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러쉬, [With Her]

글 입력 2020.10.2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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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Crush는 나에겐 첫사랑과 같은 존재다. 이유라 함은, 단지 내가 첫사랑을 겪는 시기에 <가끔>이라는 곡을 즐겨 들었기 때문이다. 열병을 앓을 정도로 후끈한 데다, 때론 날카롭고 차갑기도 했던 그 여름밤을 사랑하게 된 것에는 그도 한몫을 했으리라. 그는 눈 깜짝할 새에 국내 힙합 아티스트들의 앨범에 이름을 올리더니, <어떻게 지내> 이후로 국민 R&B 아티스트가 되어 있더랜다. 적당히 건조하고 적절히 축축한 가을 한가운데서, 그의 앨범이 올해의 마지막 선물처럼 다가왔다.


음원 발매와 동시에 온라인 콘서트로 등장한 그는, 여느 때와 같이 탁월한 라이브 무대로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앨범 제목과 걸맞게 ‘그녀들의 이야기, 목소리, 느낌, 감정, 잔향, 실루엣’에 대해 부른다. 모든 곡이 여성 아티스트와의 듀엣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에로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자아내는 한편 가을의 정서에 맞는 쓸쓸함도 엿보인다. 한 가지 더 특별한 점은, 타 아티스트의 경우 피처링진의 표기를 (Feat.OOO)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이번 앨범에서는 모든 피처링진을 (With.OOO)이라 표현한 점이다. 음악과 소통,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화합에 대한 그의 진중한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발라드와 R&B/Soul, 보사노바, 힙합이라는 폭넓은 장르를 시작으로 90년대 특유의 알앤비 구성부터 현대 최전선의 힙합까지. 지금부터 곡 하나하나의 가사를 곱씹고, 그가 선정한 아티스트들과의 대화를 엿보아 그의 군입대 전 마지막 앨범인 ‘With Her’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놓아줘 (with 태연)

  

 

놓아줘

나를 묶고 있는 너의 마음

아픔은 늘 나의 몫인 걸

목이 메어 내뱉는 이 말도

너 대신 할게

 

 

크러쉬의 설명에 따르면 타이틀곡 ‘놓아줘’는 이별을 직감한 두 남녀의 이야기라고 한다. ‘잊어버리지 마’이후 두 번째로 작업하게 된 태연과 함께 호흡을 맞춘다. 감미로운 밴드 세션과 시냇물처럼 자연스러운 멜로디 흐름을 보면, ‘어떻게 지내’와 참 비슷한 무드와 구성을 가진 곡이다. 다만 ‘어떻게 지내’에서는 단지 ‘네가 없어서 하루가 참 길다.

 

넌 어떠니,’하고 묻는 듯한 이별을 후회하는 한 사람의 곡이었다면, 이번 타이틀곡 ‘놓아줘’는 이별 직전에 놓인 아슬한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길고 긴 인연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권태로움과 서로를 놓을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원망, 그리고 결국 안녕을 말하게 되는 아픔. 언뜻 단호히 느껴지는 피아노 박자 사이에서 따스한 기타 연주를 기반으로, 두 번째 후렴의 두 사람이 만들어낸 선율은 긴 시간을 함께한 연인처럼 조화롭지만, 그 끝엔 서로의 손을 놓듯 흐트러지는 소리가 난다.

 

 

Tip Toe (with 이하이)

 

 

Tip tip toe tip tip toe

발끝으로 movin’ on

Tip tip toe stop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이하이 특유의 소울풀한 보이스를 충분히 녹여낼 수 있는 선율, 고양이가 담벼락을 걷듯 조심스럽게 내뱉는 목소리가 돋보이는 곡이다. 이번 앨범의 전체적인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물을 보면, 두 아티스트가 음악적인 면에서 얼마나 잘 통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꼭 퍼즐을 맞춰나가듯 죽이 척척 맞는 모습이다. ‘첫눈에 반한 상대방에게 살금살금 걸어간다’는 이야기를 담은 이 곡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하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다가가는 듯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

 

크러쉬는 이 곡을 작업할 때 이하이와의 호흡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마치 나 두 명이서 작업하는 기분이었다.’라 언급하며, 이하이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아이템을 쏙쏙 흡수했다고 한다. 타이틀곡인 ‘놓아줘’에서 ‘만남의 끝’에 대해 말했다면, ‘Tip Toe’는 첫만남의 설렘에 대해 풀어놓는 사랑스러운 곡이다.

