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기창의 아내라는 수식어에 가려졌던 선구자 박래현의 재발견, '박래현, 삼중통역자' [시각예술]

개인전을 하기에 차고 넘치는 화가의 역량. 그리고 그것을 극대화시킨 큐레이션의 조화.
글 입력 2020.11.0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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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 현대 회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운보 김기창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나 역시 미술사를 전공한 터라 김기창이라는 이름은 익숙했다. 그러나 김기창의 아내 박래현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박래현의 회고전이 열린다는 전시소식을 접했고 가을의 덕수궁을 만끽할 겸, 주목받지 못한 이 화가의 작품세계가 궁금해져 전시를 다녀왔다.


이번 전시는 <박래현, 삼중통역자>라는 제목으로,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2020년 9월 24일부터 2021년 1월 3일까지 개최된다. 전시의 제목 중 ‘삼중통역자’는 우향이 한국어, 영어, 그리고 청각장애를 앓았던 김기창의 말을 구어로 통역했던 박래현이 스스로를 지칭했던 단어이다. 그리고 이 ‘삼중통역자’라는 단어는 회화, 태피스트리, 판화를 넘나들던 박래현의 자유로운 활동과도 연결된다.


전시는 총 4부로 이루어져있다. 1부는 한국화의 ‘현대’, 2부는 여성과 ‘생활’, 3부는 세계여행과 ‘추상’, 마지막 4부는 판화와 ‘기술’이다. 보통의 회고전이 그러하듯 이번 전시 역시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는 연대기적 구성을 보인다. 그러나 연대기적 구성이 그저 생애를 회고하는 의미에서 채택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섬세하고 치밀한 필연적인 연결이 돋보였다.

 

 


1부 한국화의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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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 1943, 종이에 채색, 개인소장

 

 

1부 한국화의 ‘현대’에서는 박래현이 일본 유학에서 배워온 일본화를 한국적으로 풀어내고자 한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서고 처음 마주하는 작품은 제 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던 <단장>이다. 그는 기모노를 입은 소녀가 거울을 마주보며 단장하는 모습을 그렸다. 배경 없이 소녀와 거울 두 가지만 그려진 이 그림은 우리가 동양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적이고 단아한 미감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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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 1956, 종이에 채색,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하지만 발걸음을 조금만 옮기고 나면 <단장>을 그린 화가와 동일한 화가인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른 화풍의 작품이 있다. 박래현은 1956년작 <노점>으로 제5회 대한미국미술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화가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 시기의 작품에는 마치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 떠오르는 입체주의적인 화풍이 나타난다. 1950년대 한국에 유입된 서양화의 영향을 받아 ‘한국화의 현대’를 실현하고자 했던 박래현의 역량이 보여지는 시기이다.


 


2부 여성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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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c>, 박래현, 김기창, 1956년경, 종이에 수묵담채, 아라리오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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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 1960년경, 종이에 채색, 개인소장

 

 

2부 여성과 ‘생활’에는 박래현이 김기창과 결혼한 이후 아내이자 어머니, 예술가의 삶을 병행했던 시기를 다룬다. 2전시장에 들어서면 보이는 <봄c>는 김기창과 박래현의 합작이다. 호방한 필치의 등나무는 박래현이, 섬세한 참새들은 김기창이 그렸다. 그들은 이 작품처럼 부부합작도 다수 그렸고 부부전을 개최하며 예술 활동을 지속했다. 함께 작업하며 같은 길을 걷는 예술의 동반자로 여겼던 그들의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박래현은 김기창과 화실을 나눠 쓰며 “한 방에 펼쳐지는 두 개의 세계”라고 표현했다. 분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서로의 작업과정을 공유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박래현의 표현처럼 “무서운 대결”을 펼치며 영향을 주고 받았다. 이에 두 화가의 화풍이 너무 닮아있다는 비평도 있었으나 박래현이 추상의 길을 걷게 되며 박래현만의 독자적인 화풍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결혼 이후 김기창을 위해 구어를 통역하고, 아이를 낳고 길렀던 박래현의 삶은 예술가로서 온전히 살아가기엔 벅찼다. 그의 저서 결혼과 생활에는 이런 글이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기저귀 빨기, 밥 짓기, 청소하기, 아침 식사가 끝나면 이것저것 치우고, 닭의 치다꺼리, 아기 보기, 정오면 점심 먹고, 손이 오면 몇 시간 허비하고, 저녁 먹고 곤해서 좀 쉬는 동안에 잠이 들면 자 그러면 본업인 그림은 언제나 그리나.

