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트레이트3 [사람]

한발 뻗어 디딘 그곳에서 스트레이트는 열린다.
글 입력 2020.12.1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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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라는 펀치를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벌써 세 번째이다. 그런 중 다시금 들불처럼 퍼지는 역병으로 인하여 체육관과 멀어진 지가 꽤 길어졌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코로나가 `발발`한 이래 줄곧, 운동할 때에는 마스크를 쓰곤 했었는데 그 갑갑한 기분이라도 지금은 좀 간절하고, 뭐 그렇다. 오늘은 그때의 기억들을 더듬어 글을 이어 나가야겠다.


체육관에 들어갈 때면 체온을 측정하고, 명부를 작성하고, 손을 소독한 다음 마스크를 단단히 여미어야 한다. 들어가면 다 익숙한 얼굴들, 어찌나 익숙하던지 눈만 보아도 그 입에 걸린 미소까지 훤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하나 없다. 그래서였을까, 다행히 우리 체육관에서는 나쁜 소식이 들리오지 않았다.


마스크를 단단히 여민 채로 몸을 풀고, 거울 앞에 자리해 섀도우*를 하고, 샌드백을 조금 치다가 보면 마스크 안쪽으로는 금세 땀이 차오른다. 내 땀의 맛은 짠 줄로 알고 있었다마는, 그것은 참으로 짠맛이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감각을 곧 겪게 된다. 그래서 여름보담 겨울이 운동하기 퍽 좋았다.


* 섀도우 : 섀도우 복싱의 준말. 거울을 앞에 두고 허공에 펀칭을 하며 자세를 바로잡는 행위.


마스크가 땀에 푹 젖기 전까지는 글쎄, 숨 쉬는 데에 크게 지장이 없다. 가끔 헐떡이는 호흡에 짠맛이 배어나는 정도. 그러나 푹석 젖은 마스크로는 통기가 잘 안 되어서, 이래저래 곤란한 일이 생긴다. 그래서 샌드백을 칠 때 조금 천천히 치거나, 땀 식힘을 빙자해 노닥거리는 경우가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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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페이스대로 찬찬히 쉬어갈 수 있는, 샌드백과의 사정이 이렇다. 그러나 내 오늘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은 `스파링`에 대한 것, 스파링은 참 여러 의미로 숨 막히는 짓이다. 3분 3라운드엔 쉬어감이 없기에. 땀에 완전히 젖은 마스크로는 산소가 투과되지 않는다.

 

요즈음엔 스파링을 하려 해도 헤드기어를 못 쓴다. 헤드기어는 얼굴을 꽉 졸라매기에 귀에 걸린 마스크가 빠지거나 헐렁해지는 수가 생기기 때문. 헤드기어는 얼굴을 보호해주는 기구이지만, 그것이 모든 충격을 완충·흡수해주지는 않는지라 맞다 보면 마스크 벗겨지는 일은 예삿일도 아닐 것이다.


헤드기어를 착용하지 못하는 이상, 스파링은 약식으로 진행된다. 쉽게 말해 살살 치기로 하는 것이다. 펀치가 상대에게 닿기 직전에 힘을 빼는 방식, 그러나 이것도 맨얼굴로 맞다가 보면 뻐근하고 얼큰하고 그렇다.


*


스트레이트.

 

줄곧 말해왔지만, 그것은 가장 강한 펀치이다. 적어도 내가 구사해본 펀치 중에 스트레이트만큼 정직하고 강한 펀치는 없었다. 직선으로 쭉 뻗는 곧고 긴 펀치, 달리 말하면 사거리가 길어 주먹이 멀리 나아가는 만큼 회수하는 시간이 긴 펀치이고, 정직하게 직선으로 곧게 뻗어나는 만큼 그 과정에서 쉽사리 장애물을 마주치는 펀치이다. 회수하는 시간이 길다는 것은 리스크를 뜻하고, 장애물이 많다는 것은 실패를 뜻한다. 격투기는 덜 맞고 더 때리는 게임, 스트레이트는 그래서 자주 사용하진 못할 펀치다.


