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문화 전반]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에 대한 이야기
글 입력 2020.10.2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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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계절을 걸친 제주살이와 세계의 도시 곳곳을 떠돌아다니던 긴 여행으로 점철된 나의 이십대 초반에는 ‘집’이라는 공간의 비중이 거의 0에 수렴했다. 나는 항상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자주 어디론가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내가 머무르는 공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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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해지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던

스페인 집 창 밖 풍경

 

 

집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교환학생으로 스페인에 다녀오고 나서부터였다. 처음으로 독립을 하면서 구한 집은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아파트였고 네 명이 살 수 있는 쉐어하우스였다. 저층 건물이 대부분인 동네에 몇 안 되는 고층 건물이라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반해 당장 계약했다.

 

입주를 하고 하룻밤 자고 난 뒤 맞는 첫 아침은 공허했다. 내가 집에 들어갈 때엔 스페인 남자애 한 명만 살고 있었고 생활패턴이 너무 달라 집에서 잘 마주치기도 힘들었다. 이국 땅의 낯선 도시에도 익숙해지지 못한 상황에서 그 큰 집에 거의 혼자 산다는 건 무척이나 외로웠다. 평생을 가족과 함께 살아와서 집안에 누군가 없다는 게 이리도 허전한지 몰랐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인 여자애가 들어왔고, 그 집에서 1년을 살면서 몇 명의 룸메이트들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했다. 매일 아침 부은 얼굴로 인사하는 것이 익숙해지고, 같이 요리하고, 시험기간엔 거실 탁자에 모여 밤늦게까지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 지나자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이 무색하게 이들은 내게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물리적인 안식처를 넘어서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질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이십여년을 같이 산 가족들보다 고작 일년을 함께한 룸메이트들에게 더 애정이 가는 건 왜일까. 학창시절의 나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학교에 종일 있다가 밤이 늦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가족 모두 일이나 학업으로 바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유년시절 이후로 집은 거의 잠만 자는 곳이었다. 게다가 가족이라는 명확한 울타리가 오히려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에 부단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나는 다시 가족들이 사는 집에서 산다. 독립생활로 집에 대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자 생활패턴도 바뀌었다. 코로나로 집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 요리와 베이킹을 시작했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대신 동네를 걸으며 예전엔 미처 몰랐던 곳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걸어서 15분 거리엔 개천이 있어 나는 달리기를, 부모님은 매일 운동과 산책을 하신다. 가족들은 여전히 바쁘지만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이 전보다 늘었다. 집 자체도, 함께 사는 이들도 스페인에 가기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더 편안하고 따뜻해졌다.

 

아직 나는 가족과 함께 살지만 언젠가 독립을 하면 살고 싶은 집이 있다. 내가 꿈꾸는 집은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는 큰 탁자가 있고 옆엔 볕이 잘 드는 창문이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 제철음식으로 계절을 맞이하고 친구들과 함께 먹으며 차 한잔, 술 한잔씩 기울일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고 싶다. 가끔은 함께 사는 이들과 집 근처의 좋아하는 가게에서 밥을 먹고 타박타박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이 있었으면 한다. 현실감 없는 집값과 보증금, 부담되는 월세에 독립은 꿈처럼 아득하지만 나의 선택과 취향으로 채운 집에서 보내는 일상이 주는 온기를 기억한다. 그래서 나의 ‘집다운 집’을 꿈꾸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다.





[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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