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여자는 왜 사이코패스여야 했는가 [영화]

영화 나를 찾아줘(2014)에서 나타난 가부장제의 전복
글 입력 2020.12.2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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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가는 완벽한 커플 닉과 에이미. 그런데 결혼 5주년 기념일 아침, 에이미가 실종된다. 유년시절 어린이 동화 시리즈 ‘어메이징 에이미’의 실제 여주인공이었던 유명인사 아내가 사라지자 세상이 떠들썩하다.

 

한편 경찰은 에이미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숨겨뒀던 편지와 함께 곳곳에서 드러나는 단서들로 남편 닉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미디어들이 살인 용의자 닉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기 시작하고, 시간이 갈수록 세상의 관심이 그에게 집중된다. 과연 닉은 아내를 죽였을까?

 

 

여기까지가 소개된 영화의 줄거리다. 나는 영화에 대한 내 의견이 좀 더 원활하게 이해될 수 있도록 이어지는 뒷이야기를 마저 적겠다.


 

*

아래의 내용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부 아내 에이미가 닉을 살인범으로 몰아가기 위해 파 놓은 정교한 함정이었다. 사실 에이미는 살아있다. 에이미가 왜 남편을 감옥으로 보내버리기로 결심했는지 그 이유가 이어지는 에이미의 독백에서 나타난다.

 

하버드 박사 출신의 유명한 잡지의 에디터 에이미는 어느 날 파티에서 신문 기자 닉을 처음 만났다. 사실 에이미는 항상 부모님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인 완벽하고 사랑스러운 ‘어메이징 에이미’와의 간극에서 버거워하는 중이었다. 그런 에이미에게 닉의 사랑은 더욱 온전히 자기 것으로 느껴졌을 것. 에이미는 닉과 바라던 열렬한 연애 후 결혼을 한다.

 

하지만 결혼 후 경제 불황이 오고 둘 모두가 실업자가 되면서 사이가 점점 어긋나게 시작하는데, 에이미가 자신의 돈을 상의 없이 부모님에게 빌려준 다음부터 그 상황이 더 악화된다. 에이미는 이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닉은 집에 틀어박혀 에이미의 돈을 쓰고 게임만 해댈 뿐이다. 닉은 열등감을 견디지 못하고 에이미의 인격을 서서히 무너뜨리며, 에이미를 대체 가능한 소모품 중 하나 쯤으로 취급한다. 정말로 에이미가 겪고 싶지 않았던 최악의 결혼생활이었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가 암에 걸리고, 에이미와 닉은 간호차 닉의 고향 미주리로 이사를 가게 된다. 닉은 고향에 와서 좋지만 에이미는 갑자기 겪게 된 시골 생활과 외로움으로 우울하다. 미주리에는 에이미의 친구도 가족도 직업마저 없으니까. 에이미가 전 재산을 털어 남편과 시누이 마고에게 술집을 내주자, 그곳에서 닉은 술을 마시며 하루 종일 에이미의 욕을 할 뿐이다.

 

닉이 에이미를 필요로 하는 경우는 그가 잠자리를 원할 때가 전부다. 그리고 마침내 에이미는 19살 난 어린 제자와 키스를 하는 닉을 발견한다. 잔소리를 늘어놓는 귀찮은 에이미를 대신할 새로운 대체품을 찾아낸 닉.

 

그리고 에이미는 복수를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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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개봉한 영화다. 개봉 이후 영화를 미디어와 이슈, 대중에 대한 관점으로 분석하는 평론들이 많았다. 나는 영화의 조금 다른 면을 주목했고, 그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영화 관련 관람객 평점에는 에이미가 너무 소름 돋는다, 저런 여자랑 사는 남자가 참 불쌍하다와 같은 의견이 대다수였다. 착한 남자가 사이코패스 잘못 만나서 인생 망쳤다는 식의 의견도 존재했다. 물론 에이미의 복수과정이 치밀하고, 잔인하고, 너무나 똑똑하기 때문에 그리고 결국 최대피해자는 남편이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항상 누가 더 나쁜지 결론 짓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남편의 손을 들어준다.