스트레이트는 그래서 자주 사용하지 못하는 펀치, `한방`이다. 한 번씩 소극적으로 뻗어나 보면 상대의 주먹과 얽히어 무용되는 일이 잦고, 상대가 작정하고 피해버리면 그 주먹을 회수하는 동안 내가 빈틈을 허용하는 일도 빈번하다. 스트레이트는 가장 정직하고 강한 펀치,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능사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격투기는 잽과 스텝의 싸움이라고들 한다. 아무리 강한 펀치를 가졌던들 잽으로 셋-업을 하지 못하면 무용하고, 아무리 강한 펀치를 가졌던들 스텝이 굼떠 상대와 나 사이의 거리를 잘 따라잡지 못하면 무용하다. 내 이야기다. 샌드백을 백날 두드리면서 힘을 늘려봤자, 스텝이 굼뜨면 맞추지를 못하고 빈틈만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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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키가 작고 살집이 있다. 즉, 체급이 있는지라 주먹이 묵직하되 몸이 느리다. 키가 작고 팔이 짧아 리치(사거리)도 짧다. 여러모로 격투기에 유리한 몸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둔중한 생김새에 걸맞지 않게 겁이 많은 편이다. 내게는 이게 오래도록 골치가 아픈 일이었다. 상대와 스파링을 할 때, 상대의 주먹을 피할 셈이면 아주 빠르게 피해야 하고 막으며 버틸 값이면 아예 각오를 하고 버텨내야 하는데 지레 겁이 많으니 원, 이도 저도 안 되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상대의 주먹이 아파서 겁이 나는 것도 아니다. 맞고 나면 뒷목과 승모근이 뻑적지근 하다지만, 그게 공포를 불러일으킬 만큼 유의미한 고통은 추호 못되다. 나는 무엇이 두려워 상대의 스텝-인* 때마다 뒤로 빠지려 했던지. 돌이켜 보면 그때마다, 상대의 달려드는 기세에 그저 주춤했던 것 같다. 그리고 기세에 주춤하면 타이밍을 놓친다.


* 스텝-인 : 내 주먹이 닿을 사거리를 맞추기 위해, 상대에게 들어가는 스텝.

       상대의 백스텝이 나의 스텝-인 보다 빠를 경우 낭패를 보기 좋다.


격투기는 0.1초의 선택을 반복해가는 게임이라, 잠시 멈칫하는 동안 뒤로 아주 빠질 시기를 놓치거나 가드를 채울 시간을 놓친다. 그러면 어정쩡하게 빠지려 하다가, 가드를 올리다가 맞는 것이다. 그리고 한 대 맞으면 턱이 들리고, 시야가 흔들려 상대의 다음 펀치를 캐치하지 못해 후속타를 내주게 된다. 내가 진정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이것, 무력한 내 모습에 대함이었다.


몸이 빠르면 스텝을 이용해 회피하면 되지만, 나처럼 둔중해 몸이 느리면 가드를 단단히 채우고 버티며 카운터를 노리는 편이 좋았다. 내 스텝보다 상대의 스텝이 더욱 빠르고 훌륭하다면 백스텝으로 피하는 것보다는 우직하게 맞고 버티며 틈새 한 방을 노리는 편이 전략적으로도 옳은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상대의 전력을 정면으로 받아낼 각오가 필요했다. 가드 위로 쏟아지는 상대의 펀치에도 온몸은 흔들리고 시야도 어지러워진다지만, 그래서 두렵기 시작하지만, 조금만 버티면 상대는 체력이 빠지는 때가 온다. 이것을 단단히 믿어야 했던 것이다.


