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픽션과 논픽션, 현실과 소설 그 가운데. 유연한 글들의 모음 - 에픽 #01

글 입력 2020.11.0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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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_표지_최종.jpg

 

 

문학잡지 ‘에픽’의 표지에 적혀있는 문구,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는 처음 책을 본 순간부터 단연 눈에 들어왔다. 문학잡지가 표지에서부터 이 문장을 내세운 이유를 추측하게 되면서도 동시에 궁금해졌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는 서사 중심의 새로운 문학잡지’에 대한 고민이 이 잡지 에픽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그러자 다음 장을 넘기기 전에 픽션과 논픽션에 대한 나의 어렴풋한 개념을 (대략적으로라도) 다시 한번 짚을 필요성을 느꼈다.

 

 

픽션 (fiction)

[명사] [문학] 소설이나 희곡 따위에서, 실제로는 없는 사건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창조해 냄. 또는 그런 이야기.

 

논픽션 (nonfiction)

[명사] [문학] 상상으로 꾸민 이야기가 아닌, 사실에 근거하여 쓴 작품. 수기, 자서전, 기행문 따위가 있다.

 

 

여지껏 논픽션보다는 픽션에 치우쳤던 나의 독서 취향이 가끔은 정말 나의 취향인 것인지 혹은 일종의 편식이었던 건지 모호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논픽션 장르의 글을 많이 접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라, 편식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픽션과 논픽션 장르 그 사이에서 나의 온전한 취향을 찾을 수 있겠다는 설렘도 들었다.

 

픽션일수도 논픽션일수도, 현실을 담은 이야기일 수도, 완전히 상상력을 발휘한 소설일수도. 광범위한 형태의, 경계가 없는 이야기를 다루겠다는 무언의 목표가 느껴지는 잡지였다. 더불어 논픽션 장르의 글이 픽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다루어졌었기에 좀더 반가운 잡지이기도 했다.

 

그렇게 펼친 ‘에픽’ 속에서 경계를 허무는 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에픽은 크리에이티브 논픽션, 버추얼 에세이, 리뷰, 픽션, 그래픽 노블까지. EPIC(광범위한)이라는 형용사적 이름에 걸맞게 여러 장르의 글을 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첫 장부터 등장하는, 그리고 이 책의 출발점과 맞닿은 논픽션 코너의 글은 나에게 오랜만의 설렘과 슬픔을 동시에 가져다 주었다.

 

잡지의 첫 시작을 여는 정지향 작가의 글은 단연 내 뇌리에 박혔다. 논픽션이라는 장르의 분명한 성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만나볼 잡지 속 글들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홀린듯 읽은 수록글들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세심해서 외려 슬퍼지는 글들이었다. 곱씹을수록 묘하게 쓸쓸하고 슬픈, 동시에 따뜻한 작가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그러니까, 에픽에 실린 모든 글들은 여운이 길었다. 그 중에서도 정지향 작가와 이길보라 작가의 글은 유독 더 길게 생각났다.

 

*


정지향 작가는 자살을 터부시하는 한국 사회, 자살생존자를 향한 사회의 태도, 그리고 남겨진 자살생존자들. 그 모든 분위기와 현상을 글로써 묘사한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는 ‘극단적 선택’이라며 자살을 돌려 말하곤 한다. 돌려서 말한다는 건 곧 직접적으로 말하기를 꺼려한다는 무언의 의미를 내포한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다룬 글이나 영화를 접한 적이 없다.

 

 

크기변환_에픽_논픽션.jpg

 

 

어쩌면 안타까운 심정과 애도를 표하는 방법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며 노력하지 않았던 걸 수도 있다. 나는 게으름에서 비롯된 나의 무지에 반성했다. 남의 일이라고만 치부하고 덮어두며 살면 안되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동시에 정지향 작가의 이 글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길 바라게 되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시선의 범주에는 악의가 아닌 무지에서 비롯된 선의도 포함된다. 어쩌면 대다수의 상처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정지향 작가의 글, ‘지극히 남은 사람의 마음’을 읽으며 깨달았다. 오히려 게으른 무지에서 비롯된 선의가 낳는 상처가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이 존재할지에 대해. 문득 무서워지다 이내 곧 슬퍼졌다. 나 또한 그 상처를 주고 때로는 받기도 하는 입장이 될 테니까.

 

 

영화 기억의 전쟁.jpg

 

 

‘할머니, 베트남전쟁, 그리고 나’를 쓴 이길보라 작가의 글의 여운도 내게는 짙었다. 영화감독으로도 익히 알려진 이길보라 작가의 이름을 보고 혼자 내적으로 반가워하며 처음 글을 읽어 내려갔다. 영화 ‘기억의 전쟁’과 깊은 연관이 있는 글이었다. 그리고 읽는 동안, 날카로운 슬픔을 느꼈다.

 

제목 그대로 베트남전쟁, 할머니, 그리고 나에 대한 글이었다. 한동안 읽는 내내 무거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모를, 무언가가 목구멍부터 아랫배까지 서서히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죄책감과 안타까움, 답답함과 슬픔, 그리고 더 이상 형용할 수 없는 무언의 감정들이 더 섞여있었다.

 

월남전 파병을 다녀오신 할아버지,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나, 고엽제로 인해 암투병을 하는 할아버지의 병수발을 다 들었던 할머니,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할머니.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글 속의 나.

 

글을 읽고 나서는 한동안 머릿속에 떠도는 글 속의 등장인물들을 나열만 하게 되었다. 복잡한 감정이 부유물처럼 떠돌아 글로 묘사할 수 없을 때, 내가 주로 하게 되는 습관이다. 그렇게 이길보라 작가의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묘사는 잊고 지냈던 혹은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게 했다. 논픽션 장르의 힘이 이런 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모르고 살거나 모른 척 살아간다. 하루하루 실체 모를 무언가에 쫓겨 급급하게 살다 보면 내가 왜 사는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진다. 어쩌면 요즘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최근까지 종종 허무함을 느끼곤 했다.

 

그렇지만 이번 잡지 에픽을 읽으며 느꼈다. 문학과 글의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런 감정의 순간에 휩싸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잘 쓰여진 글은 인간답게 살아감에 대한 고민을 하게끔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잘 쓰여진 글은 마음 속 구석구석에 구겨져있던 감정을 일깨워준다. 또 잘 쓰여진 글이란, 이 잡지 에픽에 실린 글들처럼 깊게 고민하고 주변을 세심하게 바라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느꼈다. 공허할 때마다 자주 펼쳐볼 것 같다.

 

 

 

이아영 press 명함.jpg

 

 

[이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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