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망록을 대하는 태도 - 음탕한 늙인이의 비망록

"쓰라고요."
글 입력 2020.11.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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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솔직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들 중에서, 정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라고 어제도 생각했고, 오늘도 생각했다. ‘드러낸다는 것’은 가장 단순한 것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복잡하고 예민한 부분이기에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찰스 부코스키는 역시 달랐다.

 

그가 발표하는 작품마다 비난을 받고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를 알 정도로 문장이 굉장히 부산스럽고, 껄끄럽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 이 책을 거부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꾸역꾸역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생각을 꾸며내서 가다듬는 것이 아니라, 거칠고 투박하지만 찰스 부코스키(자기 자신)를 드러내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느 때와 다름없이 자려고 눕자,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어 ‘나’를 되돌아봤다. 요새 하도 ‘갈증’을 심하게 느끼는 데, 이 갈증은 얼음 물이 동동 띄어져 있는 차가운 물을 마신다고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갈증이었다. 사실 왜 이런 답답한 갈증을 느끼는지 너무 잘 알았지만, 어디에도 직접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혼자 꽁꽁 숨겨두었다.

 

그러나, 조금 용기를 내어 어떤 답답한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 과감하게 들춰보려고 한다.

 

 

말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말이 적은 사람도 되고 싶지 않은데 그 적절한 말의 길이를 못 찾겠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고, 상처를 받고 싶지도 않다.라는 생각이 너무 확고하게 박혀있어 너무 조심하려다 보니 말이 점점 사라지고,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게 어색해졌다.

 

그래서 요새 마음 한 편이 너무 답답하다. 어떤 말이 됐든 뚫릴 수 있도록 속 시원하게 모든 말을 하고 싶은데 맘처럼 쉽지 않다. 계속 물이 빠지지 않고 고여 있는 느낌이다. 어서 물이 시원하게 빠져나가야 하는데 계속 고이고 고여서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찰스 부코스키를 만나기 한 달 전, 순식간에 쓴 짧은 일기다.

 

이 날 밤, 복잡스럽게 사색을 했던 시간이 아무렇지 않게 해결이 됐을 정도로 부코스키의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은 간단하지만 확실한 솔루션을 내줬다.

 

친한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사소한 고민 하나 말하는 것이 부끄럽고, 내 이야기를 하면 나를 다 알아 버릴 수 있다는 것에 겁이 났다. 대화를 하면서, 함께 놀면서 늘 적절한 대화 길이를 계산하고 감정을 덜어내려고 했다. 나를 최대한 보여주지 않는 것에 대해 만족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듣는 입장이었다. 어느새 인간관계에서 나의 역할은 누구의 고민과 에피소드를 들어주는 사람만 되어버렸다. 그에 응하는 적재 적소한 리액션의 자세만 늘뿐, 나라는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내가 증발되기 일부 직전인 그런 찝찝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미치도록 답답했고 짜증이 났다. 그래서 나에게도 있는 아기자기한 소스들을 영화나, 책을 읽고 융합시켜 글을 쓰는 것에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더니 비로소 갈증이 조금씩 해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큰 세계를 보게 만들어주는 영화와 책이 나한테 들어오는 과정에서 충분히 이해를 했는지, 이해를 하는 척을 하고 있는 건지 또 의문점이 들기 시작했다. 나를 또 의심하게 되었다. ‘지금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한 건가?’ ‘작가가 쓴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을 해도 되는 건가?’ 그래서 내가 쓰고 있는 ‘이 견해들이 실수로 차선을 넘지 않고 올바르게 달리고 있는 중인가?’

 

 

37p

그가 명쾌하게 말했다. “쓰라고요."

이걸로 끝이다.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이 외면을 받았지만 그에 굴복하지 않고 수많은 짧고, 긴 작품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37페이지에 짧지만 강단 있는 문장이 답이지 아닐까 싶다.

 

24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글감들이 머릿속에 떠다니고, 글감들은 마치 자신을 붙잡아 달라는 것처럼,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다. 가끔 신박한 글감들을 잡게 되면 사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서 생각을 풀어나가야 할지 몰라 꽤 오랜 시간 동안 노트북 앞에 머물다가, 머물다가, 그냥 머물다가 끝나버린다. 최대한 예쁘고 깔끔한 글만 쓰고 싶다는 기질이 몸에 가득 배어 있어서 놓쳤던 것들이 많다.

 

그래서 저도 이제 찰스 부코스키님처럼 그냥 “쓰려고요.”

 

 



[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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