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통에 굶주린 사람들 -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공연]

글 입력 2020.12.2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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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팜플렛에 쓰여진 “모두가 소통을 외치는 불통의 사회,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십니까?”가 제일 적합할 것 같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제대로 된 소통을 이루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내 미정의 말을 무시하는 상호, 상호의 말을 무시하는 수정, 수정의 말을 듣지 못하는 인기. 끊임없이 말이 오가지만, 상대에게 닿을 수 없는 말은 결국 허공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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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과 말을 하면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수정은 옥상에 올라가 새들에게 혼잣말하는 습관이 있다. 그때 옥상을 찾은 인기와 첫 만남이 시작된다. 인기는 몸이 불편하고 말도 쉽게 하기 어렵지만, 수정에게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타인과 소통하는 게 두려웠던 수정은 눈을 가리고서야 인기와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소통을 어려워하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소통 창구가 되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극은 이제 시작이다. 수정은 어느 날 유독 기분이 안 좋았던 회사 부장 상호와 식사를 하고 취한 그를 집에 들이게 된다. 다음날 상호는 수정의 집에서 묶여있는 채로 눈을 뜬다. 수정은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하고, 그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인기는 시체 상태로 집 안에 누워있다.


수정은 친하지도 않은 부장을 왜 집에 계속 묶어둔 것일까? 왜 자꾸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하는 것일까? 수정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하면서도, 상대가 진짜 듣고 있는지는 신경쓰지 않고 자신은 또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다. 마치 상호를 듣기만 하는 기계로 취급하는 것 같다. 심지어 수정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마음에 존재하는 어떤 응어리도 해소되지 않고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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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초반에 곰인형 이야기는 수정의 어린 시절을 상징한다. 엄마 곰은 요리하고, 아빠 곰은 밥을 먹는다. 아기곰은 집으로 돌아와 엄마 곰에게 자신을 버린 거냐고 묻는다. 엄마는 아기곰에게 버린게 맞다며 왜 왔냐고, 돌아가라고 한다. 아기곰이 기억하는 마지막 엄마 곰의 모습은 하늘 위로 계속 올라가는 모습이다. 어쨌든 수정은 아기곰과 엄마 곰이 행복하게 오래 살았다고 말하며 웃는다.


수정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어머니는 남편에게 맞으면서도 수정을 안심시키기 위해 엄마는 맞는 것이 아니라 춤추는 것이니 아프지 않다고 말한다. 수정은 목을 매달아 자살한 어머니를 보고 왜 거기에 매달려있는 거냐고 묻는다.


불안한 가정에서 자란 수정은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친구들 앞에서 소변을 조절하지 못해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학교 친구들에게 어머니와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엄마는 춤을 잘 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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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우울증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애착하는 대상을 상실하고 나서 슬퍼하게 된다. 그리고 계속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 리비도를 자아 리비도로 승화, 탈성화 시키거나 또 다른 대상에 열정을 쏟아붓는 등 슬픔을 완수해야지만 자아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슬픔 작용을 완수하지 못하고 애도에 실패하면 우울증이 발생한다. 우울증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는데, 외부 세계에 관심을 끄기도 하고, 자신을 비난하기도 하고, 자신이 집착하는 대상에 집중해 자기 자신과 대상을 동일시하는 경향 등이 있다.


수정은 슬픔 작용을 완수하지 못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소통을 두려워하고, 사람의 눈을 쳐다보고 말하지 못한다. 한편, 수정이 타인의 목소리를 빌려서 하는 말이야 말로 그녀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다. 예를 들면 상호가 욕을 하면, 수정은 자신의 남편(인기)이 욕 싫어한다고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시체인 인기가 어떻게 욕을 듣고 싫어할 수 있겠는가.

 

또, 수정은 인기에게 정상호 부장을 설명하며 '정상인', 정상호 인간쓰레기라는 별명을 이야기한다. 김대리를 비롯한 회사 사람들이 정상호 부장을 모두 싫어한다고 말하며 회사 사람들의 이야기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 표현한다. 이는 극 초반에 부장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고분고분했던 수정의 모습과는 정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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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은 상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아픔을, 인기를 상실한 아픔을 모두 털어놓고 엉엉 울 수 없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극이 끝나갈 때쯤에는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진정한 소통은 누군가의 기분을 알고, 상황을 이해하고, 필요한 말을 해주고, 상대를 온전히 알아간다는 것. 하지만 누군가를 온전히 알아가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어쩌면 진정한 소통을 바라는 것도 허상일 수 있다.


수정은, 인기는, 상호는, 미정은 그리고 이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매 순간 혼자일 것이다. 소통에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매번 소통에 실패할 것이며, 상처를 입고, 혼자가 되길 다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진정한 소통에 이르고자 하는 그 노력이, 자신을 알아가고자 하는 상대의 관심이 고독한 시간을 견디게 하는 쉼터가 되주기에 우리는 그렇게 소통에 매달리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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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2017년 일번 출구 연극제를 통해 신선한 평가를 받았던 작품으로 새삼스럽게 소통의 문제를 지적하기보다, 재치 있는 상황들을 만들어 비극적일 수 있는 분위기를 위트 있게 웃음으로 풀어가며 왜 우리에게 소통이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2019년 2인극 페스티벌에서 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장태준이 연출을 맡았고, 극단 아리랑 김현준, 김종선, 박영남, 이라이, 권강현 배우와 프로젝트 아일랜드의 배우 최민영이 함께 열연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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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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