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늦은 밤 '날 것'의 책 [도서]

책은 아주 단조로운 것들을 단조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글 입력 2020.11.1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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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읽는 행위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에세이라는 장르는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가면 하나의 예술이 된다. 나도, 당신도,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이들도 마음만 먹는다면 한 편의 에세이를 써 내려갈 수 있다.

 

그렇다면 매력적인 에세이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어느 작가의 답변은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겁니다.'

 

에세이란 나를 표현하는 장르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담아내는 다시 말해 공개된 일기장이다. 평범한 집순이보단 반대의 삶을 지향한다면 다채로운 글을 쓸 가능성이 높다. 일상은 글의 재료이니깐. 물론 평범한 삶을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특별한 순간으로 각색될 수도 있다. 혹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를 글에 담는다면 글의 소재의 독창성과는 상관없이 짙은 개성을 뽐내는 글이 되기도 한다.

 

'찰스 부코스키'의 글이 그렇다. 자신만의 틀에 맞춰 정제된 글은 표현에 있어 독보적이라고 표현할 만하다.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키워드는 '술, 여자, 섹스, 글, 책' 이다. 혐오스러운 내용이 있기도 하고, 지나치게 솔직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대중에게 '공개된 글'을 쓰는 작가에게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마저 들었다. 욕망이라는 가치를 부정적으로, 쾌락에 그치는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그의 글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의 글은 '날 것'이니깐. 당신의 예술에 대한 시선이 보수적이라면 부코스키의 글은 혁명적이라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 책을 애정하고 있는 이유를 말하자면, 작가의 글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가 내뱉는 농담은 솔직하고 친근하다. 그가 말하는 가치관은 진실하고 꾸밈이 없다. 우리의 지난 역사에서도 혁명은 매번 새로운 시선과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소설의 이단아'라 불리는 '찰스 부코스키', 그의 글도 우리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세계관을 넓혀주는 존재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제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은 글들을 다시 읊조려보며 책을 회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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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은 아주 단조로운 것들을 단조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p.58)



에세이의 본질이자 책을 시작하는 작가의 가치관을 투영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선망하는 재능이지 않을까. 글에는 어떠한 외침도 담겨있지 않다. 일상의 모든 것을 써 내려가고 상황을 통제할 뿐이다. 글을 쓰고자 한다면 명심해야 할 가치, 단조로운 것을 단조로운 방식으로 써 내려갈 뿐이다.

 

책을 읽을 땐 보통 필사를 하면서 마음에 드는 문구를 공책에 적어놓는 편인데, 유독 이번 책에선 그 양이 적다. 물론 양에 따라 책에 대한 만족도나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책과 작가를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엔 선호하는 작가의 책을 우선적으로 읽는 편이다. 표현방식이 익숙하고 마음에 들었던 감정선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책을 선택하곤 한다. 그리곤 수업을 듣는 것처럼, 혹은 재밌는 영화를 시청하는 것처럼 책과의 대면 만남을 진행하곤 한다. 책은 생물체가 아니기에 지금껏 나는 수용자였을 뿐이지 책과의 특별한 소통이 발생하진 않았다. (물론 작가 사인회나 드라마로 각색이 되어 보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을 읽으면서는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낸 동네 친구와 술 한잔하면서 나누는 대화를 떠올리곤 했다. 숨김이 없고 지나친 자랑과 허세 또한 없지만,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밤새도록 나눈 친구와의 대화는 즐겁지만 그렇다고 모든 대화의 내용을 기억하고 살진 않는다. 단지 들뜬 분위기와 오랜 친구라는 안정감에 술과 그날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을 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형성되는 작가와의 친밀감은 얼마나 귀중하면서도 가치 있는가. 애서가분들을 알 것이다. 나에게 '찰스 부코스키'란 로스앤젤레스에서 12년간 우체국에서 일하며 시를 써온 낭만적이면서도 끈기 있는 작가가 아니었다. 책을 읽는 늦은 밤, 그 몇 시간 동안은 나에게 허물없는 친구가 되었을 뿐이다.

 

 

 

2. 모두가 천재로 대접해서 난 그런 척을 하고 그런 글을  써야 했다. 어렵진 않았다. 천재가 되고 싶으면 유일한 사람이 되면 된다. (p.176)


 

창작을 해야 하는 분야의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법한 내용이다. 독특하다. 창의적이다.라는 평가는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작품에 대한 자부심 또한 높여준다. 성장을 하기 위한 채찍과 당근 중 개인의 창의성에 대한 인정은 무엇보다 달콤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린 가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창작의 주체가 타인이 되는 경우다. 대중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색이 아닌 일반적으로 사랑받는 색을 선택하곤 한다. 적당한 성공, 적당한 만족감을 느끼기 위한 선택이라면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면 결과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찰스 부코스키는 천재가 되는 방법이 어렵지 않다. 라고 말한 이유에 대해 유일한 사람이 되면 된다고 했다. 개인적인 해석으론 '나' 다운 사고를 하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동일한 상황이어도 타인과 내가 느낀 감정과 표현하는 방식은 다른 만큼 유일해지기 위해선 무엇보다 '나'다운 사람이 되면 된다는 것이다.

 

문화, 예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도전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작가의 말은 심심치 않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찰스 부코스키'는 우리가 작가 지망생이 아니라고 해도 술과 밤, 글과 이성을 좋아한다면 누구든 절친한 친구이자 동생으로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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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on't try. (비문)


 

'애쓰지 마라.' 세상의 끝에서 그가 건넨 마지막 인사다. 정말 그는 마지막까지 우리를 웃음 짓게 만든다. 누구보다 열정적인 인생을 살아온 듯한 그가 애쓰지 말라고 하니 괜히 안심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등 저명한 여러 작가들이 그에게 비판받았다. 아니 사실 비판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그의 취향을 말한 것일 뿐 어떠한 악의도 없었다. 자신의 취향과 성향, 욕구와 본능에 충실한 그의 삶이 이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나뿐일까.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그의 삶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입담에도.

 

이래서 에세이가 좋다. 코로나 19로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 못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인연을 만나지 않았는가. 그리고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내가 은연 중에 선망하고 있었던 삶의 표현방식을 그에게서 조금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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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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