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낙태죄를 바라보는 입체적인 시각 [도서]

글 입력 2020.12.25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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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기 전, 낙태(落胎)라는 용어는 ‘태아를 떨어트린다’는 의미로, 임신한 여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담겨 있어 ‘임신중단’ 혹은 ‘임신중지’등의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만, 편의를 위해 더 많이 알려진 용어인 ‘낙태’를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합니다.

 

 

작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현 낙태죄 처벌의 규정이 헌법을 위배하여,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2020년인 올해 말까지 정부는 낙태법을 개정해야 한다. 2020년 10월 정부는 개정안을 발표하였지만, 새해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지금까지 아직도 정식으로 개정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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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낙태여행]

출판사: 봄알람

지은이: 유우니게, 이두루, 이민경, 정혜윤

발행년도: 2016


 

내가 낙태에 관해 처음 관심 갖게 된 계기는 우연히 책 [유럽낙태여행]을 읽은 것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낙태’라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은 오로지 태아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게 된 작은 생명을 인간의 손으로 꺼트린다는 것이 잔인하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이 생각은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임신과 출산에 관해 공부하고, 난자와 정자에 불과했던 것이 하나의 인간이 되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을 자세히 알게 되며, 낙태라는 것이 더욱 잔인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럽낙태여행]을 읽고 난 후, 낙태죄로 인해 괴로워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와 낙태죄에 얽힌 여러 역사, 정치적 이슈를 알게 되며, 태아에게만 맞춰졌던 초점이 다른 곳에도 옮겨지게 되었다.

 

조금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니 낙태라는 것이 단순히 잔인하다고 느껴져서 처벌해도 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낙태를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맘대로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다.

 

 

 

그 여성들은 결코 그들이 원해서 낙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의견 중엔 항상 이런 의견이 있다. ‘낙태가 법적으로 허용되면 무분별하게 임신하고 낙태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태아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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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를 경험한 여성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잠시 태아에게만 맞춰진 초점을 돌려, 낙태하기로 결심한 여성에게 집중해 보자. 그 여성은 낙태한 사실이 들킨다면 법적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낙태 수술이 본인의 몸에 부담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자신이 지우고 싶어 하는 것이 자신이 만들어 낸 하나의 생명체라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으며, 실제로 낙태를 경험한 많은 여성들이 죄책감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더욱이 낙태를 완전히 금기하는 사회에서 낙태를 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낙태를 결심하는 이유는 원치 않는 아이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가 앞서 말한 것들보다 더 크고 무섭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낙태가 불법이지만 병원에서 암암리에 수술을 받고 있다고 하자, 마르틴은 즉각 “위선이네”라고 내뱉었다...

 

- [유럽 낙태 여행], 제1장 프랑스中

 

 

낙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면, 계획하지 않은 아이가 생겨도 그 아이를 맘 편히 낳고 행복할 수 있는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그 누가 아이를 지우고 싶어 할까?

 

그런 사회를 만들어주지는 못할망정,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불행해지는 사회에서,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낙태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여성의 책임으로만 돌려 버리고, 여전히 음지에서 낙태가 횡행하고 있음에도 모른 척하는 한국의 법에 대해,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단체 활동가 마르틴은 “위선이네”라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낙태죄, 그사이 외면당한 여성의 인권



[유럽낙태여행]에서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낙태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정치적 혹은 종교적 이유로 낙태를 금기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낙태를 할 권리를 얻어내었는지 혹은 권리를 얻어내기 위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한국의 낙태죄에 대한 역사를 간단히 짚어 보려고 한다.


조선 시대에선 태아의 권리가 지금처럼 중요하지 않았다. 태아는 여성의 부속물로 보았으며 낙태를 한 여성에게 국가에서 벌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서양식 형법인 ‘조선형사령’이 적용되며 최초로 낙태를 처벌하는 법이 생겼다. 이 법에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낙태하면 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후 1953년, 일본식 낙태죄를 폐지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기독교의 반발로 대한민국 헌법에 정식으로 낙태죄가 제정되었다. 1973년 모자보건법이 시행되며 일부 낙태가 허용되었다. 그리고 2019년 헌법재판소에서 드디어 낙태죄가 ‘헌법 불합치’판결이 났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건은 1973년 일부 낙태가 허용된 일이다. 여성단체가 활약하여 일부 낙태의 권리를 얻어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 법이 제정된 이유는 당시 경제개발계획과 가족계획사업을 밀고 있던 정부가 인구정책을 펼치기 시작해서였다. 여성이 낙태할 권리에 관한 법이 여성의 행복이나 윤리적 이유가 아닌, 정치적 이유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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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낙태가 허용되며,

여아낙태의 비율이 높았던 시대의

인구정책 포스터


 

만일 국가가 재생산 능력을 통제할 수 있다면 강력한 정치적 도구를 손에 넣는 셈이 되겠죠. 인구 통제를 통해 정치적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면에서 낙태를 죄로 규정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 [유럽 낙태 여행], 제 2장 네덜란드中

 

 

 

마치며



2020년 10월 정부는 낙태법에 대한 개정안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임신 14주까지는 특별한 사유 없이 임신한 여성의 의사에 따라 낙태 여부를 결정할 수 있으며, 임신 15주부터 24주까지는 기존 모자보건법상 사유나 사회적, 경제적 사유가 있으면 낙태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에 여성단체는 낙태죄를 전면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이것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낙태죄 전면 폐지의 의미는 ‘낙태를 하자’는 것이 아닌, ‘낙태를 처벌하지 말자’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낙태를 결심하는 여성들은 낙태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낙태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이미 낙태를 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더는 낙태를 하지 말라고 처벌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국가가 해야 할 것은 낙태를 처벌하는 것이 아닌, 낙태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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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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