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실감을 위로하는 영화, 라라랜드 [영화]

아름다운 사랑을 넘어서, 삶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은 영화
글 입력 2020.11.1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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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빨간불에 걸려서 걸음을 멈췄다. 반대편에 선 대학교 신입생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대학생이라 할 만큼, 풋풋함이 묻어났다. 나는 대학생 때를 그리워하지 않을 줄 알았다. 빨리 졸업하고 싶어 안달이었으니까. 학교는 하나의 족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저 친구들을 보며 가슴 한편이 쓰라리다. 벌써 내가 이런 나이가 되었나? 누가 보면 졸업한 지 한참 지난 줄 알겠네. 생각의 뭉게구름을 손으로 휘저으며 가던 길을 가려는데, 이번엔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헤아릴 수 없는 감정과 함께, 태어나 처음으로 피아노를 쳤던 그 여름이 떠올랐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여름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던 길, 학교 근처에 새로 생긴 피아노 학원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희미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간지러운 건반 소리를 따라 무언가에 홀린 듯 문을 두드렸다. 잠깐 고민하는 시간도 없이, 그날 그 자리에서 바로 학원을 등록했다.


라라랜드 때문이었다. 개봉한 지 한참 지나서야, 뒤늦게 라라랜드를 보았다. 보고 난 후에는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가지 않은 나를 원망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피아노 연주를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헤어진 두 사람의 운명적인 재회라고 하기엔, 그 장면은 내 가슴속에 너무나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깊게 박힌 여운을 달래기 위해서 계속해서 돌려보다, 그 곡을 내 손으로 직접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은 취업 준비로 한창 정신없을 때, 나는 열심히 피아노를 쳤다. 라라랜드가 나에게 남긴 깊은 여운을 달래기 위해서. 그 여운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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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삶의 이야기


 

라라랜드는 세바스찬과 미아의 꿈과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두 사람이 꿈을 이루고,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를 마냥 아름답게만 그리고 있지 않다.


세바스찬은 피아니스트로 자신만의 재즈 클럽을 꿈꾼다. 미아는 멋진 배우가 되기를 꿈꾼다. 그렇지만 둘 다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은 절대로 순탄치 않았다. 세바스찬은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했고, 허황된 꿈을 꾼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과 핀잔을 듣기도 했다. 경제적 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선택한 길에서 큰 성공을 맛보자, 도리어 꿈을 잃어버린 순간도 있었다. 바쁜 일정으로 시간이 없어지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했다.


미아 역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꿈과 전혀 상관없는 바리스타 일을 하며 지냈다.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치르고 있지만 결과는 모두 좋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공들여 준비한 연극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관객들의 야유를 받았다. 거듭되는 실패에 크게 좌절하고, 결국 꿈을 포기하고자 결심하기도 한다. 이처럼, 끝내 둘은 각자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되지만 그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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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찬의 피아노 연주에 이끌려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둘은 처음 만났다. 이후, 미아는 배우를 꿈꾸게 된 이야기를, 세바스찬은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자신의 꿈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에 동질감을 느낀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면서, 둘은 점점 깊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꿈이 세바스찬과 미아의 인연을 만들어 주었지만, 둘을 멀어지게 만든 것도 그 꿈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시간을 쏟다 보면 점차 사랑에 소홀해졌다. 미아는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세바스찬을 떠나야 했고, 세바스찬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아와 함께 갈 수 없었다. 그리고 5년 뒤, 그들은 세바스찬의 재즈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다. 미아의 옆에는 다른 남자가 있었고 예쁜 딸이 있었다. 둘은 각자의 꿈을 이뤘지만, 서로의 사랑은 지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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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뒤, 재즈 클럽에서 다시 만났을 때, 세바스찬은 말을 건네는 대신에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가 끝난 후, 세바스찬과 미아는 서로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그저 가벼운 눈인사와 함께 미소를 지었다. 둘의 이야기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우리들의 상실감을 위로하는 영화



삶은 때때로 잔인하게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만, 그 좌절이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인생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걸, 영화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장면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영화를 보면서 때로는 세바스찬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미아가 되어, 그들의 아픔과 좌절에 깊이 공감한다. 둘의 사랑이 이별로 끝맺는 걸 보면서, 행복한 결말의 사랑보다 쓸쓸한 미련과 아픔으로 남아있는 이별이, 세상에 훨씬 더 많다는 걸 떠올린다. 영화는 아름다운 사랑을 넘어서, 삶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라라랜드는 꿈과 현실의 간극에서 오는 상실감을 세바스찬과 미아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마지막 장면에서 세바스찬의 연주에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연주에는 '상실감'에 대한 위로가 담겨 있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경험하는 상실감을, 꿈과 사랑 사이에서 경험하는 상실감을,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상실감을, 영화는 감동적인 음악과 아름다운 장면으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한다. 그래서 이토록 많은 사람이 라라랜드에 열광했던 게 아닐까. 각자 저마다의 상실감을 가슴에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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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디즈니 영화를 보며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던 소년은, 자라면서 슬프고 아픈 사랑도 있음을 배운다. 해리포터를 보면서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소년은, 어른이 되면서 마법 같은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현실을 살아가면서 점차 어른이 되어간다. 이제는 더 이상 디즈니 영화 속 왕자님을 꿈꾸지도 않고, 해리포터의 호그와트를 꿈꾸지도 않게 되었다.


내가 살아가는 현실은 마냥 아름답지만 않다는 걸 알아버렸기에, 더는 동화 같은 영화를 찾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잔인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그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적절하게 비추는, 너무나 이질적인 두 속성을 조화롭게 섞은 영화를 갈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라라랜드가 그토록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던 걸지도 모르겠다.

 

여러 번 영화를 다시 보고 난 후에서야, 그때 느꼈던 여운의 정체를 알았다. 그건 내가 가진 '상실감'이었다. 희미한 피아노 소리를 간신히 붙잡아 피아노 학원의 문을 두드린 것은, 현실이 주는 상실감에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졸업을 앞둔 무더운 여름, 지도와 나침반도 없이 사막 한가운데에 혼자 남겨진 사람처럼,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막막함이 세바스찬의 마지막 연주를 계속 떠올리게 하였고,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마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여름,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피아노를 쳤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하는 와중에, 밥 먹는 시간을 아껴가며 매일 1시간씩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 소리에 몸을 맡기고, 정신없이 흰색과 검은색으로 가득한 건반을 두드리고 있으면, 기분 좋은 꿈을 꾸는 듯 마음은 평온을 되찾았다. 그 시간만이 유일하게 근심 걱정을 잊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비록 얼마 안 가 현실적인 문제로 학원을 그만둬야 했지만, 그때 잠깐 피아노를 친 것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학교를 졸업한 지금,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발걸음은 신호등 빨간불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그러다 맞은편 대학생 무리와 피아노 소리에, 그날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바쁜 일상에 조금 지친 탓일까. 자유롭게 꿈을 꾸던 그 시절, 그때 좋아했던 사람, 이뤄지지 못한 인연, 피아노를 치던 그 여름, 지나간 시간이 문득 그리웠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라라랜드를 다시 봤다. 오늘도 라라랜드는 나에게 상실감에 대한 위로와 함께, 아름다운 추억과 잠깐의 휴식을 선물했다.


5년 후 재즈 클럽에서 미아와 다시 만났을 때, 세바스찬은 미아를 붙잡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추억에만 머무를 순 없다는 걸, 세바스찬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떠나는 미아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라라랜드의 막이 내렸고, 이제 나도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다시 힘차게 나의 연주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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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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