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잡식인이 느끼는 찝찝함 [문화 전반]

잡식인은 이따끔 죄책감에 들기도 했지만 금방 잊었다. 그래도 되는 걸까.
글 입력 2020.12.0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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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베이어 벨트에서 옥자를 찾으려던 미자의 간절함을 지켜보던 순간부터였을까. (영화, 봉준호 감독, <옥자>)


엄마와 아들이 도축장의 아기 돼지에게 ‘돈수’라는 애정 어린 이름을 붙어주었을 때부터였을까. (다큐멘터리, 황윤 감독, <잡식가족의 딜레마>)


그것도 아니면, 돼지는 나오지 않지만 서늘한 살생의 감각을 새겨주었던 한강 작가의 문장을 읽어내려갔을 때부터였을까.(도서, 한강 작가, <소년이 온다>)

 

언제부턴가 머릿속엔 내가 어떤 생명의 피바다 위에 발을 딛고 있는 그림이 종종 그려지곤 했다. 머릿속 그 그림의 존재가 자신의 인생에서 풀어야 할 큰 숙제처럼 남겨져 있다는 생각 또한 지울 수 없었다.

 

 

 

밥상 위 돼지


 

인생에서 돼지를 가장 많이 본 곳은 바로 밥상 위다. 예전엔 밥상 위에 차려진 삼겹살이 옆에 함께 차려진 어묵 볶음과 별 차이가 없는 음식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냥 먹음직스럽다고 생각했던 마블링이 내 피부를 뜯어냈을 때 보일 살점과 오버랩되거나 뜨거워진 그릴 위에 내 손을 올리고 피부가 지글지글 타고 있는 상상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서늘하게 찾아와 간간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자꾸 그런 상상 때문에 찝찝하지만... 맛있으니까.’

 

끔찍한 상상이 상상으로만 끝날 수 있었던 까닭은 삼겹살과 나의 혀가 너무 가까웠고, 돼지는 나와 너무 멀었던 탓이다. 인생에서 직접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던 돼지와 나의 거리감과 삼겹살과의 거리감은 실로 엄청난 차이였다. 그건 맛있는 삼겹살 앞에서 아른거리는 돼지의 모습을 끊어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어주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이따금 끔찍한 상상을 하다가도 금방 그 메스꺼움을 잊을 수 있었다.


돼지와 삼겹살, 그리고 나. 극심한 불균형을 이뤘던 세 관계의 거리감을 고민하게 된 계기는 일주일 전에 일어났다. 다큐멘터리 <더 트루 코스트>를 본 것이다.


 

 

붕괴하는 건물 안에서 노동을 해야 했던 사람들


 

라나플라자 붕괴사건.jpg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붕괴 현장

 

 

<더 트루 코스트>에서는 H&M과 같은 유명 브랜드의 값싼 ‘패스트패션’ 사업 이면에 가려진 열악한 환경을 조명한다.

 

라나플라자Rana Plaza 사건도 그 환경에서 일어난 수많은 비극 중 하나이다. 2013년, 8층짜리 건물이 무너졌고 그 안에서 일하던 방글라데시 의류 산업 노동자 중 1129명이 목숨을 잃고 25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안타까운 건 이 사건이 예측 가능한 재난이었다는 사실이다.

 

벽에 생기는 균열을 보고 노동자들은 건물의 위험성을 제기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택지는 없었다. 그들은 결국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생명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도 안 되는 저임금을 받기 위해 벽의 균열을 그저 지켜봐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내가 싼값의 옷을 고르는 동안 생을 잃었다.

 

 

더트루코스트 여성.jpg

 

 

납득하기 힘든 정도의 낮은 임금을 받는 방글라데시의 의류 산업 여성 노동자는 일하며 동시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어머니이다. 하지만 그 여성은 자신의 아이가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 노출되는 것을 막고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자신으로부터 찢어 먼 친척에게 보낸다.