 

-  『결혼과 생활』 1948

 

 

박래현은 작업을 계속하겠다는 조건으로 결혼을 했다. 하지만 당시 여성에게 주어진 사회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루가 온통 가사일로 가득 찬 화가의 삶. 그림에 집중할 수 없었던 박래현은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지 번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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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전시장 중앙에는 박래현이 아내, 어머니, 예술가의 정체성을 고뇌하며 써 내려간 글을 전시한 아카이빙 공간이 있다. 『여성과 미술』, 『결혼과 생활』, 『반생에 서서 지금까지』, 『(앙케트) 만일 우리들(여인)만의 나라가 설 수 있다면?』 등 여성 박래현이 고뇌했던 기록들은 관람객이 작품과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인간 박래현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만들었다.

 

 

 

3부 세계여행과 '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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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역사 속에서>, 1963, 종이에 채색, 개인소장, 부부전(1963)

 

 

박래현은 해방 후 타이완, 홍콩, 일본, 미국, 유럽,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서구 미술과 세계 문명을 접하고 본격적으로 추상화를 제작한다. 3전시장은 이 시기를 다룬 것으로 한지에 스며들고 번지는 잉크로 표현한 비정형의 추상과 박래현이 세계여행을 다니며 수집했던 수집품들, 여행스케치를 전시한 아카이빙 공간, 태피스트리 작품, 그리고 노란색, 붉은색,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추상 작품으로 구성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보이는 <젊음의 초연>, 그 뒤로 이어지는 <잊혀진 역사 속에서>, <작품> 시리즈는 2부에서 시도되었던 추상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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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1966-1967, 종이에 채색,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이후의 작품들이었다. 중남미 여행의 수집품들과 여행스케치가 전시된 공간을 지나면 태피스트리와 새로운 추상으로 이어진다. 노란색, 붉은색,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박래현의 새로운 추상은 여행에서 체험한 각국의 원시 미술의 영감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촘촘하게 구성된 잉크의 번짐에서 연결된 실의 모습이 떠올라 이전에 박래현이 시도했던 태피스트리의 영향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여행에서 받은 영감을 바로 작품에 반영한 박래현의 부지런함과 작품에 대한 열망이 그대로 느껴졌다.

 

 

 

4부 판화와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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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현상>, 1970-1973, 에칭, 에쿼틴트,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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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1970-1973, 태피스트리(털실, 하수구 마개), 개인소장

 

 

박래현은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석하며 중남미를 여행했다. 이후 1973년까지 뉴욕 밥 블랙번 연구소(Bob Blackburn Printmaking Workshop)와 프렛 그래픽센터(The Pratt Graphics Center)에서 태피스트리와 판화를 연구했다.

 

아이들의 어머니이자 김기창의 아내로 살아왔던 박래현의 미국 유학은 그의 오랜 꿈을 이루는 것임과 동시에 예술가로서 자신의 예술성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였다. 그는 판화 이외에도 다양한 소재를 붙여서 찍어내는 꼴라그래프나 하수구망, 커튼고리 등의 사물을 활용한 태피스트리 작업 등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뉴욕에서 돌아온 박래현은 동판화 기법과 동양화를 접목하는 작품 제작 연구에 몰두하였지만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1976년 타계했다.

 

박래현은 삶에 대한 강한 의지로 임종 시에도 유서를 적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예술에 대한, 삶에 대한 의지가 강건했던 그는 판화를 접하면서 이제 막 날개를 달고 새로운 예술을 펼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윤숙의 표현대로 박래현이 겪어야 했던 아내, 어머니, 예술가의 '삼중의 삶'으로 과로했던 그에게 더 많은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변화무쌍한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보는 내내 나는 자꾸만 <단장>이 떠올랐다. 거울을 마주보고 자신을 단장하는 소녀. 이 소녀에서 이제 막 시작될 작품 활동의 여정을 준비하고 다짐하는 박래현이 보였다. 그 다짐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나는 이미 안다.

 



전시를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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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박래현의 삶을 담은 사진들로 구성된 영상으로 마무리된다. 전시장 내 진열되어 있던 작품이 사진 속에 나올 때면 컬러를 입혀 돋보이게 연출했다. 전시장 곳곳에 자리한 아카이빙 공간과 더불어 마지막 영상은 작가와 작품, 그리고 관람객과 작가 간의 공백을 메운다. 이것은 작품이 전시장에 존재하는 단순한 개체를 넘어 인간 박래현의 서사로 이어지게 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난 뒤, 나는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이 화가를 오래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가 타계한지 벌써 반 세기가 다 되어가지만 오늘 이 전시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한 화가를 살아 숨쉬게 만들었다.

 

 

예술은 영원한 것이고 영원보다 더 먼 곳에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반생에 서서 지금까지』 1967

 


예술이 가지는 힘을 알고 있었던 박래현. 모든 것은 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영원함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참고자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박래현: 삼중통역자> 전시 설명

강은주, 『우향 박래현의 회화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홍익대학교 대학원, 2013. 서울

 

 

[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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