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기력한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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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 블루인지 무기력증인지, 번아웃인지 뭔지 모를 무언가가 나에게 다가왔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공부며 과제는 물론이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행해야 할 기본적인 것들조차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2학기 초반, 그러니까 중간고사 이전에는 설렁설렁 온라인 강의 듣고, 취미 생활도 하고, 휴식도 취하고, 시간이 남으면 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복습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꽤 한가했었다. 너무나도 바쁜 1학기를 겪었던 나로서는 '이거 좀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유롭게 보냈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도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누군가 '좀 쉬었으니 이제 다시 열심히 살아라!'라고 시킨 것처럼 할 일이 차고 넘쳤다.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고 그렇지 않아도 늦게 일어나는 나는 고작 한 끼만 대충 때우는 날도 많았다(내 생활 습관을 고치면 어느 정도 해결될 문제이긴 하다).
정말 과장 없이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눈싸움하기 일쑤였다.
안 그래도 바쁘게 지내는데 코로나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그렇다 보니 만나는 사람도 없고,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이었던 것들이 다 사라지고 나니 나에게 결함이 생긴 것 같았다. 쿨러 없이 종일 무거운 프로그램을 돌린 노트북이 된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는 늘 웃고 있고, 밝고, 팔랑거리는 사람이다. 내가 보는 나도 거의 비슷하다. 솔직히 늘 웃고 있고 늘 밝은 건 절대 아니지만(인간이라면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깊은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댈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를 너무 강한 사람으로 봤다. 알고 보니 그렇지 않았던 나는 며칠 전에 거의 침대에 녹아들었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할 거 진짜 많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M: 힘들면 쉬어야지!
m: 근데 할 거 많은데...
M: 어차피 의욕도 없는데 지금 해봐야 더 힘들기만 해!
m: 그래도 마감 기한 안에 해야 하는데...
머릿속에서 여러 명의 내가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무기력한 나를 이기고 이 글을 쓰고 있냐고?
정확한 답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바깥 공기 쐬기, 조금씩이라도 움직이기, 규칙적인 생활하기와 같은 정석적인 답변이 나와 있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저 사소한 것들을 할 힘이 나지 않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그렇게 '무기력'이라는 것은 끊을 수 없는 악의 고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지금 나름대로 기운을 차리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할 힘이 나지 않아 자체 공강을 하고, 기한 안에 내야 할 과제를 내지 않는다면 이 일에 관한 결과는 나 혼자 책임지면 된다. 혼자 F 받고 눈물의 재수강을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최소한의 예의와 타인과의 약속이 무기력의 발목을 잡았다. 이번 학기 나를 정말 괴롭히고 있는 팀플, 하루에 몇 번씩이나 있는 각종 회의,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진 마감일 등이 있는 나에게 쉼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힘들다고 현생을 놔버리면 죄 없는 팀원들에게도 그 영향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나 혼자가 아닌 우리 팀원 모두를 재수강의 구렁텅이에 빠뜨릴지도 모른다.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늘 내 글을 읽어주시고 보듬어주시는 대표님과 향유자분들과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늘 그렇듯이 하나하나 해야 할 일들을 해치우며 며칠을 보내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괜찮아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늘 그렇던 나로 돌아와 리듬과 한 몸이 되어 온몸을 들썩이는 중이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조금 아이러니 한 점이 있지 않나? 나를 극한으로 몰아넣어 무기력하게 만든 주된 이유는 분명히 끝도 없이 쌓인 '일'이다. 나를 동굴에서 끌어낸 것 또한 '일'이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이건 대체 뭔가 싶었다.
하루하루를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았더니 과부하가 와 손 하나 까딱할 마음이 없었고,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다시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을 택하다니. 인간은 무척이나 이상하다.
이 방법이 과연 나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위에서 언급한 너무나도 뻔한 그 방법들은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힘든 걸 알면서도 현재의 힘듦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한번 힘듦을 선택하는 인간의 심리를 전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게 최선의 해결 방법은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효과가 있는 걸 어쩌나.
물론 나는 일시적인 현상이었고 '남한테 피해는 안 줘야지'하는 생각 정도는 있었기에 다시 일상생활로 되돌아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머릿속에 그런 생각조차 없다면, 그러니까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끝도 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만 든다면 그때는 조금 더 전문적인 극복 방법을 찾아보길 바란다.
- 더는 어떤 이유로든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유소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한해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2021년에는 행복한일이 더더욱 많으시길 바랍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