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네 캔 만원 맥주를 마시며 부코스키와 처절한 예술에 대해 끼적인 글 -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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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완전히 망치고 싶은 충동이 들 때 유머와 외설과 알코올은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세 요소를 다 담았다. 찰스 부코스키의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이다.
연극 동아리 동기 중 작가를 지망하는 친구가 오랫동안 카톡 배경으로 삼은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시집 표지로 찰스 부코스키를 처음 만났다. 취미 연극 동아리 / 진지한 작가 지망생 / 카톡 배경화면 / 망할 놈의 예술 / 예술에 일찌감치 발을 빼고 멀리서 그 책 제목을 보는 나까지 이 모든 상황이 찰스 부코스키를 처음 만나기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연히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 일환으로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과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중 하나를 골라 읽을 기회가 주어졌는데,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은 왠지 불쾌감이 들어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을 골랐다. 막상 책을 받아보니 목차에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이라는 산문이 같은 제목으로 네 편이나 실려있는 걸 보고 작가만큼 웃기는 편집진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어보니 과연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라고 시집 제목을 지은 작가의 기세가 느껴졌다. 솔직해서 속이 울렁거리는 글이 가득했다. 어떤 에세이는 제목부터 지독하다.
〈여섯 개들이 맥주팩을 마시며 시와 처절한 삶에 대해 끼적인 글〉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옛날에는 내가 천재라고 생각했고 굶주렸고 아무도 내 글을 출간해 주지 않아서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낭비했다.
내가 불쾌감이 들어 고르지 않았던 책과 같은 제목인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1973)에는 생활감이 느껴지면서도 시니컬한 문장이 실려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글이다.
방금 녹은 버터를 바른 새끼 문어를 먹어치웠는데, 그러고 나서 거울을 들여다보니 눈동자가 여전히 8월의 장대비처럼 정신없고 미친 듯 보였다. 라흐마니노프를 듣지 않고 버터랑 문어를 먹으면 안 되는 모양이다. 어쩌면 특별한 소스가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 시민으로서 햄버거와 록 음악만 고수해야겠다. 생각은 섹스보다 위험하다. 훌륭한 미국 시민은 생각하지 않는다.
유머와 외설과 알코올이 고루 들어간 글을 읽으며 나는 불쾌감을 느꼈고 내 삶에 안도했다. 난 이런 식으로 불행한 예술가의 덕을 봤다.
찰스 부코스키의 책은 역대 미국 서점에서 가장 많이 도둑맞았다는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나와 같은 방식은 아니더라도 부코스키의 글이 뭔가를 울렸다고 짐작한다. 다름이 아니라 불쾌하고 염세적인 글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화가 벤 샨은 《예술가의 공부》에서 예술의 발생 원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예술이 발생하는 원천은 자극이나 심지어 영감보다 더 강렬한 어떤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술은 차라리 도발에 가까운 어떤 것에서 불붙는지도 모른다고, 단지 삶에 의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삶에 의해 강제되는지도 모른다고 말이에요. 예술은 거의 언제나 건방진 구석이 있고 기성의 권위를 경멸합니다. 따라서 예술 그 자체의 권위와 번영마저 갈아 치울 수도 있습니다.
- 벤 샨, 《예술가의 공부》, 유유
사회는 그렇게 발생된 불행한 예술가의 덕을 본다. 〈《짐 로웰을 기리며》의 무제 에세이〉에서 부코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훌륭한 예술, 즉 창작은 일반적으로 실제 권력자와 경찰국가보다 200년하고 20년 더 앞서 있다. 훌륭한 예술은 이해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두려움을 줘야 한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예술은 현재가 매우 나쁘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전혀 담기지 않았고 그 언사가 그들의 직장, 영혼, 아이들, 아내. 새 차, 장미 덩굴마저 위협한다. ‘외설’이란 자신의 썩은 뿌리를 감추기 위해 창의적인 인간의 작품과 전초기지를 공격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러니까 찰스 부코스키의 책에 외설이 담겨있다고 한 이 글의 시작은 부코스키에 따르면 “수준 높은 글을 이해하고 즐기고 소화할 수 있는 독자”가 아니라는 증거다. 인정한다. 나는 이 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유머, 외설, 알코올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알코올은 제목의 탓으로 돌린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뭘까.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은 찰스 부코스키의 에세이, 소설, 시, 그 밖의 이것저것을 엮어 만든 책이다. 〈긴 거절 편지의 여파〉는 1944년에 쓴 초기작인가 하면,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은 1973년에 쓴 글이다. 부코스키가 전 생애에 걸쳐 쓴 글의 경향성을 유머와 외설로 묶기엔 부족하다.
난 이 책을 덜 재밌고 더 진지한 키워드, ‘예술하는 인간’으로 묶고 싶다. 이 책은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여섯 개들이 맥주팩을 마시며 시와 처절한 삶에 대해” 글을 쓰지만 “실제 권력자와 경찰국가보다 200년하고 20년을 앞서” 있는 “두려움을 주”는 예술을 추구하는 인간이 쓴 글을 묶어 만들었다.
다시 말해, 삶을 완전히 망치고 싶은 충동이 들 때 찰스 부코스키와 찰스 부코스키와 찰스 부코스키는 도움이 된다.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PORTIONS FROM WINE-STAINED NOTEBOOK -지은이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엮은이데이비드 스티븐 칼론(David Stephen Calonne)옮긴이 : 공민희출판사 : 도서출판 잔분야외국에세이규격130×195(mm) / 페이퍼백쪽 수 : 400쪽발행일2020년 10월 23일정가 : 14,800원ISBN979-11-90234-10-8 (03840)[유보미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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