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난민의 실체 - 아라베스크

글 입력 2020.11.08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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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내게는 너무 멀고도 어려운 문제였다.

 

2018년 제주도에 500명이 넘는 예맨 난민이 몰려와 한반도가 떠들썩했다. 난민을 조롱하는 댓글은 ‘좋아요’를 받고, 난민을 옹호한 연예인은 조롱을 당했다. 나는 쉽사리 판단할 수 없었다. 내국민 지원도 부족한데 무슨 난민을 지원해주냐는 의견도, 우리가 받아주지 않으면 저 사람들은 이제 갈 곳이 없다는 의견도 타당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모든 인간은 멀쩡한 옷을 입고, 따뜻한 밥을 먹고, 보호받는 공간에서 살 권리가 있다. 난민도 인간이다. 난민도 인간 답게 살 권리가 있다. 3단 논법은 걸리는 구석도 없이 명확하게 떨어진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돌덩이 같은 마음을 깨우기엔 아직 뭔가 부족하다.

 

공연 <아라베스크>는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 마흐무드의 '난민 신청기'를 다룬 작품이다. 마흐무드는 공항에 발이 묶여 있다. 갈 곳 없이,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담당 조사관이 조사를 나왔지만, 마흐무드라는 사람을 난민으로 받아들이기 적합한지 그렇지 않은지 쉽게 결정할 수 없다.

 

그에게는 생존 문제임을 알기에 더욱 신중을 기한다.

 

 

2020_놀땅_아라베스크(삼일로)_리허설사진 (2).jpg

 

 

 

“내가 더 비참해지길 바라세요?”


 

마흐무드는 우리가 알던 난민과는 다르다. 미디어를 통해 습득한 난민 상은 좁은 배에 꾸역꾸역 몰래 탑승해 바다를 건너온 꾀죄죄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마흐무드는 비행기를 타고, 본국에 있는 가족의 지원을 받으며 건너왔고, 옷차림새도 말끔하다.

 

조사관과 그의 보조, 아랍어 통역사는 그의 모습은 ‘난민’같지 않다며 고민에 빠진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마흐무드는 모두에게 묻는다. 자신이 더 비참하길 바라냐고, 하늘이 아닌 바다를 건너왔으면 난민으로 받아줄 것이었냐고.

 

주눅 드는 기색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마흐무드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난민은 꼭 불쌍해야 할까, 난민은 간절하게 부탁해야 하는 입장일까, 국경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배척하는 것이 옳을까, 사회적 약자는 착할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처럼 난민에 대한 편견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실제 그들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2020_놀땅_아라베스크(삼일로)_리허설사진 (6).jpg

 

 
“우리는 상대를 다 알 수 없어요. 단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에요.”
 

 

상대를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는 것은 꽤 중요하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편견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몇 가지 판단 근거만 남겨놓은 채, 마흐마드에 대한 정보는 지운다. 복잡해질 필요도 없다. 3단 논법처럼 조금 단순해지면 된다. 어쩌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니까,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갈 곳이 없으니 잠시만이라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연극은 정말 멀게만 느꼈던 난민을 우리 앞에 소환한다. 바로 앞에서 살아 숨 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비난한 난민이 바로 이 사람이 맞는가? 지금도 똑같이 욕할 수 있겠는가?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말을 다시 할 수 있겠는가.

 

그들에겐 당장 돌아갈 나라가 없다.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나라가 없다.

 

 

2020_놀땅_아라베스크(선돌)_포스터(최종).jpg


 

작, 연출

최진아

 

출연

이준영, 송치훈, 박다미, Aldossary Abdullah

 

주최, 제작

극단 놀땅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 만13세(중학생) 이상

 

공연시간 70분

 

 

[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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