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판타지가 세상을 구한다 - 네버엔딩 스토리 [영화]

"내가 구해줄게, 꿈꾸는 대로 할 거야"
글 입력 2020.11.0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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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젠 철이 들었으니 꿈에서 벗어나서 현실에 맞게 살아야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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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네버엔딩 스토리>는 상상과 몽상을 즐기는 소년 ‘바스챤’이 책 속 세계를 모험한다는 판타지 장르의 모험기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소년 바스챤은 약하고 왜소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자주 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바스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친구들에게서 도망치는데, 도망을 치다 우연히 숨어들어온 서점에서 의문의 책 한 권을 발견한다. 책의 제목은 ‘네버엔딩 스토리’.

 

바스챤이 읽는 이 소설은 보라색 물소 사냥꾼 초원족의 위대한 전사인 ‘아트레유’의 모험기다. 소설 속 세계 ‘판타지아’는 ‘나씽(nothing)’이라는 악의 존재에 의해 파괴될 위기에 처한 공간이다. 그리고 용맹한 소년 아트레유는 판타지아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시작한다. 영화의 서사는 소설 속 아트레유와 소설을 읽는 바스챤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따라서 외로움 많고 힘이 없는 소년 바스챤은 용감한 전사 아트레유의 여정에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소설 속 세계 판타지아는 독자 바스챤의 꿈과 소망의 공간이었다. 바스챤의 꿈과 희망이 조각조각 모여 판타지아라는 공간을 만들어낸 것. 아버지로부터 상상에서 벗어나라는 꾸지람을 들었을 때, 현실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스칠 때 바스챤의 판타지아는 부서지기 시작했고 판타지아를 구하려는 아트레유를 따라 모험하며 바스챤은 자신만의 새로운 판타지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아트레유, 바스챤, 어린이 독자 세 겹의 서사



 

“지구인은 너와 함께 고통을 겪고 네가 겪을 모든 걸 같이 겪었어. 그리고 지금 너와 함께 여기 와 있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우리 얘기를 다 듣고 있지. 책 속에서 자기 이야기를 읽고 있어.”

“그렇다면 왜 그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죠?”

“이걸 멈출 힘이 자기에게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작은 사내아이가 얼마나 중요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영화 <네버엔딩 스토리>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한 가지 꼽자면 서사의 형태와 구조를 말할 것이다. 이 영화가 특별해지는 지점은, 영화의 독자가 바스챤의 서사 안으로 또 한 겹의 아트레유 서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두 겹의 서사 형태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완벽한 액자식 형태로 보기엔 어렵지만, 액자식 형태처럼 내부 서사는 외부 서사의 화자를 통해 설득력을 얻으며 나아가 독자는 바스챤을 길잡이 삼아 실제감 있는 경험과 깨달음을 얻는다.

 

또한, 공교롭게도 바스챤이 읽는 소설과 이 영화의 제목은 ‘네버엔딩 스토리’로 동일하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영화 밖의 현실 세계로 상상의 영역을 확장하도록 한다. 현실 세계의 질서에 따라 「네버엔딩 스토리」를 평범한 책으로만 읽었던 바스챤이 단순한 독자가 아닌 책 속의 판타지아 세계의 주인공이었다는 흥미로운 설정이, 나아가 동명의 영화를 감상하는 독자를 꿈꾸게 한다는 것이다.

 

 

 

안전하지 않은 책, 「네버엔딩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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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독자는 바스챤을 따라 아트레유의 모험 서사로 이입한다. 아트레유의 판타지 모험 서사를 담고 있는, 영화 내부의 소설 「네버엔딩 스토리」를 살펴보자.

 

바스챤이 숨어 들어간 서점에서 만난 서점의 주인아저씨는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온 바스챤에게 이렇게 말한다. “책은 안전하단다. 책을 읽고 있으면 네가 타잔도 되고 로빈스 크루소도 되지.”

