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구원받지 못할 세상에서 부르는 노래 -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글 입력 2020.11.25 07:0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_도서이미지_도서출판잔.jpg

 

 

세상이 구원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 P.87

 

 

찰스 부코스키의 악명을 걱정하며 펼친 책은 생각보다 거북하지 았았다.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을 읽는 것은 그저 날것 그대로인 작의 생각과 말들을 읽어내릴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찰스 부코스키의 예술관과 인생관은 누구보다 다른 누구에게라도, 그리고 작가 자신에게도 떳떳하고 정직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그의 삶이 오차 없이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찰스 부코스키는 그의 글 안에서 늘 취해 있고, 신경질을 부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온 세상과 그의 눈에 띄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눈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어 있기’ 때문이다.

 

예술적이고 창조적이지 않은 삶은 죽음과 같다고 외치는 그에게는 모든 일상적인, 직업적인 행위와 삶 모두가 ‘즐겁고 마비된 죽음’이다. 예술을 특별하거나 고결한 것으로 치켜세우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찰스 부코스키가 하고자 하는 말은 정반대이다.

 

그는 삶과 유리된 예술, 쿠키를 씹어 삼키며 쓰이고 읽히는 모든 시, 레코드 선반 위에 감옥처럼 정열된 LP들을 예술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한 예술품들은 그에게 모두 ‘더러운’ 것에 불과하다.


 

우리의 예술은 우리의 고통을 이성으로 바꾸는 행위다. - P.69


고통은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 빈곤도 마찬가지다. 예술가가 그보다 먼저다. 그를 만드는 건 전적으로 운이다. - P.60

 


찰스 부코스키에게 있어 진정한 예술이란, 오직 진정한 삶과 일상에 가까워지는 것들과 어쩌면 그 태도 자체이다. 즉 그에게 ‘예술적인 삶’이란 어쩌면 무의미한 단어이며, 예술을 통한 삶, 예술에 가까워지는 삶만이 그에게 유의미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눈에 띄는 것은 예술과 고통의 관계에 대한 그의 정의인데, 찰스 부코스키는 예술은 우리의 고통을 이성으로 바뀌는 행위라고 명명하면서도 동시에 고통이 예술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라 단언한다. 이것은 꽤 과감한 주장처럼 여겨지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고통 속에서 고귀한 예술이 탄생한다고 쉽게 믿어 버리기 때문이다.


즉 찰스 부코스키가 말한 예술의 재료로서의 고통은 더 나은 미래, 더 나은 나를 향한 우리의 순수한 고뇌와 고독에서 탄생하는 ‘받을 만한’ 고통이다. 빈곤이나 전쟁과 같은 고통은, 나에게 있어서는 안 될 고통이듯이 다른 누구에게라도 불필요한 고통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우리는 그의 안에 깃든 인류애적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고통을 겪지만, 나와 다른 존재의 고통 역시 불필요하다고 온몸으로 외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찰스 부코스키는 시를 통해 그것을 얘기하자고 말한다고 느꼈다.


 

삶의 시를 쓰는 상당수의 우리는 점차 지치고 슬프고 지겹고 거의 얻어터졌다. 그래도 우리는 신성한 신이 필요하지 않고, 구원받을 정원이 필요하지 않고, 자유를 얻을 전쟁이 필요하지 않고… (중략)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대신 사랑스러운 소녀들이 늙어 버린 것, 맥주를 쏟은 것, 슬픈 사랑에 취해 잔디밭에서 싸운 것에 대한 작은 눈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 P.93



찰스 부코스키가 암시한 것처럼, 시의 삶을 살아가는 일은 괴롭다. 판에 박힌 일상을 살아가는 손쉬운 삶을 벗어던져야 하고, 불필요한 남의 고통에까지 귀기울여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런 세상을 바꾸자고 피와 살을 깎아 외쳐야 한다.

 

구원받지 못할 세상에 살아간다는 고통과 자조에 젖고 술과 섹스에 취해 인류애를 꿈꾸는 그의 삶과 글은 어쩐지 서글펐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함께 예술을 하고 시를 쓰자는 말로 읽힌다. 거창하게 정리했지만 기저에 깔린 본질은 단순한 권유일 거라 생각해 본다.

 

넌 부지런히, 너의 글을 써. 다른 모든 것들이 아닌, 너의 삶 속에서 빛났다 사라지는 이야기들을.

 

 

*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 PORTIONS FROM WINE-STAINED NOTEBOOK -


지은이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엮은이
데이비드 스티븐 칼론
(David Stephen Calonne)
 
옮긴이 : 공민희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외국에세이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400쪽

발행일
2020년 10월 23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90234-10-8 (03840)

 

 


[김현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10.0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