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본 적 없는 길로 향하는 선율 [영화]

영화 <허비 행콕 : 무한한 가능성> & <그린 북>
글 입력 2020.12.26 19:2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trans]herbie hancock.jpg

 

 

피아니스트에 대한 두 작품을 만났다.

 

그중 먼저 만난 작품 <허비 행콕 : 무한한 가능성>(Herbie Hancock: Possibilities, 2006)은 수십 년 동안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하여 탐구해온 아티스트의 한 지점을 포착했다. 허비 행콕의 2005년 앨범 [Possibilities]에 대한 일종의 제작기 같은 이 다큐멘터리는 장르 불문 다양한 아티스트와 함께 (한 곡의 음악이 완성되는 것으로 대변되는)가능성을 새로이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가 거침없이 새로운 상황과 의견에 반응하고 맞닥뜨리는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그룹 피시(Phish)의 리드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트레이 아나스타시오는 작업을 위해 만난 허비 행콕에게 과거 그와 그의 동료들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 이를테면 [Bithches Brew]나 [Headhunters]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앞으로 작업하게 될 음악에 대한 논의를 던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허비 행콕의 시선이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그는 부정에 가까운 긍정의 대답을 한다. ‘방금 들은 대로 해볼게. 그러려고 온 건 아니지만.’ 트레이 아나스타시오가 제시한 청사진은 일종의 배려라고 볼 수 있겠지만 허비 행콕이 원하는 것은 다른 두 세계의 가감 없는 만남이었다.

 

설령 방법과 접근법에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는 어떤 아티스트와 만나도 매번 생경했을 그 만남 자체의 원동력을 믿는 모습을 보여준다. 음악적인 소통 이전에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새로이 만나는 ‘사건’이기에, 그 사건이 가져다주는 자신의 순수한 응답을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의 반응에 대해서도 존중하며 결과적으로 이 응답들을 실마리 삼아 음악적으로 풀어낸다.


데미안 라이스와 리사 해니건과의 작업에서 허비 행콕은 그들에게 블루스 가수의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영화 전체에 걸쳐 허비 행콕은 이 새로운 만남들을 통해 전형성을 탈피한 재즈적인 요소, 즉 즉흥이나 새로움을 뜻하는 ‘재즈’를 만들어나간다.

 

영화는 이 작업들을 보여줌과 동시에 허비 행콕이 과거에 선구한 음악적 행보에 대해서 인터뷰와 클립을 통해 보여준다. 구성이 비범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허비 행콕이 대하는 음악이라는 다면체의 몇 가지 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trans]그린북.jpg

 

 

다음으로 만난 작품은 <그린 북>(Green Book, 2018)이었다.

 

1962년 피아니스트 돈 셜리가 그의 트리오 구성원과 함께 당시 여전히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남부로 순회공연을 감행하고, 돈이 토니 발레롱가라는 나이트클럽 경호원을 운전사로 고용한다. 그 여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담은 이야기다. 영화의 제목인 ‘그린 북’은 흑인 여행자들이 여행 중 발생할 수 있는 (대개 차별에서 기인하는)문제들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며 묵을 수 있는 숙소 등을 안내한 책자를 의미한다.

 

영화에서도 이 ‘그린 북’이 등장하고, 운전사 토니 발레롱가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시선에 변화를 얻게 되는 서사에서 상징적인 요소로 나타난다. 법적으로는 차별이 금지되었다고 하나 유명무실하고, 차별이 아닌 구별이라는 비열한 명분의 폭력이 벌어지는 시대에서 그린북은 유색인종이 사회에서 겪는 불안전에 대한 반증이 되기도 한다.


돈 셜리는 영화에서 나타난 것처럼 클래식에 대한 스스로의 가능성을 놓고 싶지 않아했지만 흑인의 클래식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의 차별적 정서에 좌절을 느낀다. 그는 대신에 클래식이라는 음악적 기반을 뿌리 삼아 블루스나 소울(‘Georgia On My Mind’, ‘Blues In B Flat’)이나 ‘Round Midnight’, ‘Body and Soul’, ‘But Not For Me’와 같은 재즈 스탠더드 곡을 탁월하게 선보인다.

 

돈 셜리 트리오는 일반적인 재즈 트리오와는 다른 피아노-첼로-더블 베이스 구성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뿐만 아니라 돈 셜리는 오르간 연주곡을 작곡하고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그의 다양한 재능과 노력이 인종이라는 있어서는 안 될 벽에 부딪혔다는 것은 개탄스러운 비극이다. 하지만 그가 그런 굴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세계를 지키며 스스로와 그 주변에 음악 내외적으로 미친 영향은 영화에서 볼 수 있듯 한 명의 작은 발걸음이 되고, 동시에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어떤 행동이 따라야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영화에서 돈 셜리가 뉴욕에서 남부로, 아래로 향하는 길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침잠이며, 더 당당히 사회와 자신을 맞닥뜨리기 위한 방향임에 분명하다.

 

 

 

조원용 컬처리스트.jpg

 

 

[조원용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2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