은 그가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계획에도 없던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끝나버린다. 자신의 미래와 삶은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사라져버리고, 대신 에바는 육아를 시작하게 된다.

 

원하지 않은 아이였다.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을 때 낳지 않으려 저항하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힘든 육아는 에바를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들었다. 아무리 달래도 멈추지 않는 아기의 울음소리보다, 울음소리를 묻히는 공사장의 소음이 에바에겐 오히려 숨구멍이 되어줄 정도였다.

 

케빈은 이런 엄마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깨달은 듯하다.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케빈은 엄마에 대한 반항을 넘어서 엄마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선 케빈이 ‘사이코패스’라고 명확하게 단정 짓진 않지만, 악랄한 악마처럼 엄마를 괴롭히는 모습은 케빈이 이미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런 케빈의 모습은 에바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홧김에 케빈에 대한 진심을 말하기도 했고, 케빈을 밀쳐 팔이 부러지는 사고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린 아이, 짐이 되어버린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에바는 절대로 케빈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 아이를 두고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했던 에바. 에바는 눈물 나는 노력으로 케빈의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고 어떻게든 잘 키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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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Need to Talk About Kevin



영화의 결말을 끔찍하다. 케빈의 16살 생일이 다가올 무렵, 그는 여동생의 햄스터를 죽이고 동생을 실명시키는 것도 모자라, 마지막엔 아빠와 동생을 죽이고 학교 학생들마저 무차별적으로 살해한다.

 

케빈으로 인해 아이를 잃은 동네 사람들에게 에바는 죄인이다. 집과 차에 빨간 페인트 테러를 당하고, 모르는 행인에게 다짜고짜 뺨을 맞는다.

 

일부의 관객들 역시 케빈이 범죄자가 된 것은 에바의 탓이라며 에바를 비난할지 모른다. 하지만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해서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케빈의 비정상적인 행동에 대해 진작 이야기했더라면 이렇게 끔찍한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성애는 당연하게 주어지는 본능이 아니다. 에바에겐 케빈을 낳았다는 것 말고는 그를 사랑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케빈이 감옥에 간 이후에도 케빈을 찾아갔고 안아주었다. 끝까지 버리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에바의 남편 프랭클린은 어떤가. 케빈은 에바에게 유독 심하게 대했지만 프랭클린 앞에선 천사 같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에바가 케빈에 대해 이야기해도, 에바와 케빈의 사이가 좋지 않은 걸 알았음에도, 프랭클린은 이를 무시하고 방관했다. 케빈이 자신에겐 못되게 굴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로 끝이었다.

 

이처럼 아이를 낳을 준비도 되어있지 않으면서 제대로 피임을 하지 않은 것은 부모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만, 프랭클린에게선 아이와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책임감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흔히 부성애보단 모성애가, 남성보단 여성에게 육아에 대한 책임이 강조된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인지하고 있다면, 영화 속의 인물들, 그리고 관객들은 에바를 욕할 이유가 없다. 에바의 양육과 엄마로서의 역할에만 주목하지 말고,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케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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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결말에서, 케빈은 다른 사람은 모두 죽였지만 그렇게 미워하고 증오했던 엄마만은 죽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감옥에서 에바가 왜 그랬냐며 물었을 때, ‘그 이유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라고 말한 것의 의미도 궁금하다.

 

‘케빈에 대하여’는 스토리, 연출, 연기 등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굉장히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특히 영화의 연출이 정말 기억에 남는다. 토마토, 피, 페인트의 색깔인 빨간색의 시각적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또한 영화의 처음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커튼 장면 역시 에바가 커튼에 다가갈 때의 시점,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 것 같아 아직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잔인한 장면 하나 없이 소름 끼치는 영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황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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