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의 회복과 치유과정

토니 모리슨의 「Beloved」
글 입력 2020.10.21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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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러비드」의 저자 토니 모리슨은 흑인 노예 제도에 대해 “흑인들 뿐만 아니라 백인들조차 기억하고 싶지 않은 국가적 기억상실증”이라고 언급하며, “백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도망쳐, 마땅히 져야 할 윤리적 책임까지 회피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빌러비드」는 노예의 역사를 외면하는 미국 사회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미국 사회 전체가 가지고 있는 ‘국가 건망증’을 재조명한다. 노예 서사에 대해 “너무 끔찍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 위에 베일을 내려두기로 합시다” 등의 도피성 표현을 사용하던 미국 초기 작가들과 달리, 모리슨은 드리워진 베일을 찢어낸다.

 

소설 「빌러비드」 는 흑인 노예 세스가 그녀의 딸을 노예 제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살해하기를 택한 ‘영아살해’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세스의 죄의식 속에서  딸 빌러비드는 유령이 되어 124번지에 귀환한다. 소설의 저자 토니 모리슨은 이 과정에서 세스가 과거 노예 시절의 고통에 직면하고, 잊고 싶었던 과거를 ‘재기억’하는 과정, 즉 노예제도로 인한 트라우마(trauma)적 경험을 서술한다.




트라우마(trauma)



트라우마는 어원상 강한 타격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그리스어의 상처(wound)에서 유래한다.


노예제도로 인한 등장인물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는 그들의 몸에 새겨진 흔적을 통해 표현된다.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을 대표하는 세스는 벚나무 모양의 흉터를 가지고 있다. 과거 세스가 일한 농장의 경영주였던 학교 선생은 농장의 노예들을 말 그대로 짐승처럼 다뤘다. 가혹했던 노예 시절이 만들어낸 지워지지 않는 흉터는 그녀가 비인간적으로 취급 당한 트라우마 또한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드레스가 엉덩이 근처까지 흘러내렸을 때, 그는 그녀의 등에 새겨진 조각을 보았다. 대장장이가 지나치게 열정을 기울여 만들어 남에게 보여주기도 아까워하는 정교한 작품 같았다. ‘오 이런 세상에’라고 생각했으나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입술로 그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더듬어보기 전까지는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세스는 아무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등의 살갗이 모두 오래 전에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오랜 친구였던 폴 디가 124번지로 찾아오고 세스와의 교감을 시도하지만, 흉터로 덮인 그녀의 등은 폴 디의 손길에 무감각하다. 이 신경의 마비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그녀의 의식에서 지워졌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는 진정한 망각이 아니라, 기억의 억누름일 뿐이다. 이처럼 세스는 트라우마적 사건에 대한 재기억을 의도적으로 거부하여 노예 시절의 끔찍한 고통에서 도피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피’는 세스에 대한 묘사 곳곳에서 나타난다.

 


과거의 모든 것은 고통 또는 상실이었다. 그래서 세스와 베이비석스는 과거를 절대 입에 올릴 수 없다는 데 말없이 동의했었다. 덴버가 아무리 캐물어도 세스는 그저 짧게 대답하거나 불완전한 몽상만 두서없이 늘어 놓곤 했다. 심지어 폴 디와 이야기할 때도, 과거의 일부를 함께 나눈 그였기에 적어도 차분하게 말할 수는 있었지만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마치 재갈이 물린 흉터가 입가의 보드라운 부분에 남아 있는 것처럼

 

 

 

트라우마의 치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스의 트라우마는 마침내 치유된다.

 

그것을 도운 첫 번째 조력자는 폴 디였다. 124번지에 찾아온 폴 디는 농장에서의 일을 끊임없이 언급하며, 세스가 고통스러운 과거를 재기억하도록 한다.

 


세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도통 말을 듣지 않는 머리를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어째서 이 머리는 거절이란 걸 모를까? 참혹한 일이든, 후회스러운 일이든, 더럽게 끔찍한 장면이든 가리는 게 없으니. 욕심꾸러기 아이처럼 뭐든 덥석덥석 받아먹는단 말이야. 단 한번이라도, 고맙지만 사양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중략) 난 알고싶지도 않고 기억하고싶지도 않아. 그것 말고도 할 일이 많은걸. 내일 일도, 덴버도, 빌러비드도 걱정해야 하고, 사랑은 물론이고 늙고 병들일도 걱정해야 해.

 

 

사실 이처럼 트라우마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물론 과거의 트라우마를 ‘재기억’ 하는 것은 잠재된 고통의 재생을 초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라우마를 가진 주체는 ‘재기억’ 과정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서사적 기록’으로 변형시키는 힘을 얻는다. 이와 같은 ‘사건의 객관화’는 자아의 회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야기하는 과정이 곧 치료의 과정이다.


이어서 토니 모리슨은 트라우마적 고통의 직접적인 당사자를 서로 마주하게 함으로써 세스의 치유를 돕는다. 노예의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살해했던 어린 딸을 그녀에게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은 세스를 과거의 고통과 가장 직접적으로 직면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가 보인다. 암말을 몰고와 속도를 줄이는, 넓은 챙으로 얼굴은 가릴 수 있지만, 속셈까지는 숨길 수 없는 검은 모자를 쓴 그가. 그가 그녀의 앞마당으로 온다. 그녀의 보배를 빼앗으러 온다. (중략) 그녀는 달려간다. 얼음송곳은 그녀의 손에 쥐여있지 않다. 그녀의 손이 바로 얼음송곳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아주 결정적이다. 노예 어머니 세스가 보드윈을 백인 사냥꾼으로 착각하고 공격한다. 그 공격은 18년 전과 정 반대의 방향이다. 이 공격은 그녀의 잠재 의식을 표출시켜 그녀의 트라우마를 지배하던 빌러비드와 직면하게 하고, 동시에 과거와 똑같은 상황을 맞닥뜨림으로서 그녀가 트라우마의 주체를 정확히 인식하게 한다. 이 과거의 재현을 통해 사랑하기 때문에 딸을 살해할 수 밖에 없었던 18년 전 세스의 심정이 드러나고, 결국 그녀는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잠재되어 있던 고통의 순환을 끊어내고, 온전한 자아를 찾으며,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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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로 대표되는 작품 속 등장 인물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이를 도피하고, 망각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동시에 트라우마의 역사를 기억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결국 노예 어머니를 대표하는 등장인물인 세스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그 현존인 빌러비드를 직면함으로써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아를 찾기에 이른다. 토니 모리슨의 작품 서술방식도 이러한 맥락과 같다.

 

토니모리슨은 「빌러비드」의 등장인물인 세스(어머니), 덴버(산자), 빌러비드(죽은자)로 하여금 백인과 흑인 모두에게 수치스러운 역사와 트라우마적 경험을 폭로하려는 자신의 욕구를 대신하도록 한다. 이것은 “국가적 기억 상실증”의 상황에서 미국 흑인 노예들의 잘려나간 역사, 고통과 같은 트라우마적 기억을 「빌러비드」라는 서사적 기억으로 변형시키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토니모리슨은 「빌러비드」를 통해 노예제도의 희생자인 흑인들에 대한 “국가적 기억상실증”으로부터 우리를 일깨우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은자 들에 대한 책임”을 독자와 작가가 함께 질 것을 제안한다.

 

 

[신지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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