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평범함을 용서합니다. - 연극 아마데우스 [공연]

글 입력 2020.11.29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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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극 관람 일정을 결정하기도 어렵고, 오래전 결제한 티켓도 주야장천 예매 취소되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로 아쉬운 마음에 그동안 봤던 작품들의 티켓과 흔적들을 살펴보았다. 그중 2년 전에 만났던 연극 <아마데우스>가 재연 개막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서울조차 나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이 서럽고도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2년 전, <아마데우스>를 보기 위해 서울 BBCH홀로 떠나던 여정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작품이 안전하게 끝까지 진행되기를, 폐막 전에 상황이 나아져 다시 이 극의 관객이 될 수 있기를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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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



 

이탈리아 최고 궁정 작곡가였던 살리에리는 갑자기 음악 여행을 다닌다는 꼬마 음악 영재를 만난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연극 아마데우스는 천재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일생을 같은 시대의 노력파 작곡가 살리에리의 시선에서 풀어내었다. 오랜 노력으로 이탈리아 최고 궁정 작곡가의 자리를 갖게 된 살리에리는 갑자기 젊은 음악천재 아마데우스를 만나게 된다.

 

아마데우스의 작곡 실력은 궁정에 소문이 나 황제로부터 초대를 받는다. 이후 궁정 작곡가였던 살리에리는 그를 위한 행진곡을 작곡해 연주하게 되었는데, 아마데우스는 궁에 들어오면서 듣자마자 피아노로 편곡하면서 한마디 툭 던진다.

 


“아까는 너무 뻔했어. 이게 훨씬 좋지 않아요? 하핫!”

 


살리에리는 그 순간 아마데우스의 범상치 않은 작곡 실력을 직감했고 그와 비교되는 자신에게 깊은 열등감을 느낀다. 이를 시작으로 아마데우스에게 질투를 느끼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그의 능력을 보면서 신에 대한 증오심을 느낀다. 결국, 살리에리는 아마데우스가 실패하도록 몰래 훼방을 놓기 시작한다.

 

 

 

살리에리의 분노



연극은 늙은 살리에리가 관객에게 고해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자신이 아마데우스를 망쳤으며 정신적으로 그를 죽였다고 설명하면서 말이다.

 

살리에리의 분노와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아주 평범한 감정들이다. 살리에리는 넘치는 재능을 가진 아마데우스를 보며 왜 신께서 나에게는 재능을 주시지 않으셨냐고 분노한다. 재능을 가진 자를 알아보는 능력만 지녔던 살리에리는 평소 성실함과 피나는 노력만으로 한 나라의 궁정 작곡가 자리까지 올라왔기에 아마데우스와 같이 재능을 가진 자의 등장이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는 재능을 주시지 않은 신께 복수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신에게 선택받은 아마데우스가 파멸의 길을 걷도록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극을 보면서 재능을 가지지 못한 자에 속한 나는 살리에리의 행동에 조금씩 공감이 갔고 그를 이해했다. 나도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재능을 가진 친구를 보면 질투가 나고 그 친구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비겁한 생각을 해본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해서 이뤄 온 것들을 단시간에 가뿐히 해내는 사람이 봤을 때 느낀 허무한 감정과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라는 자괴감이 연극에서 너무나 잘 나타났기에 극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극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 극을 만나는 대부분이 아마데우스보다는 살리에리의 감정과 기분을 평소에 더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평범하기에.

 

 

 

연극의 제목 <아마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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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연극이 끝나고 살리에리를 고해하게 만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열등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그 열등감이 극대화된 부분이 바로 연극의 제목이라 생각한다.

 

아까 말했다시피 이 연극은 살리에리의 시선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극의 절반 넘게 그의 독백과 대사가 이어지고 아마데우스를 묘사함과 동시에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대사의 비중으로만 본다면 연극의 제목이 ‘살리에리’이어야 하지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잘못을 고해하는 그 순간조차 주인공을 ‘아마데우스’로 설정하면서 그가 평생 느꼈을 열등감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존감이 낮아졌고 아무도 자신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아마데우스만을 찾는다고 생각해 결국 상대방을 파괴했다. 하지만 뒤돌아보니 누구보다 살리에리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자기 자신임을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양심도 썩어갔고 자신이 더 망가졌음도 그는 느꼈을 것이다. 적어도 살리에리의 삶에서는 주인공이 자기 자신이어야 했지만, 마지막까지 자신보다 아마데우스를 이야기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게 다가왔다.

 

 


<아마데우스>의 결말



마지막, 레퀴엠 진혼미사곡을 만들 때 무너질 대로 무너지고 망가진 모차르트를 보며 그의 마지막을 함께한 살리에리가 신을 이겼다고 생각했을까? 자신의 욕망이 그를 죽게 했다고 후회했을까...?


살리에리 입장에서 나는 그의 행동에 공감이 가고 그를 이해한다. 나도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재능을 가진 친구를 보면 질투가 나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이루어 왔던 것들을 가뿐히 해내는 것을 보면서 자괴감이 빠져든다. 살리에리는 결국 자신의 능력을 높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교묘하게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여기서 살리에리의 신에 대한 원망이 극화된다.


 

당신의 평범함을 용서합니다.

 


평범함의 수호신이 된 그가 평범한 우리가 재능을 가진 자를 질투하고 그를 넘어서기 위해 악해진다 해도 우리를 이해하며 용서한다고 말한다. 우리 대부분이, 많은 사람이 남들의 시선을 중요시하고 남과 비교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재능을 가진 친구나 사람을 질투하고 시기했던 기억이 날수록 살리에리에게 더 번민을 느끼고 그가 안타까웠다. 그래서 가끔, 그러한 감정이 들 때면 계속해서 살리에리가 생각난다. 적어도 난 모차르트보다는 살리에리였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평범함을 추구하지만, 속으로는 남을 질투하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아마데우스'를 추천한다. 당신이 그렇다면, 살리에리가 당신을 반기며 당신은 죄가 없다고 다독여줄 것이다.


볼프강 모차르트 아마데우스의 이야기를 듣고자 갔던 이 연극에서 나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감정과 기분을 느끼면서 위로를 받으며 집에 간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아마데우스>를 떠올리며 다시 내 기억 속 감정들을 꺼내어보니 더욱더 극장으로 향하고 싶다. 상황이 나아진다면, 다시 극장에 찾아가 <아마데우스>의 이야기를 보고, 어떠한 변화가 생겼는지, 그리고 나에겐 어떤 감정의 변화가 일어날지 찾아보고 싶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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