*


약식 스파링은 헤드기어가 없어 그런지 괜시리 겁이 더 많이 난다. 서로 전력을 다하지 않기에 맞을 만(?) 하지만, 내게로 쇄도해 들어오는 상대의 기세에 괜히 더 주춤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몸이 무거워 스텝-인도, 백스텝도 느리고, 그런 중에 라운드의 시간이 흐르면, 피로감에 더불어 낭패감과 두려움이 쌓여간다. 나의 스텝-인이 실패해서 정타를 허용하고, 나의 백스텝이 느려 정타를 허용하면 그 경험들이 쌓여 마음은 더욱 주눅들게 되더라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스파링을 하다가 보면 어느새 땀에 가득 절어있다. 이제 호흡은 잘 안 되고, 잔뜩 긴장된 몸은 뻣뻣하고, 가드를 바짝 올려 두어도 그 위로 전해지는 상대의 에너지는 쿵- 쿵, 전신으로 전해져 쌓여간다. 그 탓인지 지치는 것도 배로 빨리 지친다. 지치기 시작하면 안 그래도 굼뜬 스텝은 아주 멎고, 가드는 슬쩍 풀리기 시작한다. 3분 3라운드 중 2라운드의 후반, 이때부터가 스파링의 고비가 아닌가 싶다.


스텝이 느려지고 가드를 들고 있는 것조차도 버거운 때면 2라운드의 후반이다. 일단은 3라운드에 쓰일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가드를 바짝 올리고 아예 스텝을 포기해본다. 스텝을 포기하고 아예 가드를 바짝 조인 채 웅크려 있는, 그때 내 모습은 영락없이 어느 조개의 모양이다. 상대는 그런 나를 알아차리고 마음 편히 손쉬운 펀치를 쏘아대는 것이, 아무래도 뻘 위의 왜가리를 연상시킨다. 잔뜩 닫힌 조개껍질 위로 성난 부리를 잔뜩 쪼아대는 왜가리의 풍경. 나는 그러면서 잠시 쉴 시간을 벌고, 상대는 체력을 소모한다. 곧 2라운드 종은 울리고, 휴식하는 30초는 너무 짧고,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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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어찌 그리 가벼운지 아직도 통통대며 가볍고 경쾌한 스텝을 밟는다. 나는 죽을 맛인데 말이다. 맞고 버티는 데에도 체력이 소비되는가 보다. 상대는 빠른 스텝을 이용해 톡, 톡. `스텝 인 - 잽 - 백스텝`을 마치 하나의 행동인 양 구사하며 잘도 치고 빠진다.


이렇듯 맞고 또 맞고를 반복하던 어느 날, 드디어 오기에 가까운 결심이 하나 영글었다. 질리고 질린 끝에 드디어 나는 차라리 맞고 버티어보자는 결심이 단단히 생기더라는 것이다. 톡, 톡 던지는 상대의 펀치를 죄다 피해보려니 몸이 느린 나만 더 힘들 일이고, 그 순간 더는 피할 힘도 없어서 말이다.


그리곤 상대가 잽을 뻗으러 들어오는 스텝-인의 그 순간, 반사적으로 뒤로 빠지려는 몸을 앞으로 고꾸라지듯 숙였다. 잽은 가벼운 펀치라 이마 정도는 내주어도 무방하다. 단단히 벼루고 내어준 이 잽은 드디어 한 번의 기회를 줬다. 상대는 알아서 내 품으로 들어왔고, 나는 버티었고, 상대의 후속타보다 내 카운터가 빠르다. 스트레이트를 치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 라이트 훅을 뻗었다. 훅- 그러나 안타깝게도 빈 바람 소리만 났다. 상대는 '스텝 인 - 잽' 이후, 재빨리 불리함을 캐치해 후속타를 포기하고 바로 몸을 돌려 우측으로 빠져나간다. 참 날래고 빠르다.

