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저는 우울하고 잘 지냅니다

계속 글을 써야겠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다.
글 입력 2020.10.2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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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음'의 부재


  

내 삶 안에서 많은 것들을 들어낸다 하더라도, 나는 꾸준히 나로서 존재할 것. 내 오랜 다짐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늘 어딘가 의존하고 있던 내 모습을 '그것'이 사라지거나 흔들릴 때가 되면 발견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의심 섞인 의문이 든다. 과연 내가 혼자서도 꿋꿋하고 곧게 서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이렇게 내면에 거센 바람이 부는 날이면 꼭 무너지기 직전까지 휘어지곤 한다.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길 수 있는 날이 있는가 하면, 그 어떤 이유나 위로도 달갑지 않은 날이 있다. 딱 후자와 같은 날에는 정말 도무지 어쩔 줄을 모르겠다.

 

생의 불씨를 붙이는 것은 그리도 어렵고 힘들었는데, 꺼지는 것은 한순간인 듯하다. 끄거나 꺼트린 것이 아니라 꺼져버리는 삶. 내가 아닌 것들로 인해 조각나는 삶.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렇게 무력함에 잠식되어 호흡이 부족할 때면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왜 늘 쉽게 망가지는 걸까? 지금도 종종 떠올리긴 마찬가지다. 누구보다 단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데도 나는 언제나 무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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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면을 파고들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 잠겨버린 것처럼 사위가 고요해지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정확히는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게으름과는 결이 다르다. 정말 지구의 온 중력이 나 하나에게 집중된 것처럼 몸이 무거워진다. 가라앉는 육신을 돌보지 않고 허무함에 목을 매다 보면 오직 하나만이 바쁘게 활동을 시작한다. 허구의 욕망들. 이리 튀고 저리 튀며 종잡을 수 없으나 실제로 이뤄진 적은 없었던, 그야말로 얄밉고도 서러운 존재들이다.

 

올해가 찾아오고, 꽤 오래 무딘 생활을 했다. 기뻤다. 드디어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조금은 '단단'해지는 것에 성공한 것 같아 자축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한 때였다. 초대한 적 없지만 늘 제멋대로 방문하는 손님을 맞이하듯, '내 그럴 줄 알았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일상처럼 우울에 잠겨 있길 택하기 직전, 문득 깨달았다. 일생을 보내는 동안 '괜찮음'을 단정 짓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를 말이다.

 

내가 바라던 안온하고도 평화로운 일상이 평생 지속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꼭 내 삶은 다정하기만 해야 한다고 나와 약속되어 있었던가? 나는 정말 지루할 만큼 모든 것이 빈틈없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길 바랐던가? 나는 그동안 왜 그렇게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만 살아왔던 것인가?

 

나만 이렇게 사는 것 같다며 말도 안 되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있던 내가 그제야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나. 세상의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었음을,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며 싹을 틔우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지구에 만개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를 쓰다, 짓다, 적다.


  

이제는 무기력을 마주치면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조금 지칠 수도 있는 거야.' 하며 스스로를 달랜다. 그리고 이불과 하나가 되려는 몸을 일으켜 미리 세워 둔 '하찮은' 계획들을 완수한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계획대로 하루를 마감했을 때 성취감이 쌓이며 동력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밀려드는 생각들을 쏟아낸다. 그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주로 글 쓰기를 택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떠오르는 생각의 과정들을 언어로 치환하여 적어내는 행위는 내가 지금껏 살면서 꾸준히 즐거움을 느끼는 정말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다. 글을 쓰면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아주 어렸을 적부터 꾸준히 글을 써왔다. 초등학생 때부터 그림 낙서 대신 끄적거린 메모는 그 도구와 저장 위치만 달라졌을 뿐 그치거나 비워진 적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쭉 시와 소설 쓰기를 좋아했다. 수업에 집중이 안되거나, 야간 자율학습에 지쳐 있을 때면 노트 맨 뒷장에 아주 작은 글씨로 (아무도 볼 수 없도록)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다. 학교가 늦게 끝나는 것은 좋았던 적 없지만, 달 뜬 밤 사람 없는 버스에 올라타 이어폰을 꽂고 멍 때리며 낮에 쓴 이야기 속 세계를 상상하곤 했던 것만큼은 너무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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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현실에서 벗어난 이야기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틈틈이 그리고 꾸준히 '나를 말하기 위한' 글을 썼다. 블로그에 비공개 글을 올리거나, 펜을 들고 일기장에 직접 적을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일기를 썼고, 어느 날은 시와 소설, 편지의 형식을 빌리곤 했다. 나의 메모장과, 블로그와, 일기장은 항상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이야기로 풍요로웠다.
 
글은 나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다. 우울과 무력함을 진탕 토해내고 싶을 때도, 행복해서 지금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 소리라도 고래고래 내지르고 싶을 때도 나는 늘 '글을 써야겠다, 글을 쓸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대개는 생각도 하기 전에 편집창을 켜고 깜빡이는 커서를 따라 활자를 입력한다.
 
글은 그렇게 종종 내게 연명의 유일한 기회가 된다. 글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정확히 어떨 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인지에 대해 한참 고민하다 내 블로그 검색 창에 '글'이라고 기대 없이 적어보았다. 그렇게 찾은 2014년의 메모.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배신하지 않고 위로하는 것이 글 이외에는 더 있을 것 같지 않다. 설령 그런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글 보다 큰 존재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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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개인 블로그에만 감춰두던 '비밀 글' 대신 사람들과 나누기 위한 '공개 글'을 더 많이 쓰고 있다.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타인과 내 글을 나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혼합되어 있겠지만, 우선은 내 이야기 따위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다음으로는 나의 못나고 서툰 부분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닮아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자기 자신만 들여다보며 정체되어 있던 날들이 나는 싫었다. 그렇게 한숨처럼 적어 내려갔던 나의 '우울과 극복을 통한 나아감'에 관한 글로 상상해본 적도 없는 진귀한 경험을 해보게 되었다. 난생처음으로 라디오 방송국에 방문해 마이크 앞에 앉아 보게 된 것이다. 내가 쓴 글을, 그렇게도 감추고 싶었던 나의 글을 내 목소리로 낭독하기 위해서였다. 행복에 겨웠던 나는 이 날의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계속 글을 써야겠다. 나는 그렇게 나를 쓰고, 나를 표현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이 정도면 넘치게 행복한 것 같다."
 
나는 매 순간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를 분노케 하고, 무력케 하고, 슬프게 하고,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에 대해 꺼내어 관찰하고 싶을 때. 그리고 그럼으로써 '살아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을 때. 나는 이 세상에 운석처럼 떨어진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모두와 같은 뿌리를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싶지 않을 때. 나는 나를 쓰고 싶다. 나를 짓고 싶다. 나를 적고 싶다.
 
 
"요즘 참 사람 사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일상이 버겁고 무거워서 일어나기도 쉽지 않은 날이 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원래 알던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것만 같고, 망망대해로 떠밀려가듯 막연하고 무력하다.
 
괜찮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 괜찮아지려 할수록 허망함에 괜히 의심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들면서 일단은 걸어본다. 걷다가 할 수 있겠다 싶은 구간은 잠시 뛰어보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그래도 어디엔가는 도착하겠지. 그렇게 멀리 가면 갈수록 틈이 벌어지겠지. 그런 기대로.
 
내 삶에서 다른 누군가를 들어내더라도 그래서 나 혼자만이 남더라도 온전하고, 굳건히 나를 지킬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 2019년 10월 7일 일기 中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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