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작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사탕 [시각예술]

글 입력 2020.12.10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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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서로 사랑해왔던 사람과 이별을 겪는 것은 항상 힘들다.

 

특히 그것이 죽음으로 비롯된 이별이라면 더더욱 가슴이 아프다. 오랜 시간 나의 곁에서 따듯한 온기를 공유하며 나의 일상의 일부가 된 사람이,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니.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보러 갈 수는 있는 일반적인 이별과 다르게 죽음으로 비롯된 이별은 무슨 수를 써도 더는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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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Public Opinion), 1991. Installation view: Felix Gonzalez-Torres. Luhring Augustine Hetzler Gallery, Los Angeles, CA. 19 Oct. – 16 Nov. 1991. Image courtesy of Luhring Augustine Hetzler Gallery. / Background: "Untitled" (NRA), 1991.


 

1980-90년대 미국에서 활동하였던 쿠바 출신 작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연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미술 작품에 담았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위 이미지의 이다.

 

당시 자신이 사귀고 있었던 동성 애인이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해에, 그는 과거 애인이 즐겨 먹었던 사탕을 그가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의 몸무게인 50kg만큼 준비하여 미술관 바닥에 쌓아 놓았다.

 

전시장에 드나드는 관람객은 자유롭게 그 사탕을 가져갈 수도 있으며, 심지어 먹어버릴 수도 있다.


 

 

달콤한 사탕 속에 담긴 애틋함



통상적으로 ‘사탕’이라는 것의 느낌은 ‘죽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달콤한 사탕이 주는 느낌은 보통 행복하고, 로맨틱한 느낌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소재로써 사탕을 선택했다는 것이 더욱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연인이 좋아했던 사탕을 입에 넣고 달콤함을 느끼며 연인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회상하는 작가를 머릿속에서 그려 보면 로맨틱하면서도 애틋한 이미지가 그려진다.

 

관람객은 같은 맛의 사탕을 자유롭게 가져가 먹어보며 그들의 사랑을 간접체험해 볼 수 있다.


 


작품을 통해 매일 부활하는 작가의 연인



관람객이 사탕을 가져가면, 전시장에서는 매일 남은 사탕의 무게를 재서 관람객이 가져간 만큼의 사탕을 다시 채워 넣는다. 만약 관람객이 모든 사탕을 가져가 버려도, 다음 날 사탕 더미는 원래 무게였던 50kg으로 돌아온다.

 

이것은 달리 보면, 작가의 연인이 계속해서 부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육신은 잘게 부서져 흙 속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존재는 여전히 남아 매일매일 부활한다.


작가는 그의 작품 대부분의 제목을 “무제(untitled)”라고 지었는데, 작품의 제목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기에 그의 작품은 더욱 풍부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사탕 더미가 매일 같은 무게로 채워진다는 점을, 우리는 ‘작가의 연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작품을 통해 여전히 작가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을 영원히 기억한다니 얼마나 로맨틱한가’처럼 해석해 볼 수도 있고, ‘동성애자 작가의 동성 연인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지만, 작품이 전시되는 한, 사람들에게 영원히 그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소수자는 계속해서 존재를 드러낼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또는 ‘작가의 연인이라는 한 생명은 세상을 떠났지만, 작품을 통해 그는 매일 다시 태어난다. 삶의 순환도 그러하지 않은가?’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다. 혹은 필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해석 외에도 이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해석이 무한히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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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ail of "Untitled" (Public Opinion), 1991, at Pet Resources, Bronx, NY, 1 – 30 Apr. 2017. As part of the exhibition Lenka Clayton and Jon Rubin: A talking parrot, a high school drama class, a Punjabi TV show, the oldest song in the world, a museum artwork, and a congregation’s call to action circle through New York.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NY. 1 Mar – 31 Aug 2017. Cur. Nat Trotman, Anna Harsanyi, and Christina Yang. [Traveling]. Photographer: Kristopher McKay. Image courtesy of Solomon R. Guggenheim Museum.


 

 

마치며



필자도 2017년에 뉴욕에 방문했을 당시,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이 작가의 작품에 참여해 본 적이 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이 작품이 전시된 방에 들어서자마자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 짐작이 갔다.

 

연인이 세상을 떠난 후, 작가도 같은 이유인 에이즈 합병증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연인을 따라갔다고 하는데, 작가가 사망하고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작품이 계속 전시되며 그의 연인이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탕의 양이 생각보다 많아 머뭇거리고 있자 직원이 친절하게 가져가서 먹어도 된다고 안내해 주었고, 가장자리의 사탕을 하나 집어 들어 냄새를 맡아 보았다. 마냥 달콤하다기보다는 우리나라의 홍삼 캔디처럼 약간 약재가 섞인 것 같은 향이 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맛의 사탕을 먹어보기도 싫고, 그 사탕 하나하나가 작가의 죽은 연인의 DNA처럼 느껴져서 그대로 가방에 넣어 한국에 가져왔다.

 

이로써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연인은 지구 반대편의 땅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유지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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