 

그래도 그 한번은 내게 근거가 되어준다. 여태껏 쌓여가는 무력감과 낭패감에 대항하는, 어떤 당찬 근거가. `내가 여지껏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 있었구나.` 여전히 선공의 주도권은 상대에게 있지만, 맞고 버티어내니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어차피 상대는 나를 맞서 버텨내지 못하기 때문에 카운터를 노릴 수가 없다. 즉, 들어와야만 했던 것이다. 이제 상대의 펀치를 받으며 무거운 몸에 걸맞은, 느리고 우직한 걸음으로 한발씩 상대방을 압박해 들어간다. `백스텝-잽, 백스텝-잽`을 뻗으며 뒤로 빠지는 상대방, 그걸 버티며 자꾸만 전진하는 나. 잽으로는 게임을 끝낼 수도, 나를 저지해낼 수도 없었기에 코너로 몰리어 몰리어 가는 상대방에게서 드디어 스트레이트가 나온다. 스트레이트는 다리를 단단히 고정한 채 전신을 회전시키며 주먹을 앞으로 쏘아내는, 창과 같은 펀치. 스트레이트를 칠 때는 백스텝을 쓸 수 없다.


벼루며 기다리던 상대의 스트레이트가 나왔고, 그때 나는 한 발 더 디뎌 들어갔다. 왜 말했지 않은가, 내 리치는 짧다고. 한 발 더 들어가며 상체를 숙여 단단히 고정한 채로, 나도 반 박자 늦은 스트레이트를 쏘았다. 상대의 스트레이트는 내 이마에 닿았고, 그 펀치를 채 회수하기 전, 내 스트레이트는 상대의 턱에 곧게 적중했다. 크로스카운터, 나의 승리다.


비록 서로에게 닿기 직전 주먹에 힘을 뺐지만, 주먹에는 체중이 실린다. 이마로 받은 주먹은 전신에 힘을 가득 준 채로 버텨내지만, 턱으로 들어간 펀치는 버틸 수가 없다. 구석에 몰린 때 턱이 하늘 높이 들려 시야를 놓친 상대방, 나는 이제까지 받아낸 것들을 풀어내었다. 얼마 안 가 시합 종은 땡-, 3분 3라운드는 그렇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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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이 끝나니 코치형도 관객들도 모두 `클린-히트`였다고 아우성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여태 나를 지겹게 따라다니던 숙제를 해치워 홀가분했다. 하나의 관문을 통과한 느낌. 몸이 무겁고 리치가 짧은 나로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다.


상대와 나 사이의 거리는 딱 `한 발자국` 차이, 내게는 그 짧은 거리가 늘 해결 못 할 숙제였다. 말했듯 내 스텝은 느리고 몸은 무거웠기에 말이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자면, 문제는 그런 신체 조건이 아닌 두려움으로 인한 애매한 나의 태도에 있었구나, 한다.


스트레이트는 가장 강하고 정직한 펀치, 그러나 리스크도 크고 실패 요인도 많으며, 무엇보다도 전신을 땅에 붙박아야 하기에 스텝을 쓸 수 없는 펀치다. 상대와 나 사이의 거리는 딱 `한 발자국` 차이. 결국 내가 더 빠르지 못할 값이라면, 나는 카운터를 노리는 것이 옳았다. 내 이마를 내어주고, 턱을 취하는 것. 다만, 그 한방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위와 같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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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트레이트는 한 발 뻗어 디딘 그곳에서 열렸다. 상대의 펀치가 날아오는 바로 그때, 몸을 뒤로 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곳에서. 그를 위해서는 얼마 간의 각오가 필요하다. 그 펀치가 그리 아프지 않음을 알고 있더라도, 성인 남성의 펀치를 향해 오히려 뛰어들어가기 위해서는 분명한 태도와 결정 그리고 관철 따위의 것들이 필요했고, 이런 `마침내의 것`들을 위하여 나는 얼마간 신나게 두들겨 맞고 속수무책이어야 했던 것이다.


나는 써놓고 보니 별것 아닌 이것에, 아직껏 깊이 골몰해 있다. 한 발 더욱 뻗어 디딘 곳에서 아득한 거리는 열리고, 그렇게 내 요원한 숙제는 풀리고, 내 역량은 한 발을 떼고, 하나의 관문을 지나 넘는, 이 일련에 대해. 내 여남은 많은 과제들과 관문에 대하여서도, 이것은 꼭같은 해법으로 남아줄 것인가에 대해. 역풍을 뚫고 들어가는 그 한걸음에 대해. 그리고 그 한 걸음을 위해 필요했던, 그 많은 것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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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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