여기서 에이미의 복수 이후를 간단히 언급하자면, 에이미는 남편을 살인 용의자로 만든 뒤 다른 곳에서 신분을 감추고 지내다 친하게 지내던 이웃에게 돈을 전부 빼앗긴다. 살길이 없어지진 에이미는 20년간 자신을 짝사랑하던 부자 전 남자친구 데시에게 연락해 그의 별장에서 살게 된다. 하지만 데시의 집착이 점점 심해지자 그를 살해해버리고, 데시가 자신을 강간했으며 거기서 도망쳐 살아 돌아온 것처럼 꾸며 닉에게 돌아간다.


남편을 살인 용의자로 몰아세우고 다른 남자를 죽여 버렸다. 그런데 그 중에 간간히 통쾌하다는 리뷰가 있더라. 물론 그 후기 밑에는 미친 여자의 행동을 지지하다니 너 혹시 사이코패스 아니냐 등의 리댓이 꼭 달려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실 나도 영화에서 분명히 강한 통쾌함을 느꼈다. 에이미의 살인이 아주 근거가 없는 행동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다. 그렇다고 내 의견이 에이미의 모든 행동을 용납한다는 뜻이 아니며, 살인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도 아니니 너무 불쾌해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


그러면 영화를 보는 우리가 (특히 일부 여성들이) 그 ‘끔찍하고 교활한’ 에이미의 행동에 통쾌함을 느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에이미가 복수한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 볼 만 하다. 데시와 닉, 그들이 정말로 선량하며 불쌍하게 여길만한 존재인가?

 

우선 에이미가 죽인 전 남자친구 데시. 그는 무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에이미를 짝사랑 해왔다. 도움을 청한 에이미를 받아준 그는 집 안의 수없이 많은 감시카메라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수 있다. 데시는 에이미에게 옛날의 예쁘고 날씬했던 에이미로 돌아가라며 새 옷을 건넨다. 글쎄, 과연 이게 온전한 사랑이고, 보살핌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사랑을 가장한 집착이며 지배다. 그렇다면 에이미의 살인이 정말로 자신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고마운 이를 죽여 버린 배은망덕한 행동인가도 다시 생각할 만하다. 아니, 사실은 어느 정도 이유가 있다.


남편 닉 또한 여성 혐오적 인간의 전형이다. 닉은 에이미가 차려준 바에서, 집에서, 차에서 돈을 써대며 어린 제자랑 놀아나고, 동시에 에이미에게 열등감을 가져 에이미의 자아를 짓밟는 사람이이다. 그는 항상 에이미에게 일정한 자아상을 요구한다.


에이미의 똑똑함과 잔인함에 그들의 추악함이 묻힐 뿐, 에이미가 아무리 사이코패스라고 해도 이 모든 상황과 그녀의 복수가 그저 미친 여자의 행동으로만 치부되기에는 안타깝다. 물론 에이미의 행동은 과하다. 하지만 내 얘기는 에이미의 행동이 논리가 없지 않다는 말이다.

 

*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보통의 결혼생활은 여성이 약자로 그려진다. 어떤 의미에서냐면 가벼운 예능에서라도 ‘결혼은 구속이다’, ‘결혼을 후회한다’같은 표현들을 하는 주체들은 주로 남성이다. 실제 부부 중 외도를 하거나 성매매를 하는 사람도 남성의 비율이 현저하게 높다. (이는 조사 결과 그렇다) 여성은 주로 외도를 감내하는 사람, 식어가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위치로 그려진다. 그리고 영화에서 에이미는 그 수많은 여성들처럼 남편의 무관심과 외도에 지쳐있다.


