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돈이 아무래도 최고가 되어가는 세상에서

글 입력 2020.11.15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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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삶'은 누누이 강조되는 가치지만 정말 실현하기 어려운 말이다.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처럼 보일 때 '더불어 살기'처럼 좋은 말들은 공허하면서도 간절하게 느껴진다.

 

<강의>에서 신영복 교수는 동양 사상의 핵심을 ‘관계론’이라고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人間)을 개별적인 존재(Human being)으로 바라보고 그 개별 존재를 분석함으로써 집단과 인간 사회를 파악하려는 것이 서양의 관점이다. 이와 달리 관계가 곧 존재라고 정리하며 상호의존적인 맥락에서 인간을 이해한다. 따라서 개인이 지닌 능력을 경쟁적으로 향상시키거나 독점적인 무언가를 소유한 것이 중요한 것이 서양의 관점이라면, 가치를 관계망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동양의 관점이다.

 

그렇기에 서양의 눈으로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동양의 관계망에서는 중요하고 유의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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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전문성’을 강조한다. 반면 저자는 이러한 ‘전문성 담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자기 분야에 대한 배타적인 전문성은 ‘하위 계급’에게 주어지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을 부속으로 전락시키고 있으며, 이런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기능과 효율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오히려 전인적인 능력은 자본가 계급의 역할로 그려진다.


모든 것을 상품 가치로 환원시키는 현대 자유주의 시장은 인간의 능력은 불론 마음까지도 돈으로 바꾸고 말았다. 단적인 예가 처벌과 관련한 것이다. 최근 음주 운전이나 그 밖의 범죄를 저질러서 벌금형을 선고받는 사람들에 관한 기사나, 새로운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벌금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에 관한 기사를 보면 댓글에 이러한 내용이 있다.

 

벌금이 ‘죗값’이 될까 걱정이 되니 벌금이 아니 다른 처벌을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벌금을 내면 그 죗값을 충분히 치른 것이 되고, 이것은 다시 면죄부를 돈 주고 사는 것과 다름없는 원리가 된다.


‘까짓거 돈 내고 말지.’하고 음주운전을 하고, 사람을 때리고, 협박하고, 괴롭힌다면 처벌의 본래 의미를 잃고 있는 듯하다. ‘돈’은 이렇게 사람들의 부끄러움을 무력화한다. 사실 마음을 쓰는 것보다는 돈을 쓰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기 때문이다. 벌금을 내고 나면 할 만큼 다 한 것일까?

 

아무튼 몇몇은 벌금 내었으니 나는 할 만큼 다 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마음이 단돈 얼마에 사라지다니 얼마나 값싼 마음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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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금은 많은 마음이 무력화된, 겸손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겸손이 없다는 것은 결국 타인에 대한 배려와, 그 근간이 되는 공감이 힘을 잃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5장에서 저자는 맹자의 말을 빌려 ‘모든 사람이 타자화되어 있는 상태이며 불인인지심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라고 지적한다. 거짓말이 여느 때보다도 오래 살아남는 세상이며, 어떤 면에서는 거짓말로 관계가 유지되고 있기도 하다.


관계 맺기가 거래로 대체되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끊어낼 수 있는 관계는 지속성이 없다. 지속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타인을 배려할 필요가 없다. 불편해지면 안 만나면 그만이다. 그렇다보니 공감, 배려, 이해, 부끄러움과 같이 인간관계를 지탱하는 많은 감정들이 자라날 기회를 잃고 있다.


사회도 인간관계의 모임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이 사회이고, 그것이 망을 이뤄 빠짐없이 연결된 구조다. 사람이 각 점이라면 그 점을 잇는 그물이 관계일 것이다. 그 관계가 실로 되어 있다면 그 실은 앞서 말한  공감, 배려, 이해, 부끄러움과 같은 인간의 정서와 덕성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상품 사회라는 것은 이 실이 화폐가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빠르게 거래를 이루며 실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는 모습은 ‘효율’이기도 하고 ‘변화’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성장인가하고 들여다본다면, 어쩌면 자본주의가 보여주는 눈속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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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사상을 빌려보자면, 노자는 작위, 거짓, 명명 등을 거부함으로써 총체적 본질을 강조했다면, 장자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우물(인간성을 해치는 방향으로 구축된 질서)를 경계한다. 장자의 사상은 이렇게 재, 화 등 물리적인 것을 넘은 도를 언급하는 것이다. 유의 배후로서 무를 드러낸다는 노자와 궤를 같이 하는 지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의 효율성과 생산성 개념을 바라보면 어떨까? ‘여가와 소비의 증가가 인간성의 실현을 돕는가?’하는 질문에 대해 유와 무로 구별해본다면 여가와 소비의 증대라는 현상이 인간성이라는 가치 혹은 구조를 실현해내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이해할 수 있다.

 

노자는 모두 아니라고 할 것이다. 오히려 삶을 상품적 가치, 일시적인 것에 끼워 맞추는 방향으로 변질시키는 방식이라 지적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가와 소비의 증대는 삶을 나아지는 것처럼 보여주는 자본주의의 변명에 불과하다.


자본주의는 양적으로 자라지 않으면 가능성을 엿볼 수 없다. 이 세상은 늘 성장하고 있으며 더 나은 내일이 올 것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화려한 겉모습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인다.

 

눈을 꼭 감고 그 흐름에 몸을 맡겨 화려한 삶으로 갈 것인가 혹은 그 구조를 바라보며 한 걸음 떨어져 있을까. 그 선택은 분명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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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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