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얼룩진 찰스 부코스키의 감정선 -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그의 곁에 있던 모든 자극
글 입력 2020.11.2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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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에세이가 묶여져 있는 이 책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찰스 부코스키의 삶의 모습이 비교적 쉽게 그려졌다.

 

그러나 글이 쉽고, 매끄럽게 읽히지는 않았다. 섹스, 여자, 술 같은 노골적이고 퇴폐적인 단어들로 연결된 문장들이 넘쳐 부코스키의 격렬한 감정선을 이해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딘지 모를 중독되는 글감들로 이뤄지고 있는 이 책에 시선을 모으며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책에 비해 읽는 속도가 여전히 더디게 읽혀져 필사를 하며 찰스 부코스키의 감정선에 최대한 대입해봤다.

 

필사를 하다 보니, 굉장히 많은 문장이 페이지 수와 함께 공책에 적혀지기 시작했다.

 

나는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을 거시적인 측면에서 모든 걸 이해하기보다는, 한 문장 안에 깃들여져 있는 찰스 부코스키의 세계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 꼭 소개하고 싶은 문장과 그 이유에 대해서 나열해보려고 한다.

 

 

125p

팔 다리/ 눈과 뇌/ 고추와 불알/ 배꼽과 모든 것이 다 살아있는 상태로 죽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143p

뭘 사야 한다면 현찰을 내고 값싼 장신구나 튀는 게 아니라 가치 있는 것만 구입하라. 자기가 가진 걸 여행 가방 한 개에 다 넣어야 한다. 그러면 마음이 가벼워질 것이다.

 

 

157p

나만의 좋은 책을 찾는 방법은 책을 펼치고 종이에 인쇄된 형태를 살피는 것. 인쇄 형태가 좋아 보이면 한 단락을 읽고, 그 단락이 잘 읽히면 그 책을 뽑아 읽었다.

 

 

159p

가치 없는 여자가 아니라 문학의 의미를 두고 싸움이 벌어졌다는 게 상상이 가는가?

 

 

굉장히 평범해 보이는 말을 문장으로 그대로 읊어놓은 것 같아 보이지만 찰스 부코스키는 독자들의 마음을 똑똑하게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 타고난 사람처럼 보였다.

 

많은 작가들에게 글감으로 쓰이는 죽음, 인생, 문학, 여자에 대해 툭 풀어 써 놓은 것 같아 보이지만 이 단어들을 응용해 매우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사색하는 과정을 만들어준다.

 

글에서 표현의 색채감을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 경험해보지 못한 생각을 확장시켜 주는 것이 작가의 본분으로 생각하는 나에게 찰스 부코스키는 영감을 심어주었다.

 

어떤 이들에겐 매 순간을 음란하고 방탕하게 산 예술가처럼 보이겠지만, 그에겐 이 모든 과정이 작가로서 탐험하는 방법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 안에 있는 수만 가지의 감정들을 풀어내야 할 곳이 ‘책’을 내는 것이라는 것을 몸의 소리로 들었는데, 분출하지 못하는 그 감정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예상이 간다. 새로운 경험과 모험이 필요했고, 뮤즈가 필요했을 테고, 자극을 불어 넣어줄 무언가. 즉 끊임없는 신선함이 필요했었을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예술은 그래서 힘든 것이다. 금전적으로 살아남지 못해서 불안하고 초조한 것도 일정 부분 있겠지만, 자극과 영감이 일정 수준에서 뛰어넘지 못한다는 생각에 강박증을 느끼고 풀리지 않는 갈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쓰는 걸 놓치지 않았던 찰스 부코스키.

 

살아생전, 온 몸에 있는 에너지를 다 방출 시켜서 그런지 그의 묘비명은 ‘애쓰지 마라’고 정했다고 한다. 누구보다 공격적이고, 애쓰며 산 사람이 ‘애쓰지 마라’라고 하니 그의 답이 정답인 것 같으나 ,그 반대로 살고 싶다는 욕구를 심어주었다.

 

나는 꼭 매 순간을 애쓰고 살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찰스 부코스키처럼 누군가에게 애쓰지 마라.(부질없다)라는 말을 건넬 수 있는 자격이 있도록 후회 없는 삶, 내가 간절하게 원하는 ‘쓰고 싶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 PORTIONS FROM WINE-STAINED NOTEBOOK -


지은이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엮은이
데이비드 스티븐 칼론
(David Stephen Calonne)
 
옮긴이 : 공민희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외국에세이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400쪽

발행일
2020년 10월 23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90234-10-8 (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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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
 
1920년 8월 16일 독일 안더나흐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건너갔고 로스앤젤레스에서 평생을 살았다. 로스앤젤레스시티컬리지를 2년 만에 중퇴하고 독학으로 작가 훈련을 했다. 로스앤젤레스시립중앙도서관에서 청춘을 보내며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니체, DH 로렌스, 셀린, EE 커밍스, 파운드, 판테, 사로얀 등의 영향을 받았다. 스물네 살 때 잡지에 첫 단편을 발표한 이후 창고와 공장을 전전하다 우연히 취직한 우체국에서 우편 분류와 배달 직원으로 12년간 일하며 시를 쓴다. 잦은 지각과 결근으로 해고 직전에 있을 때, 전업으로 글을 쓰면 매달 100달러를 지급하겠다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인 일화는 유명하다.
 
미국 주류 문단의 이단아에서 전 세계 독자들이 열광적으로 추종하는 최고의 작가가 된 찰스 부코스키. 그의 작품은 그의 분신인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가 이끌어 간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한 책이라는 명성만큼 수많은 예술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평생 60여 권의 소설과 시집, 산문집을 출간했으며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했다. 미키 루크 주연의 《술고래(Barfly)》(1987)를 비롯하여 그의 작품과 인생을 다룬 10여 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마지막 장편소설 《펄프》를 완성하고 1994년 3월 9일 캘리포니아주 산페드로에서 백혈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묘비명은 "애쓰지 마라(Don't Try)."
 
《우체국(Post Office)》(1971), 《팩토텀(Factotum)》(1975), 《여자들(Women)》(1978), 《호밀빵 햄 샌드위치(Ham on Rye)》(1982), 《평범한 광기 이야기(Tales of Ordinary Madness)》(1983), 《할리우드(Hollywood)》(1989), 《펄프(Pulp)》(1994) 등의 작품이 있다.
 


[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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