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도서]

글 입력 2020.11.19 16:5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briquettes-2896186_1920.jpg

 

 

도서의 제목을 보고 단번에 보고 싶은 책이 되었다. 시를 본지도 꽤 오래되었고(실은 도서 ‘당신은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에서 역시 좋은 시들을 보았고, 알게 되었긴 했지만 그래도), 시만이 가진 그 짧지만 옹골참의 매력과 나태주 시인의 따뜻한 문장과 삶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도서 권장량 덕분에 보았던 몇 편의 시집도, 동네 도서관에서 느낌에 끌려 불쑥 집어 들었던 시집도. 모두 단편영화처럼 짧고 굵은 메시지를 내게 보내왔었다.

 

한참 앓고 있었던 고민의 해결을 단 한 문장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진한 감동으로 메말랐던 감성을 적셔주었던 그때가 생각나, 다시 한번 ‘시’에 풍덩 빠져 둥둥 떠다니는 느낌으로 감상해본다.


 

 

너에게 묻는다_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시를 처음 본 건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이전에 봤었을 수도 있지만, 뇌리에 박혔던 건 그때였지 않나 싶다.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순간 헙, 하고 말문이 턱 막힌 건 예나 지금이나 같다.


열렬히 희생하고, 내 목숨 다 바쳐 헌신해 본분을 다하는 연탄재 같은 삶을 생각하고 있으니 대단함을 넘어 고귀함까지 느껴진다. 작가는 “인간은 남을 챙기고 위하기보다는 자기의 일에 급급한 목숨들이다.

 

하지만, 자기를 다스려서라도 타인을 위하는 삶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언젠가 기고한 글에서 나는, 내가 나의 인생이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 해도, 그래도 괜찮은 삶이진 않겠냐고 말한 적이 있다.


‘내 인생을 타인을 위해 사는 것’으로 생각의 결론이 났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나 자신의 ‘마음의 여유’가 저기 먼 깊은 바다처럼 잔잔하고 넓을 때라야 느끼는, 인생에 몇 번 없을 드문 일이란 걸 알았기에 그 생각에 스스로 놀라면서도 표현 못 할 기분 좋음을 느꼈다. 뿌듯하다고 할까, 다행이라고 할까. 이루 말할 수 없는 편안함과 미소의 느낌이었다. 말마따나 작가가 말하는 ‘사랑스러운 세상을 잠시 만난’ 느낌이라 해두자.


대가 없는, 따지고 들지 않는 희생, 타인을 위한 삶을 매일같이 살지는 못할지언정, 연탄재처럼 살아가는 이들을 욕할 이유도 없다. 나 역시 그런 깨달음 이전에, 때때로 그런 사람을 보고 속으로 미련하고 바보 같다고 생각했으니, 이 자리를 빌려 ‘나는 너를 욕할 자격 없는 사람’이었다 말하며 반성해본다.



[크기변환]friends-3042751_1920.jpg

 

 

 

방문객_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ㅡ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작가는 시를 보며 “좋은 시, 좋은 문장은 막강한 힘을 갖는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그들의 삶을 바꾼다. 그만큼 좋은 시의 문장은 힘이 세다.”고 말한다.

 

이 말에 백번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언젠가 흩어질 인연이라도, 내 곁을 스쳐 가지 않고 머물러 있는/있었던 사람이 생각났다. 내가 함부로 생각했던 누군가와 이유 없이 나를 좋아했던 누군가, 이유 없이 내가 좋아했던 누군가 등.


안녕’이라고 말만 했지, 그의 역사가, 일생이 온다는 생각은 못 했다. 환대를 지나 곧이어 들어오는 익숙함이란 것이,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단언하게 하고, 이 사람은 항상 이렇지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열 길 물속보다 알기 힘든 복잡 미묘한 ‘사람’이란 존재와 그의 일생을, 종이접기 하듯 한 번에 접어 단순하게 만들었다. 비겁함에 존중하지 못했고, 익숙함에 속아 처음의 환대를 잊었다.

 

이 시를 보고 나니, 내게 어마어마한 일을 겪게 해 준, 그리고 함께 올 미래에 친히 나를 끼워줄 소중한 인연들과 다가올 방문객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d.jpg

감명 깊게 읽었던 시



국내 명시 114편과 나태주 시인만의 따뜻한 감상이 오늘의 내 삶 한편을 살리는 듯했다. 책장을 덮고 나자 세 가지의 기함이 연달아 토해 내졌다.

 

시들이 참 따뜻하면서 튼튼하다는 것. 나태주 시인의 다양한 감상과 그 안의 수준 높음이 보여 놀랍다는 것(이따금 생소한 단어들이 나와 생경했지만, 그 단어가 아니라면 표현하기 힘든 단어를 문장 안에 담아낸 것이 대단했다) 그리고 세상엔 참 좋은 시들(좋은 사람, 좋은 추억, 좋은 문장 등)이 많다는 것.


시가 내게 다가옴을 진-하게 느끼다가 훗날 잊히고, 지칠 때 다시 시들을 찾아가겠노라 다짐하게 한 멋진 책이었다. 이 시들을 느끼고 누린 시간이 꽉 채워진 것 같아 좋다.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_입체.jpg

 

 
*
 
시는 영혼의 상처를 다스려주고
거친 마음을 달래주는 약이다.
바로 사람을 살리는 시,
사람과 동행하는 시들이다.
 
한때 병마와 싸우며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도 했던 시인 나태주. 그가 극한 상황 속에서 자신을 일으킨 시, 삶을 위로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던 국내시 114편을 담았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에서부터 이병률의 <내 마음의 지도>까지.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국내시 114편이 나태주 시인의 안목과 목소리로 서술된다. 114편의 시마다 그때 다하지 못한 마음을 덧붙였고 나태주 시인의 개인적인 경험과 에피소드 등을 함께 엮어 삶의 깊이에서 오는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전한다.
 
"시에서 첫 문장은 신이 주시는 선물이다"라는 말이 있다. 시의 첫 문장을 풀어낸 시인은 이미 시를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을 보는 독특한 관점, 세상을 보는 새롭고 경이로운 안목 그리고 거친 마음을 만지는 시, 바로 이런 시가 사람을 살리는 시이고 사람과 동행하는 시일 것이다.
 
"인생은 후회와 회한의 연속이고, 시는 어리석은 날들의 기록이다. 내가 쓴 시에는 나의 청춘이 들어있다. 침몰 직전의 청춘. 난파선과 같은 날들이 넘실거린다." 라고 지난날을 회고했던 나태주 시인. 흔들릴 때마다 그와 동행했던 114편의 시를 읽다보면 삶에 쫓겨 놓쳐버린 청춘의 발자국과 당신의 첫 문장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 시는 찬란한 나의 편 -
 

엮은이
나태주

출판사 : &(앤드)

분야
한국시

규격
117*198㎜

쪽 수 : 260쪽

발행일
2020년 10월 30일

정가 : 14,500원

ISBN
979-11-90927-96-3 (03810)
 
 
[서지유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