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나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아니다

글 입력 2020.12.27 00:0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에 대해 쓰는 건 어렵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하나 어지러운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두 달전부터 우리 집에서 사는 반려견 귤이에 대해서 쓰라고 하는 것은 쉽다. 나와 귤이의 역사는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귤이에 대해서 말해봐!' 라고 했을 때 나는 2달 만큼의 용량을 가진 데이터에서 기억을 수집해올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귤이만큼 어리지 않고, 몇개월이 아닌 몇십년을 살았기 때문에 내 머릿속 데이터란 단순하게 인출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영화 패딩턴에서 패딩턴이 탐험가 협회에 찾아갔을 때 마주한 방대한 기록물들처럼 나의 기억들 역시 상당한 양을 자랑한다. 그래서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항상 긴 고민을 거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페이지에 나를 담아야 한다면 그것은 명료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요즘, 아니 올해 가장 많이 한 생각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지만 거리는 꼭 필요해' 라고 말하는 완벽한 회피형 인간이다. 그리고 이게 나를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아니게 만든다.

 

회피형 인간은 위험에서부터 본인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회피를 사용한다. 위험을 피한다니. 모든 인간이란 위험을 피하도록 설계된 것 아닌가?

 

인류의 조상들도 야생동물을 마주했을 때 나와 다를바 없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질 것 같으면 냅다 도망가기. 맞는 말이지만 이들의 도망은 '질 것 같으면' 이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행위다. 상대가 나보다 훨씬 강하기에, 내가 가진 무기들로는 상대를 제압할 수 없을 것 같은 판단하에 위험을 피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나의 회피란 '무서워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반응이다. 사람한테 거절 당하는 것이 나에게는 무서운 감정이고, 나의 약점을 보여버리는 것 역시 불편하고.

 

그래서 나는 나의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내 마음 속의 안전 장벽을 세워두었다. 그래서 완벽한 내 모습만 보이려 했다. 가끔가다 실수로 내비치는 나의 약점은 너무나도 부끄러운 나머지 사람들이 나에게 완전히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예전에는 나의 성격적인 결함을 인지하기 보다 남이 나에게 어떤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 메커니즘 하에서 나는 언제까지나 이해를 받아야 하는 존재였고 상대는 이런 내게 사과를 해야만 하는 존재에 머물러있곤 했다.

 

그러던 중 최근 내가 얼마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한 번 있었다. 상대는 내가 많이 이기적인 사람인 것 같다고, 나의 이기심으로 인해 마음이 많이 다쳤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나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정신을 차리고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다.

 

소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모양새였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상대를 잃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과정이기도 했다. 그제서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나는 생각보다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큰 사람이었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린 나머지 시야가 좁아져 있어서 상대를 보지 못했다고 하면 적절한 설명이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131.jpg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것 같다 라고 문장을 마치는 것보다 ~이다. 라고 확신하는 말투를 쓰는게 더 좋겠다. 나는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확신을 하는 것은 최근 본 어떤 소설 때문인데, 정영수의 '내일의 연인들'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에는 나처럼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이 등장해서 사랑을 한다. 사랑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힘들게도 하고, 결국 관계에 끝을 내기도 한다. 정영수의 실패한 연인들. 그들은 자신을 미성숙하다고 느끼며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소설을 통해서라도 그래보려 애쓰는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실패의 이야기지만 차갑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성숙해지려는 마음 자체가 차가울 수 없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처럼.

 

그래서 나 역시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간다고 믿는다.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만이 나는 나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더 예민하고 명민하게 사람을 바라보며 사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컬쳐리스트.jpg

 

 

[최서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