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리운 건 많을수록 좋아!" [음악]

잔나비 <소곡집Ⅰ> 리뷰
글 입력 2020.11.14 13:2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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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인디라는 장르로는 흔치 않게 음원 차트를 호령하며 많은 사람들을 레트로 감성에 젖게 만든 이들이 있었다. 바로 잔나비다.

 

필자도 타이틀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포함해, 이들의 정규 2집에 수록된 곡들을 정말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거의 2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옛것의 느낌과 특유의 천진난만함을 간직한 이들의 곡은 주기적으로 재생 버튼에 손이 가게 만든다.


아직도 2집의 향취를 즐기는 중이지만, 이들의 신보가 나온다는 사실은 며칠 전부터 나를 들뜨게 했다. 소곡집이라는 앨범명으로 미루어보아 수록될 노래 수는 많지 않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으나, 그것은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었다. 겨울을 목전에 두고 점점 쌀쌀함을 더해가는 가을 안에서, 이들이 전해줄 감성은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만으로 혼자 기대하며 며칠을 보냈다.

 

“그리운 건 많을수록 좋아!”


<소곡집Ⅰ> 앨범 소개에 적혀있는 문장이다. 잔나비의 보컬 최정훈은 이번 앨범을 두고 “지나간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만 줄기차게 늘어놓았던 그동안의 우리에 대해서 내 스스로도 변명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소곡집에 실린 곡들은 지난 앨범의 연장 선상에서 과거 혹은 청춘의 기억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에 한정되지 않은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를 이들만의 감성으로 풀어낸 곡들은 이번에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는 듯하다.

 

그들의 이번 앨범에 대해 짧은 감상을 적어보려 한다.


 

[크기변환]캡처.PNG

가을밤에 든 생각 뮤직비디오 이미지

 

 

1. 가을밤에 든 생각

 

가을이라는 계절을 수식하는 표현은 다양하다. 독서의 계절, 사색의 계절, 그리움의 계절 등. 뜨겁고 치열했던 자리에 스며들기 시작한 선선한 공기는 우리로 하여금 다양한 상념들에 잠기게 한다. 그리고 그 상념들은 대부분 과거에 대한 것들이다.

 

그리하여 별을 보다가도 문득 그리움에 잠겨 “저 멀리 반짝이다 아련히 멀어져 가는 작은 별과 같은” 과거를 회상한다. 수많은 바람이 불어오고 날은 쌀쌀해져가지만, 보고 싶은 사람들은 자꾸만 떠오르고 생각은 계속해서 과거를 향한다. <가을밤에 든 생각>은 앨범의 문을 여는 첫 트랙으로서, 이어질 과거 여행의 시작점이 되어주고 있다.


 

[크기변환]캡처2.PNG

 

 

2. 한 걸음

 

“발길을 멈춘 그곳은 조그만 나의 유적지”

 

어린 시절에 살던 집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곡이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전 앨범의 <돌마로(DOLMARO)>라는 곡이 겹쳐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곡의 화자는 철없이 뛰놀던, 언제나 그곳에 있을 것만 같은 ‘나의 유적지’를 찾아가지만, 어쩐 일인지 과거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고 찬바람만 쌩쌩 분다. 그렇지만 기억 속 흔적은 생생해서, 이제는 이별한 과거임에도 친숙한 자리들을 구석구석 돌아볼 때마다 슬픔과 동시에 기쁨이 샘솟는다.


어린 시절 이사를 많이 다녔지만 대체로 한 지역 안에 머무르며 자라왔고, 유년기의 내 기억을 이루는 장소들은 대부분 사라지거나 크게 변화하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에 있다. 그럼에도 지금 그곳들을 찾아가면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설어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흐른 시간의 양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일이 아닐까.

 

옛 기억 속 장소를 찾아간다는 것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일이기도 한데, 그 간극만큼 우리는 몸도 마음도 훌쩍 커버렸다. 어린 시절의 발자취가 새겨진 공간을 성인이 되어 걷는 것은 그래서 애틋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더 추워지기 전에 추억이 깃든 동네로 산책을 나가보자.