 

아이에게 최소한의 교육도 제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함께 살지도 못하는 삶이다. 그녀는 제발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여성의 눈물에서 나의 쾌락과 그로 인해 수반되는 먼 나라 여성의 고통을 보았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자연스레 삼겹살을 생각했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삼겹살과 돼지. 저렴한 옷과 개도국의 여성. 그 둘에게서 같은 착취의 흔적을 느꼈기 때문이다. 도축장의 돼지우리와 방글라데시의 라나플라자는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내 입에 직접 닿았던 삼겹살과 먼 돼지. 내 피부에 직접 닿았던 옷과 먼 나라 여성. 맛있는 삼겹살과 저렴한 패션 산업엔 어떤 값진 비용이 삭제되었던가?


*

 

이런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오는 메스꺼움과 찝찝함 같은 감정은 금방 잊힐지도 모르겠다. 아니, 금방 잊힐 것이다. 직접 본 적도 없는 존재의 고통이 소비를 통한 나의 즉각적인 쾌락보다 크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먼 나라 여성의 눈물과 돼지의 비명을 자주 직면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착취당하는 존재의 고통을 가늠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타자의 고통보다 자신의 쾌락이 더 높다는 생각은 ‘판단’이 아니라 ‘외면’에 가깝다.

 

 

 

식습관도 마치 하나의 관계를 맺는 것처럼


 

채식을 시작하는 목적과 그에 따른 장점을 이야기해보자면 환경, 생명, 건강 등 너무나도 많은 이유를 꺼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용기 내지 못하는 잡식인의 취향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는 맛이기에 힘들다 하지 않았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 역시 아직 완전히 식습관을 바꾸지 못했다. 내 인생에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 기억도 할 수 없는 거대한 고기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밥상에 차려진 음식을 고기와 고기가 아닌 것으로 분류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던 나에게 거대한 고기의 역사란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내 다짐을 우습게 무너뜨릴 수 있는 존재였다.

 

채식에 길고 깊게 관여해보기로 다짐함에 앞서, 나는 나와 관계해왔던 인연들을 떠올렸다. 나와 지금까지 좋은 인연으로 남아준 사람들은 통제가 아닌 존중의 태도로 상대를 대했다. 그 두 가지의 태도가 당장은 같은 결과를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분명 큰 차이가 있었다. 전자의 태도로 나를 대했던 사람은 더는 내 곁에 남아있지 못했다.

 

식습관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아직 아는 게 많이 없어 ‘채소’ 혹은 ‘채식’ 정도의 단어를 붙여 간신히 그들을 지칭하지만, 그건 채식과 관계 맺고자 하는 일에 있어서 나의 무례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고기와 ‘고기가 아닌’ 정도의 납작한 지칭이 아니라, 고기가 아닌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는지, 같은 단백질 음식도 어떤 종류로 나뉘고, 맛이 어떻게 다른지, 어떤 요리가 될 수 있는지 하나씩 뜯어보고 각각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 채식 세계를 구성하는 무수한 재료들을 입체적으로 보는 일이 내 첫 번째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존중하는 태도의 기본이다.


 

이런 식으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알아채지 못한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좋아할 수 있던 것을 무시했던 적도 얼마나 많았을까. 좋아했던 것을 과연 좋아하기나 했을까. 싫어했던 것들도 과연 싫어하기나 했을까. 그녀는 자신이 겪어온 애호의 세계를 처음부터 다시 재구성하고 싶어졌다.’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中


 

작가 겸 글쓰기 교사 이슬아는 경향신문 오피니언 글 <쉬운 감동, 어려운 흔들림>에서 이렇게 말한다. “외면하는 능력은 자동으로 길러지는 반면, 직면하는 능력은 애를 써서 훈련해야 얻어지기도 한다.”

 

메스꺼움과 찝찝함이 소비의 쾌락을 넘어서는 순간이 올 때까진 어쩔 수 없는 마냥 고기를 즐기는 일은 그만두려 한다.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는지 알 턱도 없는 고기의 역사를 의심하고 하나씩 바꿔 갈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참는 게 아니라, 왜 좋아했는지 의심하고 관심 없었다고 생각했던 것을 찬찬히 다시 보는, ‘애호의 세계’를 재구축하는 방식으로 그동안 외면했던 동물들을 내 품에 조금씩 넣어볼 생각이다.

 

 

 

최혜민.jpg

 

 

[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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