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혹시 락 좋아하세요? [음악]

글 입력 2020.12.0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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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밴드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품고 살았다. 고등학생 때는 실용 음악 입시생도 아닌 주제에 밴드부 오디션을 봤고, 그 꿈을 놓지 못해 결국 대학생이 되어 기어코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나는 그들을 동경했고, 부러워했고, 또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천재성을 가진 이들을 하염없이 선망했던 것이다. 악기라고는 학원에서나 만져본 피아노가 전부였던 나에게, 음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들이란 대단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직접 자신이 연주한 멜로디에 가사를 붙이는 이들, 자신의 색을 펼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은 나의 영웅이었다.

 

그런데 다른 음악도 아니고 왜 하필 락이었냐는 물음에는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내 취향의 많은 부분이 ‘그냥’이라는 이유로 머무르곤 하지만, 락은 정말 ‘그냥’ 외에는 그 까닭을 설명할 수가 없다. 밴드 음악과 기타를 사랑하는 아빠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닐까 싶지만, 밴드 음악, 특히 락에는 별 관심이 없는 두 동생을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어서 항상 내 취향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살았다.

 

그래서 오늘은 내 유년기를 위로하고 또 같이 싸워줬던 몇 장의 앨범들을 소개할까 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어쩌다 락에 빠지게 되었는지 깨닫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것만이 목적은 아니다. 이 앨범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음악 취향만이 아니라, 내 삶의 모든 틈새에 숨어 있다가 언제라도 불쑥 튀어나오곤 하는 정제되지 않은 취향과 생각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기에 나를 빚어낸 이 음악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같은 의미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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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락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바로 그 앨범이다. 오아시스의 정규 2집 앨범으로, 가장 유명한 트랙인 “Wonderwall”과 함께 “Don’t Look Back in Anger”, “She’s Electric”, “Champagne Supernova”와 같은 오아시스의 대표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한창 유명 팝송들을 찾아 듣던 중학생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으로, 90년대 끝자락에 태어나 그 시절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나에게는 당시의 공기마저 붙잡아 놓은 듯한 사운드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90년대 후반의 아련한 기억으로 남았을 테지만, 내 머릿속에는 이 앨범을 처음 접한 15살 무렵이 노래와 함께 박제되어 있다.

 

마지막 트랙인 “Champagne Supernova”는 지금도 여전히 여름이 오면 꼭 꺼내 듣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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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inity on High

 

폴 아웃 보이의 정규 3집 앨범이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2번 트랙인데, 아직도 이 노래를 처음 들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던 것을 잊을 수 없다. 듣자마자 말 그대로 내 귀를 ‘사로잡은’ 것은 이 곡이 처음이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어느 영상에 배경 음악으로 쓰인 것을 듣게 되었고, 보컬의 목소리 때문에 폴 아웃 보이의 노래인 것은 알아챘지만 제목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이들이 발매한 노래 전부를 일일이 들어보며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2번 트랙인 “The Take’s Over, The Breaks Over”였다.

 

나에게 폴 아웃 보이라는 밴드를 각인시켰을 뿐 아니라, 처음으로 락이라는 장르를 찾아 듣도록 만든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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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ack Parade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정규 3집 앨범이다. 이들의 대표곡인 “Welcome To The Black Parade”가 수록되어 있다. 나는 앨범의 전 곡을 차례대로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렇게 들어야만 진정한 매력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노래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앨범이 그렇다. 죽음을 앞둔 사람을 주제로 한 노래들을 차례로 듣다 보면 마치 연극이나 영화를 보듯 노래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느낌이 든다.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마치 악을 쓰는 듯한 '제라드 웨이'의 거친 보컬과 잘 어울리는 꽉 찬 사운드가 듣는 순간 스트레스를 날려준다.

 

그래서인지 수능을 준비하던 때의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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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ge Against The Machine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정규 1집 앨범으로, 가장 유명한 “Killing In The Name”과 함께 “Bombtrack”, “Take The Power Back”, “Know Your Enemy” 등이 수록되어 있다.

 

영국 드라마인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를 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이들의 음악적 메시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서야 이들의 노래에 담긴 강한 사회 비판을 읽을 수 있었다.

 

밴드 이름에 걸맞게 빠르고 반복적인 기타 리프 위로 보컬 '잭 델 라 로차'가 내뱉는 공격적인 랩이 이어지는 곡들이 대부분이다. 날 것의 분노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독특한 기타 솔로와 보컬의 목소리는 내가 사는 세상에 깊은 회의와 절망을 느낄 때면 그 어느 것보다도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내가 락을 좋아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음원 속에 갇혀 있지만 언제라도 그것을 찢고 나올 듯 몸부림치는 그 에너지가 늘 나를 들뜨게 했던 것이다. 수많은 노래들 중 왜 하필 락에서만 그런 에너지를 느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내 취향을 부끄러워했고, 사실 지금도 그것을 자신 있게 내보이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노래들을 좋아하고 아끼는 나의 마음은 물결치는 파도에 이따금 드러나는 암초처럼,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 것이다. 그러니 나는 유년기를 이 음악들과 함께 보낸 것이 큰 행운이자 기쁨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당신 또한 당신의 인생을 뒤흔든 노래가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온 마음을 다해 그것을 아끼길 바라본다. 좋든 싫든, 이미 삶 속에 흔적을 남겨버린 것들을 우리는 어찌할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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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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