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술품 보존과학에 대하여: 도서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글 입력 2020.12.1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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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살고 있었던 2008년,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숭례문 방화사건이었다. 종종 서울에 있는 친척집에 놀러가서 서울을 누비고 다닌 경험이 있는 나였지만, 그 때의 나에게 숭례문은 아직 미지의 세계였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냥, 우리나라 국보 1호는 내가 서울에서 살게 되는 게 확정되었을 때, 즉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었을 때 보겠다는 나만의 개인적인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교과서 속에서 사진으로, 또 뉴스에서 영상으로 보던 위풍당당한 모습의 숭례문이 시뻘건 화마에 뒤덮여 속절없이 타내리는 모습을 TV로 봤을 때의 그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물론 그 후에 숭례문은 복원이 되었다. 국보 1호인 만큼,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보수에 착수했다. 한 개인의 망동으로 돌받침 부분을 제외한 거의 모든 누각이 전소되었지만, 국가에서 숭례문을 그대로 버려지게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숭례문은 지금도, 우리의 곁에 있다. 그러나 2008년에 전소된 후 복원에 5년 가량의 시간이 걸려버렸기에, 나는 상경하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숭례문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런 숭례문을 바라보는 내 감정은 너무나 복잡했다. 이미 과거에 지어졌던 거의 모든 부분이 소실되었는데, 석축을 제외한 누각의 모든 나무 부분이 복원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것은 과연 내가 그토록 의미를 부여했던 그 숭례문이 맞는가.


이런 나의 의문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는 책을 발견했다. 바로 도서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였다. 미술과 관련한 책이라면 미술사나 작품 소개 위주로 된 책이 많은데, 이 책은 굉장히 독특하게도 미술품의 보존과학에 대하여 다루는 책이다. 저자 김은진이 바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하는 학예연구사이자 미술보존가이기 때문에 다룰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이기도 했다. 숭례문 방화사건이 뇌리에 깊은 상흔처럼 남아있는 나는 이 책의 소개를 보자마자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그냥 혼자만의 생각에서 그쳤던 숭례문에 대한 그 오랜 질문과 더불어, 새로운 세계를 엿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책 소개 >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는 미술보존가 김은진이 쓴 '미술품 보존과학'에 대한 이야기다. 현재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술 보존가는 대략 십여 명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숫자가 적어서 보통 사람들이 미술 보존가를 직접 만날 기회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이유로 미술 복원과 관련한 책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이 책의 저자는 미술관에서 오랫동안 보존가로 일하면서 맞닥뜨렸던 문제들과 작품 보존에 대한 끝없는 고민 속에서 책을 쓰게 되었는데, "보존과학에 대해서 전문가뿐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 이유는 미술 복원에 대해서 알게 되면 우리가 오늘 눈앞에서 보고 있는 예술 작품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미술 작품이 겉으로 보여 주는 이야기와 속으로 품고 있는 이야기가 더해져 관람객들이 더 풍부한 미술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술복원과 보존과학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질문들, '미술관 전시실의 조명은 왜 컴컴한지', '미술관은 온도와 습도 조절에 유난히 민감한지', '몇백 년 된 그림을 어떻게 아직도 볼 수 있는지' 등등에 대해 모두 친절하게 설명한다. 또 오늘날 미술품의 보존과 분석을 위해 과학기술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이 과정에서 어떤 특이점을 가지는지, 보존가가 보존 처리 기술뿐만이 아니라 보존가로서 윤리적으로 고민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까지도 다양한 작품들과 예술가들의 에피소드로 들려준다.

