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개를 위한 전시인가, 사람을 위한 전시인가

글 입력 2020.10.2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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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20년 9월 4일부터 10월 25일까지 개최된 전시이다.

 

독일의 반려견 선진 문화에서 볼 수 있듯 해외에서는 이미 반려견을 위한 전시, 반려견을 동반할 수 있는 전시가 존재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이 최초이다. 적록색맹인 개를 위해 거의 모든 작품이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구성되었고 사람의 무릎높이, 즉 개의 눈높이에 설치되었으며, 정연두 작가의 작품 <토고와 발토 – 인류를 구한 영웅견 군상>과 같이 사료를 소재로 제작된 동상도 설치되었다.

 

 

 

개를 위한 전시인가


 

전시를 들어가기에 앞서, 마치 최초의 개를 위한 전시를 축하라도 하듯 파란색과 노란색의 화분식물들로 장식된 전시 개요를 볼 수 있었다.

 

“가족이라고 부르지만, 여전히 공공장소에 오기 힘든 반려동물을 미술관에 초청합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공간이자 대표적인 공공장소인 미술관의 실질적인손님으로 개들을 초대하면서 현대사회의 반려의 의미, 우리 사회에서의 타자들에 대한 태도, 미술관이 담보하는 공공성의 범위 그리고 공적 공간에 대한 개념등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반려동물이 공적 장소에서도 가족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를 질문하고, 철저히 인간 위주로 구축된 미술관이 과연 타자와 비인간(non-human)을 고려할 수 있는지를 실험할 것입니다.”

 

이 문장들만 보아도 이번 전시가 우리 사회로 하여금 반려의 의미와 타자의 의미, 그리고 미술관이 담보하는 공공성의 범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논의할 수 있는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는 ‘최초’라는 점, 사회에 새로운 시야를 제공하고 논의의 출발점을 던졌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만큼 전시의 구성은 탄탄했을까?

 

전시 공간에 들어서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공간 [모두를 위한 숲]은 개들의 산책로와 같은 컨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집 앞에서 볼 수 있는 풍경; 작은 관목 몇그루와 나무토막으로 뒤덮인 인공 자연이 전시 공간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개가 올라갈 수 있는 파란색의 입체 미로가 있었고, 반려견과 반려인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쉼터 자리가 있었으며,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개의 시점을 담은 영상이 개의 눈높이에 설치되어 있었다. 조경가 유승종이 구성한 이 공간은, ‘완전히 인간화될 수 없으며, 동시에 완전한 자연으로 남아 있을 수 없는 자연문화의 양가성’을 표현하고 있다. ‘혼종의 공간이자 다원성의 장소, 결코 전체를해석할 수 없는 공간인 숲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캡션을 보지 않고 공간을 맞닥뜨리며 느낀 첫 감정은, 개와 사람이 관람할 수 있는 포인트가 서로 다른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다원성’의 막연한 감정이었다. 사람은 올라갈 수 없고 개만 올라갈 수 있다는 미로의 주의사항을 보며, 그리고 개의 눈높이에 설치된 영상을 보며 인간 위주의 경험을 하기를 포기하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동반자이자 타자인 ‘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공간에 존재하는 구성, 기술, 매체 등에서 인간의 흔적을 익숙하게 찾을 수 있다. 이 공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람과 개가 함께 앉아 쉴 수 있는 쉼터자리에서 잠깐 보았던 영상이다.

 

“집 안의 침대나 소파 위에 앉아 있으면서도 가구를 망치지 않으려면 털갈이를 해서도 안 돼요. 다리는 짧아야 하고 눈과 방광은 커야 해요. 그럼 화장실에 자주 가지 않아도 되니까요. 인간은 어떤 이유 때문에 개들을 적응시키고 있어요. 필요성에 의해, 특정 개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 살길 원하죠.”

 

수많은 반려인 중 한 명으로서 너무 공감되었던 말이다. 필요성에 의해, 인간의 관점에 의해, 내가 사랑하는 개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전시가 기획된 것 아닐까? 개들을 인간 영역인 문화 생활에도 적응시키고 있는 것 아닐까? 개들에게 과연 이 전시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면의 심미적 유희 활동은 인간 고유의 것이다. 개를 위한 놀이공간이 미술관 안으로 들어온 것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개와 함께 앉아 이러한 생각을 하고 질문을 던지고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유의미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전시의 기획자와 작가들이 의도했던 바일 것이다.

