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밝혀볼게요. [사람]

글 입력 2020.11.0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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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금부터 아무도 관심 없을지도 모르는 나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저는 감성적인 편이라 듣다 보면 좀 오글거릴 수도 있겠습니다. 편의상 반말로 얘기를 해도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코로나19 때문에 사람을 잘 안 만나다 보니 말이 잘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

 

나는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물건 속에 깃든 그 시간을 공유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항상 내 물건에 가지는 애착이 크다. 해외여행 중에 받은 외국어로 쓰인 영수증마저 못 버리고 보관할 정도니, 이 정도면 미련일까?

 

미련해서 꾹꾹 미뤄둔다. 그러다 불가피하게 마주해야 할 순간이 온다. 바로 이삿날이다. 물리적인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그제야 미련함을 툭툭 털어내고 정들었던 물건들과 소소한 작별 인사를 나눈다.

 

 

memo.jpg
색이 바랜 현재 다 써가는 메모장

 


그 와중에 내 옷자락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 안 놓아주는 녀석들이 있다. 내가 사용했던 다이어리들과 메모장이다. 메모장은 항상 들고 다니다 보니 보는 사람들마다 박물관에서 볼 법한 유물 같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내 손때가 묻고 내 글씨가 빼곡히 적혀있는 기록의 산물들을 짐 정리를 하게 되면 꼭 훑어보게 된다.

 

그 기록들을 찬찬히 머금다 보면 종이에 눌러 담았던 내 활자들의 시간으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괜스레 가슴이 쿵쾅거리고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나는 무릎을 탁 치며 소리친다.

 

글을 써야 해.

 

이 기분 좋은 울렁거림이 멈추기 전에 글을 쓰고 싶어.

 

메모장의 빈 페이지를 펼쳐 버스를 타며 샤워를 하며 스쳐 지나갔던 생각의 끄트머리를 잡아내 볼펜으로 힘주어 새긴다. 인터넷 창을 열어 감명 깊게 받던 작품들을 뒤져 메모장에 토해낸다.

 

이 행위는 어느 시점에 발현될지 알 수 없다. 꼭 이삿날마다 작동되는 건 아니다. 마음이 갑자기 헛헛해 내 방 주위를 관찰하다가 레이더망에 포착될 수도 있는 거고 침대에 누워있다 불현듯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미친 듯이 써 내려갈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하면 즉흥적이다.

 

굳이 빈도수를 따지자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순간에는 이 행위를 할 확률이 높다. 공감과 위로를 받았던 감정을 마음의 서랍에 영원히 보관하고 싶어서 썼다. 망각의 동물인 인간의 신체 구조에 귀엽게 반항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즉흥적이지만 나름 높은 수치를 보였던 이 빈도수는 올해 들어서 가파르게 하락세를 향하고 있다. 이유를 내뱉는 것만으로도 우울하다. 이제는 안부 인사가 되어버린 코로나19로 인해 문화예술을 접하고 경험하고자 하는 의지가 풀썩 꺾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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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움츠러들었다. 코로나 19 이후 나의 삶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몇 단계로 시행하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작년의 가을과 판도가 뒤바뀌었다. 작년 10월은 난생처음 혼자서 테마가 있는 미술 여행이라는 나만의 컨셉으로 전국 여행을 떠난 뜻깊은 달이었다.

 

여러모로 도전적이었던 한 해를 보내고 나선 지 그게 더 부각되어 올해가 더 초라하고 볼품없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래프의 하락세를 멈추고 다시 추켜올리려고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지방러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문화예술의 격차는 크다는 걸 실감한다.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사람의 수는 인구수에 철저하게 비례한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기본적인 경제구조는 문화예술 또한 빗겨나가지 않는다. 수요가 많으면 그만큼 공급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현상이니,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수도권의 공연과 전시는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오지만 지방의 공연과 전시는 빈약해 보인다.

 

9월 LG 아트센터에서 하기로 예정되었던 <그을린 사랑>과 오리지널 내한 뮤지컬 <캣츠>가 너무 보고 싶어서 미리 예매했다. 나는 용기를 냈다. 지방러의 한계를 딛고 싶었다.

 

나의 이 행복한 설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또 터졌다. 8월,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수도권의 집단감염은 하루 확진자 수가 300명대를 가뿐히 넘게 만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2단계로 격상했고 서울로 올라가는 상황 자체가 물거품이 되었다. 눈물을 머금고 예매를 취소했다. 이런 애로사항에 일찌감치 많은 공연과 전시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지만 나는 온라인에 애정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옹녀.jpg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커튼콜

 


내가 공연을 사랑하는 이유는 ‘현장성’ 때문이다.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짜릿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공연을 보러 간다. 전시 또한 마찬가지다. 작품을 자세히 보는 것과 멀리서 보는 것은 천지 차이이며 재료의 재질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작가의 손길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면밀히 들여다보는 과정은 내 눈으로 직접 작품을 감상해야 가능한 일이다.

 

‘온택트’ ‘언택트’ 수없이 흘러나오는 이 단어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아직은 내 의지를 불태울 만큼 매력적인 단어들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그러면 어쩌겠는가. 손가락만 빨고 한숨만 푹푹 내쉴 수는 없다.

 

 

마스크쓰는 배우.jpg
마스크 쓰고 관객 맞이하는 배우들 연극<공주들 2020>

 

 

발로 뛴다. 움츠러든 마음을 쫙쫙 펴기 위해 움직인다. 불편함과 엄격함은 가중되었지만 문화예술이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던 찬란했던 기억을 가슴속에 소중히 품고 버텨낸다. 그것이 달라진 이 시대에 맞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를 밝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네요.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두서없이 들렸을지도 모를 나의 말을 끝까지 감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지윤.jpg

 

 

[이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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