 




과거에 완전했던 작품이 시간이 지나 변형되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기술로는 과거 원본의 모습 그대로를 복원할 수가 없는 작품을, 저자 김은진은 이 책의 몇몇 부분에서 소개하고 있었다. 바로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 한국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시인 이상을 그린 초상화였다. 또 다른 예시로는 백남준의 작품을 들기도 했다. 백남준이 사용했던 브라운관이 이제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아,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현재의 디스플레이 기술을 사용하여 재현된 <시스틴 성당> 역시 저자가 언급하고 있다. 구본웅의 작품은 초상화라 작품의 원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비교되도록 삽화가 함께 첨부되어 있었는데, 백남준의 작품은 미디어 아트인지라 비교해볼 수 있는 참고자료가 없었다. 다만 저자 김은진은 이를 실제로 보았는데, 90년대에 보았던 그 감성이 그대로 살아있지는 않아 약간 실망했다고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었다.


두 작품 모두 다, 엄밀히 말하면 원본과는 이미 달라져버렸다. <친구의 초상>은 과거 창백하고 야성적이었던 이상의 모습이 아니라 입술이 붉게 되어 굉장히 독특한 모습이 되었다. <시스틴 성당>은 볼 수 없었으니 상상할 뿐이지만, 분명 구현은 잘 했겠으리라 짐작함에도 불구하고 90년대의 그 감성을 그대로 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 작품들은 더 이상, <친구의 초상>이 아니고 <시스틴 성당>이 아닌 것인가? 95% 이상이 소실되었다가 복원된 숭례문이 과연 국보 1호로서의 가치를 가지던 그 숭례문이 맞는가 하는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질문을 우리 스스로 던져보게 되는 대목이다.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정답을 내려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던질 때에, 우리는 비로소 본질이 무엇인가를 파고들게 된다. 어떤 형태를 하고 있건 간에, 가장 근본적인 것은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의 의도다. 그 의도를 변질시키지 않는 선에서 행해지는 보존과 보호를 위한 모든 행위는 옳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견지에서, 95% 이상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새롭게 만들어진 숭례문도 당연히 우리나라 국보 1호로서, 앞으로도 지키고 보존해나가야 할 숭례문 그 자체임을 확언할 수 있다. 백남준의 작품도, 과거의 그 작품과 느낌은 달라졌겠으나 백남준이 브라운관이라는 매개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이미지는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이 변화한 것이기에 언젠가는 원본의 이미지에 최대한 가깝게 작품을 복원하는 기술이 나오길 기대한다.


*


회화 전시회를 가면 항상 작품명을 설명하는 작은 패널에 이게 유화인지, 판화인지 또 캔버스에 채색되었는지 등의 여부가 함께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건 항상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듯 넘겼다. 이게 캔버스에 채색한 것인지, 일반 종이에 채색한 것인지의 여부는 나에게 크게 중요하게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화는 대부분 캔버스에 채색한 작품이 많으니까, 캔버스 채색이 주로 된 작품들 위주인 전시회를 볼 때면 종종 생각하곤 했다. 왜 굳이 어디에, 무엇으로 채색했는지를 명시하지?


도서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를 보니, 그건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사용해 채색했다는 것은 추후 이 작품을 보존하거나 혹은 훼손에 대하여 복원해야 할 때 가장 기본적인 정보가 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미술이라곤 중학생 때 했던 것까지가 전부나 다름없다보니 수채화물감과 유화물감 그리고 아크릴물감 정도밖에 아는 게 없다. 그러나 작품의 세계에서는 채색의 도구가 정말 다양하다. 우선 과거의 작품들이다보니, 현재에 쓰는 물감들과는 당연히 다른 안료를 쓴다. 그리고 작가마다 안료에 이것저것을 섞어서 자신이 원하는 발색을 내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을 복원하려면 미술보존가들의 손길을 통해 먼저 안료 그리고 보존재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부터 먼저 한다.


안료와 보존재에 산화가 되면서 변색이 되는 요소가 들어갔다면, 보존가들은 이를 두고 고민한다. 예컨대 여기서 다시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어둡게 변색된 화폭의 색감을 다시 밝게 되찾을 것인지, 아니면 가장 겉면에 발라진 탑코트를 제거하여 원색을 드러낼 것인지. 이 작업에 대한 판단을 내리려면 당연히 과학적인 지식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원래 작가가 썼던 안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느낌을 살리면서도 복원작업 후 작품의 변형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조합을 발견해내야 하는 것이다.