 

두 번째 공간에서는 개 특유의 ‘챱챱챱’ 소리를 내며 신나게 돌아다니는 웰시코기 한 마리를 발견했다. 파란색과 흰색의 정사각형 무늬로 구성된 바닥과 벽에소파, 침대, 거울, 싱크대 등 가구가 배치된 공간이었다. 별 특별할 것 없는 반려인의 집 구조였다. 그러나 웰시코기는 즐거워보였다. 소파와 침대에 올라가 다른 개의 체취를 탐색하기도 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 같아 보였다. 웰시코기가 올라갔던 작은 침대를 살펴보니, 침대 시트가 강아지들의 발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 때 느꼈다. ‘개들은 사람보다 더 적극적인 주체로서 참여하는구나.’ 이 전시에서 작가는 사라지고 개들의 활동, 교감만이 남는다. 전시를 관람하는 주체의 활동과 의미부여로 작품이 완성되는 진정한 참여미술인 것이다. 설채현, 조광민 수의사가 개의 지각과 인식, 습성과 감정 등을 고려하고, 김경재 건축가와 유승종 조경가가 개를 위한 건축과 조경을 신경 쓴 만큼, 철저하게 개를 위해 만들어진 전시에서 개들은 철저하게 놀이 활동, 유희활동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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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위한 전시인가


 

같은 두 번째 공간에서, 정연두 작가의 작품 <토고와 발토 – 인류를 구한 영웅견 군상>을 볼 수 있었다. “토고와 발토는 1925년 알래스카 극한의 추위에 전염병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면역혈청을 싣고 밤낮으로 개썰매를 끈 개들이다.” 이 작품은 개들이 좋아하는 사료를 재료로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전염병의 위기가 동물로부터 왔다는 점과 동물이 인류를 구한다는 역설적 병치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세균과의 사투를 각종 가공육류로 이루어진 사료를 이용하여 만든 동상을 통해 보여주고 인류와 동물의 공존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 전시 책자를 보지않으면 이 작품이 사료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마스크를 쓴 사람의 후각으로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전시 경험자에게 듣기를 개들은 좋아했다고 한다. 개들은 즐거운 노즈워킹의 활동으로써 작품에 공감한다.

 

사람은 작품 이면의 진지한 의미와 아이러니를 고찰하며 작품에 공감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개와 사람’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사람의 지적 유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순수예술 작품이었다. 야외로 나가는 계단에는, 사람과 개가 함께 쉴 수 있도록 개와 사람을 위한 방석이 각각 마련되어 있었고, 벽면에는 3D 모션 그래픽 영상이 대형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이 영상작품 <전령(들)>은 소련이 우주선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할때 태웠던 최초의 동물, “라이카”를 극사실적이면서도 가상의 이미지로 가시화한다. 라이카는 원래 이름 없는 모스크바의 떠돌이 개였다. “짧은 기록만으로만 남은 이들의 이야기는 인간이 가진 다른 종에 대한 오만과 몰이해, 그리고 우주를 향한 식민주의적 욕망의 역사적 증거로 기록된다.” 이 영상 작품 또한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사람과 개가 함께 쉴 수 있는 공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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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으로서, 반려인으로서


 

지하와 지상의 야외 공간에는 개들의 놀이마당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람은 개를 위한 놀이 조형물의 재미 있는 조형성을 보며, 개는 직접 그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며 작품에 함께 공감할 수 있다. 자연물로 만들어진 미로 정원도 있었다. 한 마리의 개를 키우는 반려인으로서 반려견과 함께 왔으면 너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이 전시가 진정 개를 위한 전시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전시를 관통하며 사람과 개가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을깨닫고,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 미술관이라는 공공장소가 더 다양한 타자를 위해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러한 기회를 통해 ‘소중한 타자성’에대해 진지한 고찰을 하며 더 다양한 존재들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앞서 말했듯 이러한 고찰과 논의의 신호탄으로서, 도전적인 실험으로서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전시 구성이 너무 약했다고 생각한다. 퍼포먼스, 스크리닝, 토크 등 전시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더욱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겠지만, 전시 프로그램에의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전시 작품들만 본다면 이 전시를 시작으로 더 많은 작품과 논의점들이 있을 수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하루에 입장할 수 있는 반려견 수가 제한되어 있고, 반려견을 동반하여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되어있었으며, 선착순 신청으로 인해 반려견과 함께 전시를 관람하는 전시 접근성 자체가 어려웠다는 점은 앞으로 더 개선되어야 할 전시의 한계점이었다.

 

그렇지만 조용하고 진지한 미술관의 공간에서 사람의 소리와 함께 개들의 발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을 듣는 경험은 앞으로 미술관을 포함하여 공공장소의 긍정적 변화를 직감할 수 있었던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이영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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