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빨래를 짜고 털고 널면 생기는 일 - 뮤지컬 빨래 [공연예술]

뮤지컬 <빨래> 후기
글 입력 2020.11.1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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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뮤즈, 홍광호의 작품


 

내 인생의 뮤즈를 뽑자면 단언컨대 ‘홍광호’라 볼 수 있다. 오랫동안 품어온 꿈인 뮤지컬 연출가가 된다면, 극에 올리고 싶은 배우 1순위로 그를 꼽을 거다. 보통은 작품성을 보고 예매를 하는데, 홍광호가 등장한 경우라면 다르다. 그의 이름에 홀리듯이 예매 창의 버튼을 누르곤 한다. 심지어 내가 소속된 공연예술학회에서 개최한 ‘TMI(Tell Me your Inst)’ 전시회의 작품으로 올린 적도 있다. 그만큼 홍광호라는 인물에 열정과 사랑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뮤지컬 배우 중 그를 뮤즈로 삼았나.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실력’이다. 자신의 본업을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존경할 이유는 충분하다. 노래, 무용, 연기, 팬서비스까지 모두 잘하는 만능 플레이어 홍광호. 그는 앙상블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와 <지킬 앤 하이드>, <노트르담 드 파리>, <맨 오브 라만차> 같은 초대형 작품에서 주연 배우의 자리를 당당히 꿰찼다. 오직 본인만의 노력으로 최정상에 올라왔다고 본다.

 

그의 작품 중 최고로 뽑히는 건 <지킬 앤 하이드>다. 2019년 작에서 그의 지킬과 하이드를 만났는데, 그때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압도적인 노래 실력뿐만 아니라 이중인격을 표현하는 소름 끼치는 연기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환희가 일었다. 그는 친절하고 자상한 박사였다가 치명적이고 위험한 살인자로 변신하며 환상적인 노래를 선보였다. 가사 하나하나마다 다른 감성과 발성을 담아낸 그의 노래에 녹고 말았다. 밀려오는 전율에 감동의 쓰나미가 떠나갈 줄을 몰랐다.

 

매번 새로운 기쁨을 주는 그의 노래. 그중 가장 애정하는 넘버는 <빨래>의 ‘참 예뻐요’다. 듣기 좋은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 알맹이가 꽉 찬 단단한 발성, 달짝지근한 감성이 조화롭게 섞인 노래를 듣다 보면 귀가 황홀해진다. 이 때문에 <빨래>를 꼭 한번 관람하고 싶었다. 아니, 그 노래를 듣고 싶었달까. 그러다 품고만 있던 생각을 실현할 기회가 찾아왔고, 이를 망설임 없이 잡게 되었다. 그렇게 대학로로 향하는 발걸음은 여느 때와 같이 설레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뮤지컬, <빨래>


 

 

“잃어버린 꿈 어디 어느 방에 두고 왔는지 기억이 안 나요.”


고향인 강원도를 떠나 서울로 이사 온 27살, '서나영'.. 작가가 꿈이지만 퍽퍽한 서울살이에 잠시 꿈을 접고 반지하로 이사왔다. 작가는 못돼도 책은 좀 볼 것 같아 제일서점에서 일하고 있지만 책 진열만 하고 있을 뿐이다.


“울츠 산다 바야르스타벤.”


빨래를 널러 올라간 옥상에서 우연히 이웃집 몽골 청년 '솔롱고'를 만나게된다.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나라, 한국에 꿈을 찾아온 '솔롱고'는 '나영'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고 어색한 첫 인사를 나눈다. 그후, 두 사람은 바람에 날려 넘어간 빨래로 인해 조금씩 가까워지게 된다.


“우리도 때리면 아프고 슬프면 눈물 나는 사람인데”


어느 날 '나영'은 동료 언니를 부당하게 해고하려는 서점 사장 '빵'의 횡포에 맞서다 자신 역시 불이익을 당한다. 상심에 빠져 술에 취한 나영'은 집으로 가는길에 '솔롱고'를 만나게 되고 둘은 취객의 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서로를 위로하게 되는데...

 

- 시놉시스

 

 

한예종 학생들의 졸업작품이었다는 창작 뮤지컬 <빨래>. 이 작품은 초연 이후로 15년째 흥행 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다. 현재까지 총 5,000회의 공연이 진행되었으며 무려 24차의 프로덕션이 진행되었다. 그 덕분인지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굉장히 유명한 편이다. 주변의 여러 사람으로부터 추천을 받기도 했고 말이다.