 

다만, 「네버엔딩 스토리」만은 ‘안전하지 않은’ 책이다. 안전하지 않은 세계란 곧 현실의 규칙과 질서가 통하지 않는 세계. 다르게 말하자면 현실의 규칙과 질서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세계다. 따라서 판타지 공간만의 해방적 성격은, 영화의 독자 그중에서도 어린이 독자에게는 동명의 소설을 읽는 바스챤을 거울삼아 꿈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줄 아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어린이로의 성장을 돕는 뜻깊은 가르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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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레유의 모험 서사는 전체 서사를 이끈다. 또 아트레유는 모험 내내 끊임없이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소중한 가치들을 얻으며 성장한다는 점에서 「네버엔딩 스토리」는 전통적인 모험 서사의 성격을 띤다고 말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남쪽 신탁으로 향하는 과정 중의 두 관문이 기억에 남는다. 여느 모험 서사처럼 아트레유 또한 시험에 통과해야 했다. 첫 번째로는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을 시험하는 관문으로, 아트레유는 자기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자가 지나가면 눈을 뜨는 스핑크스 사이를 지나야했다. 많은 이들이 통과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던 공포의 길목, 두려움에 주춤하던 아트레유는 “확신을 가져! 확신을 가져!” 외치는 바스챤의 목소리 덕분이었는지 용기 내 스핑크스 사이로 돌진했다.

 

두 번째 관문은 마법의 거울 관문이었다. 진정한 자기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이 거울은, 친절한 사람의 사악한 면모를 비춘다. 용감한 사람의 두려움을 비춘다. 앞선 스핑크스 관문과 같이 대부분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마법의 거울 앞, 아트레유는 거울 속에서 바스챤을 만나 손을 뻗는다.

 

 

 

세상의 모든 바스챤에게



 

“왜 이렇게 어둡지?”

“시작은 항상 어두운 거야.”

“네 꿈과 소망 속에서 판타지아는 새롭게 일어날 거야.”

“몇 가지나 소망할 수 있는데?”

“원하는 만큼. 소망이 많으면 많을수록 판타지아는 더 멋진 곳이 될 거야.”

바스챤은 많은 걸 소망하고 멋진 모험을 한 뒤에 다시 평범한 세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그리하여 이 모험의 실질적인 주체는 바로 바스챤이다. 위 인용문이 예사롭지 않게 읽히는 건, 문장 속 ‘멋진 모험’의 주체가 사실은 책을 읽는 독자에 불과하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스챤은 아트레유가 겪는 모든 고난과 역경을 함께 헤쳐나가며, 아트레유의 험난한 모험기에 두려움이 앞서 책을 덮으려다가도 “아니야. 아트레유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라며 용감히 다시 책을 펼쳐 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처럼 아트레유의 발자국을 한 발짝씩 뒤쫓아가던 바스챤은 어느새 용감한 전사 아트레유의 거울 속에 비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멋진 모험의 마지막 주인공은 바로 영화를 읽는 독자다. 아트레유와 바스챤이 모험을 통해 풍부한 경험과 풍만한 내면을 갖게 된 채 각각 상아탑과 현실세계로 돌아왔듯, 영화 읽기를 마친 뒤 독자는 이전보다 더 풍족해진 상태로 영화관으로 또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하여 이 모험의 주인공은 아트레유와 바스챤 나아가 독자까지, 총 세 명의 인물이 아닐까.

 

이 영화를 세상의 모든 바스챤에게 추천하고 싶다. 판타지는 특별하고도 따뜻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년은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아트레유는 무기도 없이 말 한 마리를 데리고 모험을 떠났다. 그리고 그 뒤를, 아니 옆을 독자 바스챤이 함께했다. 외로움 많고 약한 바스챤이 책을 통해 용감한 전사가 될 수 있었듯, 세상의 모든 바스챤에게 꿈과 희망을 구하는 이 모험에 동행하지 않겠냐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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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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