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두 번의 이사

나도 참 많이 변했다는 걸 깨달았다
글 입력 2020.11.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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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에서 7년을 살았고, 그 후로는 안산에 쭉 머물렀다. 자그마치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집에서 지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몇 개월 전, 부모님께서 이사를 하자고 하셨다. 드디어 이곳을 벗어난다니-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던 나는 그 변화가 꽤 달갑게 느껴졌다. 그렇게 설레는 감정을 간직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이삿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막상 이사를 위해 집 밖으로 나오니 공허함이 느껴졌다. 언제부턴가 정이 든 건지 이렇게나 익숙한 공간이 타인의 공간으로 변하니 시원섭섭하기도 했다. 정말로 오랫동안 살았던 거처를 옮겨서일까? 전에 살던 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집’, ‘이사’와 같은 키워드를 놓고 생각을 펼치다 보니 내 고향 서울, 그곳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부모님의 기억을 빌려 말해보자면, 나는 끼가 많은 아이였다. 유치원에서 학예회가 열리는 날은 내가 주인공인 날이나 다름없었다. 무대에서 깜찍 발랄한 춤사위를 뽐내며 당당하게 임하는 모습에 감탄이 쏟아졌다. 그만큼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했던 나. 그런 나의 소원은 “미녀와 야수랑 결혼하고 싶어요.”였다. 둘 중에 누구랑 결혼하고 싶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부모님은 나의 황당한 답변에 한참을 웃으셨다고 한다. 동화 속 공주가 되기를 원했던 걸까? 방에 수많은 공주 원피스가 깔렸었던 게 기억난다.

   

그 외에도 맥주를 물인 줄 알고 마셨던 기억, 아버지의 목에 매달려 공원을 구경했던 기억, 이름 모를 남자아이의 수줍은 고백을 받았던 기억 등이 떠오른다. 나에게는 그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아직도 생생하신가 보다. 가끔 훌쩍 커버린 나를 보면서 꼬꼬마 시절이 떠오른다고 하신다.

 

그리고 나서 바래진 추억들을 하나둘 꺼내 놓으시는데, 익숙한 듯 낯선 기억의 보따리에 내 고향의 향기를 다시금 맡게 된다. 이렇게 부모님의 기억은 나의 기억으로 뒤바뀌어 서울에서 보냈던 날들을 떠올리게 한다. 무언가 밝고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온다. 단지 회상에 젖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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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웠던 유치원 시절을 마치고 안산으로 이사를 왔다. 곧바로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 나는 낯선 사람, 공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급격히 조용해졌다. 이 때문에 어딜 가든 얌전하고 착한 아이로 통했다.

 

그렇게 몇 년을 ‘착한 아이’로 지냈다. 정말이지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화낼 줄도 몰랐고 부탁을 거절할 줄도 몰랐다. 일종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달까.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내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지만, 이내 그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점점 착한 거짓말을 수시로 하게 되었다. 입 밖으로는 절대 내뱉지 못할 어두운 생각들이 쌓여나갔다. 자신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면 실망감을 표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더욱 속이 곪아갔다. 착한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혹여나 날 싫어할까 봐 그러지 못했다. 그저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애정 결핍이었을지도?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며 본래의 나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남들의 시선에 부담을 갖기보다 오히려 즐기기 시작했다.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 화목한 분위기의 환경 속에서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나의 못나고 삐뚠 면까지 받아 들여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를 온전히 내려놓게 되었다. 그제야 내가 감정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편이란 걸 알게 되었다.

 

더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하고 싶은 건 맘껏 하자며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내가 가진 열정을 모두 쏟아부으며 말이다. 심지어 매번 리더라는 직책을 수행했다. 그토록 조용했던 내가 사람들을 이끌게 되니 참으로 신기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일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들과 친분을 맺고 더 알아가는 과정이 정말 즐겁게 느껴졌다. 진짜 나를 보여주었을 때 가질 실망감 같은 건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이런 나라도 받아줄 사람만 곁에 남기자는 태도로 임했다. 말이 오길 기다리는 나-먼저 말을 건네는 나로 변화했다. 나는 이러한 사람인데, 당신은 어떤 사람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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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달리 어디서나 밝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으로 통하게 되었다. 내 안에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들을 곳곳에 뿌리고 다니며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인생 뭐 있어, 즐겨!”라는 마인드로 살아나갔다. 비록 좋은 일만 가득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일이 찾아오지도 않았다. 이 또한 내게 주어진 귀한 시간임을 잊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이렇게 살다 보니 어른이 되어 마주한 현실에 씁쓸함이 찾아온 것도 사실이다. 마냥 즐기고만 싶었던 나도 자신의 가치를 빛내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더 바빠지자고 마음먹었다. 진정 원하던 것들을 하나씩 이뤄가는 나는 어느 순간보다 뜨겁고, 빛나고, 반짝거린다.

 

행복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란 걸. 끝없는 열정과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선물임을 안다. 이를 믿고 달려가다 보니 좋은 일들이 계속해서 찾아온다. 덕분에 아무리 힘들어도 지치지 않는다. 나의 에너지를 쏟아내는 게 즐거울 뿐.

 

정들었던 집에서 나와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는 이 시간이 참 운치 있게 느껴진다. 좀처럼 잊고 있던 소중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의 10대 시절을 알록달록하게 채워놓은 곳을 떠나니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도 빛날 나를 채울 공간에 자리하니 설렘이 앞선다. 이제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넘겨 써 내릴 일만 남았다.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새집에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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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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