 

주로 대형뮤지컬을 선호하던 나에게 소형뮤지컬의 편견을 깨준 작품이었다. 이에 뒤지지 않는 연출, 극본, 연기, 음악, 무대에 탄성이 나왔다. 가장 놀랐던 건 극본이었다. 정말로 탄탄한 작품성을 지닌 작품이었다. 매 차 조금씩 각색을 거치다 보니 2020년 작은 그만의 특징이 있었다. 이번에는 코로나 19로 힘든 현 상황을 잘 녹여내었고, 사전에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공지를 맛깔나게 소화해내어 시작부터 큰 웃음을 주었다.

 

무엇보다 ‘공감’이란 키워드를 곳곳에 잘 사용한 듯했다. 전 세대가 아우를 수 있는 소재를 여러 인물로 풀어내었기 때문이었다. 월세를 독촉하는 집주인과 기간을 늘려달라는 세입자, 못돼먹은 직장 상사와 남 흉보기를 즐기는 직원들, 사랑에 빠진 풋풋한 남녀부터 뜨거운 사랑을 불태우는 중년의 커플까지 어디선가 볼 법한 장면들이 스쳤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담아냈다고나 할까? 각자의 이야기는 다른 듯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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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 때로 지친 삶을 보내는 그들은 주어진 하루를 견디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하며 살아나갔다. 그러나 쓰디쓴 고통이 밀려 들어올 때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서나영’은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다 실직 위기에 처했고, ‘솔롱고’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급여를 받지 못했다. 동화처럼 꿈같다거나 마법처럼 환상적인 이야기는 없었다. 지나치게 아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빨래>는 이를 통해 우리를 공감하게 한다. 우리 모두에게 같은 아픔이 존재한다고 알린다. 비록 아픔의 양과 정도는 다를지 몰라도, 가슴이 욱신거리는 건 똑같다면서. 그러니 다시 힘을 내보자고 위로한다. 마치 빨래를 하듯이 모두 바람에 말려버리자고. 진심이 담긴 위로와 고백에 “고맙다. ”라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 때로는 곁에 닿아있는 이야기가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도저히 대학생들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았다. 웃다 울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공연이 끝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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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양한 플롯과 다채로운 무대 구성, 분위기를 더하는 조명과 음향, 감질나는 연기, 흔들림 없는 보컬도 전부 좋았다. 다만 <빨래>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너무 강렬하게 남아 기억이 살짝 흐려졌을 뿐이다. 보는 내내 이러한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요동쳤다. 모두를 공감시키는, 언제봐도 좋은, 한국인의 색채를 담은 뮤지컬 말이다.

 

이야기의 집약체인 넘버는 또 어떠한가. 인물의 서사와 감정을 듬뿍 담은 넘버는 힘이 되는 가사를 가득 담고 있었다. 친숙하고 정겨운 느낌이 들어 주변 사람이 들려주는 기분이기도 했다. ‘슬플 땐 빨래를 해’는 빨래를 하는 과정을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빗대 인상적이었다. 제목처럼 “슬플 땐 빨래를 해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혼자 서울살이를 하게 되면 슬픔을 털기 위해 나의 아픔들을 널어놓고 싶다.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 깨끗해지고 잘 말라서 기분 좋은 나를 걸치고 하고 싶은 일 하는 거야

  

- '슬플 땐 빨래를 해' 중

 

  

극 중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니”라는 가사와 “우는데 돈 들어?”라는 대사는 한동안 머리에 맴돌기도 했다. 짧은 가사 혹은 대사 하나가 오랫동안 내 안에 있던 게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어느샌가 공연에 깊이 빠져있었나 보다. 진정 듣고 싶었던 ‘참 예뻐요’ 넘버는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인지 감동이 엄청나진 않았지만, 참으로 듣기 좋았다. 섬세하고 따뜻한 음색과 예쁜 미성에 웃음이 지어지기도 했다. 무언가 소원을 하나 이룬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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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따뜻한 뮤지컬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앞으로 소극장 뮤지컬을 종종 찾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직 <빨래>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쯤은 보셨으면 좋겠다. 어느 누가 봐도 후회 남지 않으리라. ‘따뜻한 위로’의 선물을 받고 오시길. 빨래가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내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날이 오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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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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