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세상에 절대 없을 자소서 쓰기

글 입력 2020.12.20 13:4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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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기소개 및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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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고 세계문화예술경영이라는 걸 이중전공하고 있다. 배운 지 4년째가 돼가지만 사실 1 전공인 독일어는 여전히 잘 못 한다. 전공 얘기를 꺼낼 때마다 누가 시켜 볼까 봐 마음이 철렁하는 건 처음 배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독일어를 전공해서 얻은 유일한 업적은 덕분에 독일로 파견학생을 다녀올 수 있었다는 것이고, 그렇게 간 유럽에서 여행도 실컷 다니고 미술관도 많이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다녀오면 언어가 많이 늘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5개월은 어학을 늘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는 것만 깨닫고 돌아왔다. 그래도 그때의 경험으로 독일어를 전공한 것을 더 이상은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이중전공에 대해서는 몇 번의 이런저런 면접경험을 통해, 면접관의 웃음을 유발하는 이름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들 어떤 전공인지 궁금해하지만 나는 예술경영 정도로 해석한다. 그런데 이제 거기에 세계적인 것과 문화를 더한…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예술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어서, 남들이 취업을 걱정할 때 야심 차게 선택한 전공이다.

 

그래서 애정이 많았지만, 전공과 진로에 대해 실망과 좌절도 많이 하면서, 애증의 존재로 거듭났다. 대학생 시절 동안 영화, 공연, 전시처럼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이론적으로, 실무적으로 공부해봐서 좋았다. 이게 내 전공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 될 것 같다. 정말로 후회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나의 애매한 전공이, 그걸 설명하고 있어야 하는 나의 애매한 상황들이 야속할 때가 많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최근 가장 큰 관심사가 취업이기 때문이다. 취업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빽빽하다. 다음 학기가 막학기고 내년에는 졸업인데,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태생이 계획 중독자인 나의 삶에 이렇게 무계획하고 거기다 대책 없는 시기는 없었다. 하고 싶은 것만 잔뜩 해온 나의 대학생활은 어느 줄에 꿰어도 애매한 목걸이 같았다. 즐겁고 보람찼던 대학생활이 초라하게 담긴 자소서를 들여다보니 아쉽고 속상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자소서를 한 편 써보고 싶었다. 내가 느꼈던 초라함과 아쉬움에 대한 보상으로 솔직하고 꾸밈없는 이야기를 쓰는데 글자 수를 낭비해보고 싶었다.

 

 

 

2. 핵심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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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이다.

 

내가 예술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되었던 데에는 결정적인 몇몇 순간들이 있었고 나는 그런 얘기를 꺼낼 자리가 있을 때마다 그런 순간들을 언급해왔다. 그러나 좀 더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예술에 대한 애정의 기저에는 열등감이 깔렸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질투나 부러움 같은 것. 가지지 못하더라도 겪어보고 싶고 같이 맛보고 싶은 욕심 같은 것이다.

 

나는 좀 바른 사람이긴 하지만 딱딱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다. 인생을 언제나 모범생처럼 살았지만, 굳이 그러려고 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나는 원칙주의적이고 규칙을 어기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또 뭐든 계획하고 생각한 대로 되어야 직성이 풀린다. 덕분에 정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그런 것이 편안했던 것도 있다. 그렇지만 항상 그런 내 모습이 답답하고 싫었다. 내가 가진 틀은 스스로에게도 목 막히고 지루했다.

 

예술은 정확하게 내가 꿈꾸던 이상향이었다. 이전에 한 독립 예술 축제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을 때, 거기 있는 사람들의 자유롭고 열정적인 에너지에 감탄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 저렇게 될까. 나도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밝고 강력한 에너지에 진심으로 동화되고 싶었다. 그래서 동아리도 대외활동도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평소의 나에게 어울리는 법한 걸 한 게 아니라 재밌고 좋아 보이는 걸 했다. 덕분에 드럼도 치고 연극 무대도 만들고 페스티벌도 다니면서 즐거웠지만, 동시에 나는 그다지 예술적이고 자유로운 것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니까 나의 대학생활은 열등감에서 비롯된 에너지로 실컷 이것저것 해본 뒤, 역시 맞지 않는 옷임을 깨닫는 비효율적이고 피곤한 과정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뭐든지 예상대로 되어야 좋고 새로운 게 부담스러운 나는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의 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가진 사람들을 동경하며, 내 능력 밖의 많은 것들을 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열등감은 내가 새로운 걸 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큰 능력이다. 비록 별로 멋있어 보이진 않더라도 말이다.

 

 

 

3. 장단점


 

나의 장점은 성실함이다. 사실 너무 진부해서 이 단어를 선택하고 싶지 않지만, 별도리가 없다. 성실하다는 건 내 유일한 장점이다. 그 외 특별히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것도 없고, 남들보다 잘났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 대신 성실함은 언제나 기본 옵션처럼 탑재되어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몸 부서지게 열심히 하는 것만은 자신이 있는데, 무슨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단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내 성에 차지 않아서 그렇다. 덕분에 일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모든 일을 같은 강도로 하는 바람에 체력이 바닥나서 몸져누울 때가 많지만, 뭐든 열심히 하다 보면 남는 게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아직도 품고 있다. 성실한 건 유일하게 잘하고 자신 있는 거니까, 언젠간 그 덕을 보고 싶다.

 

단점은 걱정이 많다는 것이다. 이건 나의 가장 솔직한 단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걸 마무리하고 언제 시험공부를 다 끝낼 수 있을지 걱정을 하고 있다. 뭐든 정해진 대로 계획한 대로 잘하려고 애쓰다 보면 걱정이 마를 새가 없다. 알면 알수록 세상에는 예측하고 계획할 수 없는 게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사실 성인이 된 이후로 내 예상대로 흘러간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나의 전공, 동아리와 파견학생, 심지어는 내가 듣는 음악의 취향까지 예측은 맞아 들어간 게 없다. 가뜩이나 걱정이 많은 내가, 걱정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산다. 나의 목표는 죽기 전에 걱정 없고 편안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생각한 것과 다르게 돌아가도 여유 있게 즐길 줄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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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무리하며,

 

나의 짧은 경험에 의하면 자소서는 이 글처럼만 쓰지 않으면 된다. 어떤 항목은 결론이 없거나(!) 두괄식 서술을 지키지 않았다. 장단점이든 뭐든 저렇게 대책 없이 솔직하게만 적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나에 대해 가장 꾸밈없는 소개를 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중에 또 자소서를 쓰느라 머리를 쥐어뜯을 때, 오늘이 생각난다면 조금 더 즐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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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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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제메리
    • 저도 비슷한 상황, 비슷한 고민이 있어서 공감하면서 읽어내려왔어요. 대학 생활이 맞지 않는 옷들을 깨닫는 번거로운 과정이었다는 점 너무너무 밑줄 치고 싶은 문장이에요. 예상치 못하게 지금까지의 인생이 흘러왔듯이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즐거운 일들로 가득하셨으면 좋겠어요! 신기한 정도로 제 상황과 겹쳐서,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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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경원
    • 제메리안녕하세요! 저의 부족한 글을 읽고 공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솔직하게 꺼낸 제 이야기가 누군가의 공감을 받는다는 건 특별하고 그자체로 위로가 되는 일인 것 같아요.
      따뜻한 응원도 감사드립니다. 읽으면서 너무 기분좋고 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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