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구원은 셀프다 : 허니보이(2019) [영화]

글 입력 2020.11.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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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 당시 나는 첫 알바를 시작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달리면 나오는 개인 카페였다. 나는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7시간을 일했으며 주문, 음료 제조 및 청소를 맡았다. 무척이나 간단한 것들이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업무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스퀴저에 레몬이나 자몽을 얹은 뒤 과육을 짜내기, 잼이 담긴 병 뚜껑을 뽁 소리가 나게 열기, 설거지 빨리 하기, 행주의 물기를 완벽하게 터는 일 같은 능숙함을 요구하는 일들에 서툴었다.

 

뚜껑을 열기 위해 있는 힘껏 힘을 가하다보면 뚜껑이 예기치 못한 곳으로 날아가며 잼은 여기저기 튀겼고, 설거지를 하려고 비누 거품을 열심히 묻히다 보면 손놀림이 느릿해졌다. 물기를 꼭 짰다고 생각하고 널어둔 행주가 사장님의 손에 들어가면 그렇게 많은 물방울들을 떨어뜨릴 수 없었고.

 

처음 해보는 일이였다. 집에서 나는 청소나 설거지 등의 일들을 도맡아 하지 않은 사람이었던 내게 신속한 설거지란 별 네개의 난이도였고, 그 외의 업무들 역시 생소하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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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보이(honeyboy) 2019>

 


알바하며 마주칠 수 있는 간단한 상황을 예시로 들었으나, 사실 그 시기의 나는 여러모로 의존적이었고 어렸다. 한번에 해내지 못한 일은 곧바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걸 당연시 여겼다.

 

3년이 흐른 지금, 나는 그동안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결국은 자기가 스스로를 구한다는 것. 구원은 셀프라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이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2019년에 개봉한 '허니 보이'라는 영화가 있다. 배우로 일하는 어린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둘 사이의 관계는 혼란스럽고 불안하기 짝이없다.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지속적으로 폭언을 일삼고, 본인의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아들을 무시하는 방법을 택한다. 아이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계속해서 작아져만 가고.

 

이 영화가 특별한 것은 샤이아 러버프 본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샤이아 러버프는 극 중 아버지를 연기한 인물이며,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장본인이기도 하다. 허니보이라는 제목은 어렸을 때 그의 별명이었고, 실제로 그는 어린 나이부터 연기를 했으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다.

 

그가 선택한 치유의 방법은 바로 본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었다.

 

창작이 곧 치유가 된 것이다.

 

 

구원은 셀프.png

<허니보이(honeyboy) 2019>

 

 

영화 속 어디에서도 그의 상처가 치유되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말은 나온다. "원한 없는 사람 없다. 죽도록 힘들게 한 사람 한 명씩은 있다고. (Every single one of us got a grudge. Every single one of us got somebody that fucked us over.)" 이 말은 꼭, 본인을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아버지를 이해해볼 수도 있겠다고.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그래보겠다고 다짐하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그랬다. 샤이아 러버프가 영화 각본을 썼듯이, 나는 글을 썼다. 알바하고 집에 돌아온 밤 자려고 누우면 실수한게 떠오르고, 아마추어같은 모습만 보인게 괴로울 땐 묵직한 마음을 종이에 털어놓았다. 인간 관계에서 상처 받았을 때도 글을 쓰며 감정을 해소했고. 습관처럼 썼다.

 

쓴다고 해서 내 고민이 마법처럼 해결되는 건, 물론 절대 아니다. 하지만 내 감정을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만큼은 들었다. 힘들 때 누군가에게 과하게 의존하면서 그 사람이 있어야만 내 마음이 괜찮아지는 건 어쩐지 불안한 일이지만, 내 스스로 힘듦을 경감시키려는건 건강한 방법이니까.

 

그래서 요즘도 습관적으로 되뇌인다. 구원은 셀프라고.

 

감정이 얽혀있는 문제는 더더욱 그렇다. 나에게 잘못한 상대에게 사과를 받는 일이 어렵기도 하니까. 계속해서 아파하는 것보다, 나의 건강한 마음을 위해 상대를 잠정적으로 이해하고 용서한 후 나는 내 할 일을 하는 것. 그 편이 가장 생산적이고 좋은 것 같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스스로를 구원할만한 힘이 있고.

 

 



[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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