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 [연극]

내가 나로서 살기 위해 필요한 고민들
글 입력 2020.10.31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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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올해가 두 달 가량 남은 10월쯤 되니 자꾸 2020년의 시간들을 돌이켜 보게 된다. 아직 올해가 다 지난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해보다 무얼 더 많이 했고 덜 했는지, 무엇을 성취했는지 나의 행적을 머릿속으로 좇으며 어떤 안도를 얻고 싶은 모양이다.

 

작년에 비해 확실히 달라진 것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해하고 편안함을 느끼는지 알았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고생스럽게 정의해 놓은 ‘나다움’을 흔드는 사건들이 어김없이 생기고 나는 맥없이 흔들리기를 반복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확신을 얻고 싶어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려고 할 때면, 나는 그때마다 망설이곤 한다. 성격과 가치관, 취미 등 다소 피상적인 문제를 넘어 가끔 더 깊은 층위의 주제인 ‘실존’에까지 생각의 꼬리가 다다르곤 하기 때문에 내가 나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된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텍스트가 아닌 의미로서의 나는 무엇일까, 누구라도 이 문제에 쉽게 답하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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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인물. 진짜인 이곳. 살아 있는 관객. 지금 하는 연극. 나를 연기하는, 나는, 나일까?”

 

나는 누구인가?로 자신을 마주하는 질문, 극단 이루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


2019년 극단 이루가 창단 15주년을 맞아 선보였던 창작극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 공연이 2020년 10월 다시 선돌극장에서 공연된다.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주제로 현실과 연극,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어 가며 연극의 다양한 층을 통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2019년 제2회 노작 홍사용 단막극제에서 <누굽니까?> 라는 제목으로 단막극으로 먼저 공연된 작품을 보완, 발전시켜 선돌극장에서 선보였다. 이 작품은 ‘연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기본으로 수많은 작품에서 질문해 왔고 종교와 철학까지도 아우르는 질문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


극장, 관객, 연출가, 배우, 작가 등의 이야기가 연극 속의 연극, 연극 밖의 연극, 관객 또한 극 속에 들어가는 형태 등을 흥미로운 작품 구조를 통해 질문의 본질을 더 무게를 더하며 관객에게 다가갈 것이다.

 

공연은 극 중 극의 구조로 세 겹의 층위를 갖고 있었다.


- 극이 시작되고 작가가 아무도 없는 무대에 등장해 자신이 만든 인물들이 극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에 대해 어떤 것이 극이고 아닌지가 헷갈린다, 삶 자체가 극이 아닐까 하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 하나.

- 이 안으로 들어간 극에서 연출가와 배우가 등장해 캐스팅 이야기를 하고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전개되는 것이 하나.

- 이 인물들이 관람하는 마임이 또 하나.


여기서 층을 또 나누자면 연출가와 배우의 이야기에서 여러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의 연기를 하는 배우의 모습, 그리고 휴대폰을 잃어버린 관객이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이 하는 것일지도 모를 연기가 아마 두 번째와 세 번째 층의 중간 즈음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다양한 층으로 극을 구성한 것은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라는 직관적이지 않은 제목처럼 당신의 삶에 대해 실존적인 고민을 해보길 바라는 연출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더 나아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어디인지 분명히 맺어주지 않음으로써 극의 내용 자체를 하나의 메시지로 전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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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을 보는 동안에는 전개되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고 몇 겹의 액자로 구성된 극인지 세어보느라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었었다. 극장을 나오면서 내가 무엇을 본 것일까 하고 생각해보니 왠지모를 꺼림직한 기분이 들어 이런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까지가 다 연출의 의도였을까 질문하게 되었다.

 

애매하고 분명하지 않지만 어딘가 불쾌한 기분은 내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바로 짚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것, 모호한 경계가 나의 일상에도 침범해 올 것이라는 일종의 두려움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생각을 정리했지만 이는 예상보다 오래 나의 뇌리에 남게 되었다.


예를 들면 꿈을 한참 생생하게 꾸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서 눈을 떴을 때 현실을 자각하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 꿈에서 막 깨고 났을 때는 기쁜 일이었든 슬픈 일이었든 꿈에서 있었던 일은 내용보다도 진하게 남은 감정 때문에 현실이 무엇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아주 강렬한 내용이었다면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도 꿈 때문에 하루가 감정에 지배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내가 느끼고 있는 연장된 감정이 현실일까, 나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진짜일까. 현실감이 없는 현실을 ‘꿈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반대의 상황이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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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나 사건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다. 극 중의 배우처럼 수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무엇이 진짜 자신인지 잃어버린 듯한 사람, 웃는 가면을 쓰고 난 후 가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임이스트는 이 흐름에서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다.

 

휴대폰을 정말 가져갔는지 알 수 없는 중년 여성은 이들의 모호함을 한층 더해주면 극 전반에 미스터리함을 불어넣는다. 이렇게 현실과 극을 연결해보니 좀 더 내용이 와닿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한 답이 없는 현실의 무감각함과 소외감을 추상적인 흐름으로 풀어냈을 뿐 현실과 연극의 본질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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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연극과 영화를 동시에 볼 수 있었던 신선함을 언급하고 싶다. 연극을 그대로 옮겨놓은 영화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같은 내용의 시놉시스를 두 가지 매체로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극에서는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무대 장치들, 장소들, 엑스트라가 영화에서는 모두 나타났다. 상황을 전달하는 데에 더 현실감이 있었고 계속해서 바뀌는 프레임 속 배경들이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시선이 분산되는 대신 인물과 렌즈의 거리가 극의 포커스를 일정 부분 정해주었고 다양한 영상효과도 영화에서만 가능한 것임을 상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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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또한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 연극은 무엇보다도 관객과의 거리가 훨씬 가깝다는 장점이 있다. 스크린이 아닌 극장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레이어를 가진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특징은 연극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매력으로, 이것은 연극을 더욱 극적으로 돋보이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는 개인적으로 그래서 연극이라는 매체에 더욱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영화로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긴 하지만,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함을 느끼게 하는 데에는 같은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다른 층위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편이 의도를 전달하는 데에 더욱 적합했다는 생각이 든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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