화학도 고등학생 때 조금 끄적여본 게 전부인 나에게는 다소 생소했다. 예를 들어 황화납이 과산화수소를 만나 황산화납이 되면서 변색되었던 색이 다시 흰색으로 돌아왔다고 하는 게 그냥,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론 감탄했다. 예술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예술과 바로 맞닿아 있다고 통상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과학분야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야만 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내내 화학 내용들을 다루고 있는데, 정말 생경했다. 학교에서는 책으로만 보고 실험은 아주 깔짝이기만 했을 뿐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활용될 수 있다니 놀라웠다.


*


이 모든 작업들을 하는 보존가라는 사람들에 대해,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녀올 때마다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서도 아주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기본적인 인식은 박혀있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겠지만, 학예연구사로 통칭할 수 있는 그 분들이 있기에 미술관과 박물관에 다양한 전시들이 기획되고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학생 때에 백제 금동대향로의 발굴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학예사가 얼마나 대단한 직업인지 감탄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뻘 같은 논에 파묻혀 있었던 백제 금동대향로를, 신고를 받고 나가서 발굴해내고 오랜 시간동안 흙을 제거하고 본연의 모습을 찾는 정제과정을 거쳐 현재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그 향로를 실물로 보았을 때의 그 감동이, 아직도 선연하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학예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사회인이 된 내 입장에서, 여전히 학예사는 너무나 멋지고 의미있는 일을 하는 귀한 직업이지만, 예전보다 더 현실적인 부분들이 많이 보이게 되었다. 우선 학예사는 당연히, 일반적인 회사원만큼의 수요가 없을 것이다. 기업 수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미술관, 박물관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또한 학예사는 당연히 석사 이상의 학력을 요구할 것이다. 저자 김은진이 말하는 수많은 과학적인 이야기, 미술 작품에 대한 이해를 보면 절대 학사 수준에서 접근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게다가 학예사에 고액연봉을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저자 김은진 역시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에서 이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저자는 미술과 과학에 대한 지식, 정교한 손, 예술을 사랑하는 정직한 마음 중에서 하나라도 확실하게 자신의 강점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있다. 약점 없는 사람은 없으니, 하나라도 확실한 강점이 있다면 그 약점은 공부로 차근차근 채워나가며 미래를 준비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미술품을 보존하고 치료하는 의사에 관심을 갖게 될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힘이 되는 한 마디였다. 먼저 그 길을 가고 있는 업계의 선배로서, 저자 김은진은 이 직업의 단점도 솔직하게 말하지만 그럼에도 매료될 수밖에 없을 후배들을 위해 용기를 북돋워주고 있었다. 이미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괜히 이 대목을 읽을 때 덩달아 가슴이 벅차는 기분이 들었다. 아, 이 대목이 누군가에게는 미래의 향방을 바꿀 변곡점이 되겠구나 하는 직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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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다니며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을, 미술품의 보존. 소재 자체는 익숙하지만 그에 대한 실질적인 내용은 생소할 수밖에 없는 이 미술품 보존분야에 대하여 이렇게 흥미롭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 있다니 너무 놀라웠다. 도서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는 예술과 과학의 분야를 쉴 새 없이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미술품 보존의 세계가 얼마나 광범위하며, 책임감이 소요되는 분야인지를 보여주었다. 미술품 보존과 관련한 업적은 쉬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업적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는 분야이기에, 일반인들에게 이렇게 책과 여타 매체를 통해 내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역시 너무나 뜻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는 것이란 없다. 심지어 시간조차도 매순간 달라진다.

 

영원이 존재하지 않는 이 불멸의 세계에서, 작품에 담긴 작가의 뜻이 영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많은 미술보존가들이 활약하고 있다는 것을, 도서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를 통해 독자들이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 -


지은이: 김은진

출판사: 생각의 힘


분야 : 과학 - 교양과학

페이지: 304쪽


정가: 17,000원

ISBN: 979-11-90955-03-4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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