 

 

3. 그 밤 그 밤


과거 누군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게슴츠레 뜬 두 눈으로 눈치를 보며 살피던 누군가는 사랑했던 이성일 수도, 청춘의 한 페이지를 같이 장식했던 친구일 수도 있으리라.

 

‘추억은 뜬 소문처럼 불어나 거대해져’라는 가사가 인상 깊다. 과거는 미화된다는 말이 있듯 과거의 기억은 그 내용이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친구와 회포를 풀만큼 불어나 추억거리가 된다.

 

 

[크기변환]캡처3.PNG

 

 

4. 늙은 개


어린 시절 반려동물과 함께 했던 시간과 기억들을 떠오르게 하는 곡이다. 수록곡 중 가장 슬픈 곡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 키우던 강아지(초롱이)가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게 된 초롱이의 딸(삼순이)를 보며 쓴 곡이라고 한다.

 

'나'는 다 큰 어른이 되어 어렸을 때 강아지와 놀던 기억을 잊어가는데 강아지는 나이가 들어 늙은 개가 됐지만 어째서인지 아직도 무지개를 쫓던 그 시절에 살고 있는 듯하다. 엄마한테 혼나더라도 맛있는 사람 밥을 주던 그때를 떠올리며, 화자는 "다음 봄이 올 때쯤엔 무럭무럭 자라 귀여운 꽃이 되어라"고 말해준다.

 

가사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제는 늙어버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강아지가 마지막까지 무지개를 쫓으며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일 것 같다. 어린 시절을 함께한 강아지를 추억하면서도 지금 곁에 있는 늙은 개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는 마음이 느껴져 미소를 짓게 만든다.

 

쓸쓸한 내용과 대비되는 정겨운 반주와 강아지에게 말을 거는 듯한 대화체로 이루어진 가사는 마치 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5. 작전명 청-춘


어른이 되어 세상의 쓴맛을 알아버린 화자가 원대한 꿈을 가지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그리워하는 곡이다. 우선 제목부터 당당함이 느껴진다. 초창기에 만든 곡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가사에도 사운드에도 젊음의 열정과 혈기가 가득하다.

 

클라이맥스에서 북소리와 코러스가 어우러지며 청춘을 연호하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어릴 적 꿈꿨던 세상과 달리 나이가 든 지금, 현실의 세상은 녹록지 않음을 알아버렸다. 그러나 그리움에만 머무르지 않고, 청춘이기에 당당히 맞서 영웅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날 것 그대로의 포부가 담긴 가사를 읽다 보면, 잔나비가 지금과 같은 대중적인 밴드가 되기 전 어떤 마음으로 곡을 쓰고 음악을 했을지 그 초심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잔나비는 이 곡을 두고 "괜히 세련돼 보이고 싶어 언제부턴가 부르지 않은 노래"라고 했다. 그렇지만 세련되지 않고 투박한 감성 그대로라 더 좋은 것이 이들 음악의 특징이 아닐까. "오늘밤 우리는 내일 부를 노랠 짓네"라는 가사에서 느껴지듯 그들의 팬으로서,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이 노래를 그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음악을 해나가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오영은 태그.jpg

 

 

[오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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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
  •  
  • 잔나비최고
    • 글 잘 읽었어요~ 정말 추억에 잠기게 되는 노래들로~ 가을이 한층 더 그리움 가득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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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하자
    • 다섯곡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감상평에서 잔나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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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놀이
    • 노래에 대한 감상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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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o
    • 글이 너무 좋아서 정독했어요!
      이글을 읽기 후로 소곡집의 듣는 느낌이 좀 더 명확해질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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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나
    • 글잘읽었습니다^^
      이번 잔나비앨범은 행복한그리움으로 꽉꽉 채운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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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은재
    • 잔나비 소곡집1 은 2020 가을의 수명을 연장해준 느낌이에요~
      꽉 찬 가을 속에서 오늘도 행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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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팬
    • 따뜻한 시선으로 본 감상평이란 느낌이 들어요. 잔나비의 곡들은  예쁜 말로 솔직하게 얘기해서 따뜻한 시선으로 보게 만드는것 같아요.  요즘 소곡집을 들으면 가을이 쓸쓸함보다는 포근한 느낌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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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움
    • 곡 해석이  너무 와닿아요~~ 좋은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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