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트라우마와 강박에서 피어난 무한성 -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글 입력 2020.12.14 08:3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알 사람은 안다’는 현대 미술의 대표자, 그 이면엔 죽지 않고 살아낸 작은 예술가의 발돋움이 있었다.

 

언젠가 처음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만났을 때,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압력에 서둘러 자리를 떠났던 기억이 인다. 당시엔 계속해서 보다 보면 마음이 쑤실 것 같고, 곁에 두었다간 올곧게 세워둔 나의 이성을 무너뜨릴 것 같았다.

 

하지만 몸에 나쁜 게 맛이 좋다고, 자꾸만 그녀의 작품을 찾아봤다. 그러다 보니 노골적인 모양을 하고 있는 그녀의 남근 소파, 몸이 빨려 들어가 우주의 일부가 될 것 같은 [무한 거울의 방]은 금세 노트북 배경화면을 차지했다.

 

가감 없이 자신의 강박과 트라우마를 내놓고, 관람자들을 관조하는 듯한 태도는 묘한 편안함을 가져왔다. 특유의 반복적인 패턴과 강렬한 색채는 나의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파고들어 나의 거부감과 강박을 해소시킨다.

 

 

movie_still06.jpg


 

깔끔한 영화다. 한 편의 생애사를 읽어내린 것 같기도 했다.

 

미술을 좋아하는 작은 아이가 가정에서는 구박받고 큰 세상에 나아가서는 편견과 차별에 휩쓸리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가 되기까지. 그 과정은 가슴께 어딘가가 저리다가도 뜨거웠으며, 분노에 콩닥거리는 심장을 붙잡기도 해야 했다.

 

전자의 경우는 자신이 존경하는 아티스트의 조언을 들은 후 곧장 뉴욕행 티켓을 끊은 야요이를 볼 때였다. 가족의 만류, 학대, 미술에 대한 괄시며 일본 사회 특유의 폐쇄성으로 둘러싸진 울타리를 벗어날 때.

 

한편, 머리를 가득 메웠던 열기가 싹 가시고 경멸이 들어차는 장면도 있었다. 여성과 동양인, 두 가지 선천적 특징을 핑계로 믿었던 이들에게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빼앗기는 모습을 보면서.

 


movie_still11.jpg

쿠사마 야요이의 [집적: 1,000척의 배]를 표절한 앤디 워홀의 작품

 

 

어릴 적 쿠사마 야요이의 엄마는 그녀의 그림을 모조리 가져다 버린다. 미술에 대한 홀대, 야요이 자체뿐만 아니라 그녀의 꿈에 대한 학대의 수준이 심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어 예술의 꿈을 이루려 향한 뉴욕에서 공동 전시회를 열고, 다른 예술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하며 자신의 아이디어와 텍스처, 패턴과 오브젝트를 수없이 빼앗긴다. 자신이 만들어낸 것들을 베껴 쥔 채 화려한 예술인의 세계로 당당히 나아가는 백인 남성 예술가들을 바라보며, 강박은 더더욱 강력히 그녀를 옭아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강박의 속박에서 벗어난다. 벗어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휘둘러 자신의 세계를 펼쳐낸다. 자신의 것, 즉 자신의 그림을 지켜내야 한다는 강박적인 마음이 예술가로서 인정받고 말 것이라는 확신이 충돌할 때 그녀의 무한성이 펼쳐졌다.

 

 

02.jpg


 

"쿠사마의 어두웠던 과거를 포함해 성차별, 인종 차별, 정신 질환을 극복하고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좇아온 개척자로의 쿠사마 야요이를 알리고 싶었다“

 

감독, 헤더 렌즈

 


영화의 전개는 야요이 본인이 끌어간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미술의 시작, 가족과의 갈등, 고향 사람들의 멸시, 지나간 사랑, 뉴욕에서의 생활고와 사건들을 그녀의 목소리로 전개하며 작품의 서사에 힘을 더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시회를 기획할 때 참여했던 에디터, 그녀가 유명 작가가 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이들이 등장해 관찰자 시점에서의 야요이에 대해 덧붙인다. 야요이 본인과 주변인들이 바라본 그녀의 특징은 ‘열정과 낙담의 반복’ ‘강박’이었다.

 

 

03.jpg


 

또, 투쟁에 있어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두 번째 자살시도 이후 다시는 자신을 죽이지 않겠다는 다짐 하에 정신병원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꿈을 펼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던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예술을 지키기 위해 정신병원에 들어선다.

 

생명력의 힘이자 예술에 대한 갈망이었다. 지금도 그녀의 작업실은 병원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자신의 정신병을 인정하고 나아가기까지 어떤 생각이 흘러갔을까? 그 무게는 상상만 해 보아도 심히 버겁다.


 
“나는 살아났고, 결국엔 이뤄냈어요.”
 

 

야요이의 예술성을 보면 훨씬 더 이른 시기였어야 했던 그녀의 성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녀가 겪어온 트라우마와 강박들은 작품의 철학적 가치에 무게를 싣는다.

 

어찌 됐든,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결국엔 이뤄냈다. 그게 작품이 시사하는 바이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던진 메시지였다. 동시에 우리는 살아남고 이뤄낼 수 있다는 지지를 받는다.

 

 

[이민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