그러나 그 수동적인 여성상을 정통으로 맞받아치는 존재 또한 에이미다. 이는 지금껏 매체가 보여주는 여성의 한계, 즉 수동적으로 사랑을 받는 대상을 넘어섰다는 의미에서 여성들에게 근본적인 통쾌함을 부여할 수 있다. 에이미는 불쌍한 피해자로 남아있지 않으며, 남성성에 대해 조금은 극단적으로 반항한다. 어떻게든 사랑을 쟁취하고 (그것이 정말 사랑인지에 관련해서는 의구심이 들지만) 게다가 완전히 굴복시켜버리는 것. 지금까지 접해왔던 미디어와는 정 반대의 상황이다.


사실 에이미 같은 소시오패스가 현실세계에 얼마나 있겠나. 에이미는 영화 속에서나 존재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남성의 전형은 비교적 흔하다. 결혼 생활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 말이다. 아내를 많이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찬양받는 남성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는 게 그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니 에이미를 지지하는 여성들은 미치지 않았다. 현실은 영화와 정 반대이니까.


에이미의 똑똑하고 완벽한 복수도 통쾌함의 원인 중 하나다. 우리는 항상 복수와 관련된 컨텐츠를 보면서 제대로 된 복수를 바라기 때문이다. 에이미의 복수는 완벽하다. 에이미가 결국 남편에게 돌아간 것이 닉에게는 완전한 복수가 아닌가. 에이미는 여태껏 닉이 에이미에게 그래왔던 것처럼 닉을 조종할 것이고, 닉은 열심히 ‘착한 남편’을 연기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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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쿨 걸’에 대한 대목이다.

 


쿨한 여자. 남자들은 ‘쿨’이란 단어를 칭찬으로 쓰지. ‘그 여자 쿨해’ 쿨한 여자는 섹시해. 쿨한 여자는 잘 맞춰주고, 쿨한 여자는 재밌어. 쿨한 여자는 남자한테 화도 안내. 그저 사랑스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남자 거시기에 입을 갖다 대지. 스타일도 남자 취향에 맞춰. 저 여자의 남자는 변태 만화를 좋아하겠군. 영계를 밝히는 남자라면 그 애인은 풋볼 얘길 하며 후터스에서 버팔로 윙을 먹지.

 

닉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쿨한 여잘 원했고, 난 그이한테 맞춰주려고 애썼어. 음모를 다 밀었고, 아담 샌들러 영화를 보며 캔맥주를 마셨고, 차가운 피자를 먹고 몸매를 유지했어. 원할 때마다 자줬고 그 순간에만 충실하면서. 전부 다 맞춰줬다구. 물론 재밌을 때도 있었어. 닉이 나의 새로운 면도 일깨워줬지. 편안함, 유머, 안락함. 하지만 난 그를 똑똑하고 샤프하게 만들었어. 내 수준에 맞는 남자로, 내 이상형으로 완전히 뜯어고쳤지.

 

우린 겉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커플이었어. 행복하지 않으면 같이 살 이유가 없잖아? 근데 닉이 게을러졌지. 더 이상 내가 결혼한 남자가 아니었어. 맹목적으로 자기를 사랑해주기를 원했고, 빈털터리로 날 이 촌구석으로 데려웠고, 자긴 젊고 발랄한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 쿨한 여자. 닉이 날 망치고 행복하게 살게 놔둘 줄 알았어? 어림없는 소리.

 

 

이 대목은 원작자가 직접 각색한 부분이고, 그것은 이 대목이 꽤 의미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에이미의 반전이 드러나는 영화의 시작점인 동시에, 주도권이 뒤바뀌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남성중심적인 세상은 특정하게 정의된 여성을 원한다. 그리고 그 특정한 여성들은 모든 것을 남성의 요구에 맞추지만 여성은 결국 섹스의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 그러나 에이미는 이 장면을 시작으로 그 전형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관계의 우위를 점한다. 가부장적 체제의 전복이다.


“여성 캐릭터가 샤워를 하는 도중에 핏물이 흘러내리는데, 그 피가 여성 본인의 것이 아니었던 경우가 미국 영화사에 몇이나 있었나.”

 

 

[신지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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