 

 

춤 (with 이소라) 

 

 

너는 자유롭게 춤을 추네

저 별들보다 반짝이게

내게 아름 시린 노랠 불러 줘

 

 

<비긴어게인>에서 호흡을 맞췄던 두 아티스트가 다시 만났다. 장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의 보사노바는 삼바, 재즈의 혼합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 틀을 벗어난 이 곡은, 해가 뜨기 전 어스름한 새벽녘 사랑을 말하는 듯하다. 멜로디 라인은 보사노바의 틀과 비슷하지만, 강렬한 드럼의 소리는 제하고 재즈의 감성을 직관적으로 살린 기존 장르의 재해석으로 볼 수 있다.
 
이소라의 곡선적인 보이스, 그녀의 목소리를 폭신하게 뒷받침하는 크러쉬의 부드러운 선율로, 우리에게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것을 알게 되는 과정은 얼마나 아파야 하는가에 대해 한없이 낭만적으로 설명하는 곡이다.
 
크러쉬는 이 곡에 대해 ‘굉장히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함축적인 곡’이라 언급했다. 나는 이 곡을 화선지에 물을 적시듯 스며드는 사랑, 그걸 뒤늦게 깨달은 이가 부르는 후회의 노래라 부르고 싶다.
 
 
Step By Step (with 윤미래)


 

I found my love

애타는 맘 감출 수 없어

girl you know I want you, to be with you

너와 둘이, 단둘이 all night baby

 

 

아티스트 본인에 따르면 ‘원단의 알앤비’라 칭하는 이 곡은, 정통 알앤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듯한 곡이다. 윤미래 특유의 건조한 듯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가 시작되면, 저절로 긴장이 탁 풀리며 그 자리에 편히 눕고 싶게 만든다. 어느 정도 편안한 연인의 모습을 그린 노래로, 어둑한 밤 마주하게 된 익숙하고도 설레이는 만남을 노래한다.

 

가사의 내용을 보면, 피로에 지쳐 막 귀가한 나를 향해 팔을 벌리고 걸어오는 연인이 떠오른다. 포근하고 따스한, 조금은 투정을 부리는 것도 같은 애정의 곡. 가만히 듣노라면 어릴 적 상상했던 ‘어른의 연애’가 이런 형태였던 듯 싶다. 서로를 감내하고 이해하며, 가끔은 조르게 되더라도 늘 품을 내어 주는 사랑. 그 환상을 다시금 꺼내게 한, 극세사 이불의 질감을 주는 곡이다.

 

 

She Said (with BIBI)

 

 

어떤 모양새가 좋아 na na na

Let me tie make it fxxkin tight

또 내 등엔 손톱자국이 남아 Don't fxxking lie

no lies어차피 니 남자는 몰라 na na na

 

  

최근 힙합 알앤비 분야에서 많은 이목을 받고 있는 아티스트 비비, 그리고 크러쉬가 만났다. 앞서 언급한 ‘Tip Toe’라는 곡이 간지럽고 조심스러운 첫만남을 말했다면, ‘She Said’는 애인이 있는 여자를 유혹하는 남자, 그리고 그것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여자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대놓고 야한’ 곡. 비비가 가진 매력적이고 섹슈얼한 보이스는 곡이 가진 애로틱한 무드의 수치를 최대로 끌어올린다.

 

위험하지만 그런 상황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사랑을 나누는 남녀, 그 사랑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가사는 불안하기보단 되려 달짝지근한 매력을 자아낸다. 곡을 듣기 전 인터뷰를 먼저 들여다 봤을 때, ‘가사가 조금 걱정되지만.’이라 언급하는 크러쉬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곡의 첫 소절을 듣는 순간 그에게 투영된다. 하지만 걱정되리만치 위험한 날 것의 감정을 노래한다는 것이 얼마나 설레이는 일인가.

 

*

 

다섯 명의 여성 아티스트와 어우러진 그의 목소리는, 곡마다 그 템포와 무드를 달리 한다. 태연과 함께한 타이틀곡 '놓아줘'에서는 그녀의 얕은 목소리에 잔잔히 뒷받침하는 역할이 되어 주고, 이소라와 함께한 '춤'에서는 그녀 특유의 부드러운 멜로디 흐름과 말하듯 노래하는 발성에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그와 함께한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장르, 저마다 다른 세대와 컨셉을 크러쉬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소화했다. 그런 면에서, 진정한 음악적 'With'의 면모를 보여준 앨범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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