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책을 펼치게 하는 새로운 얼굴, 리커버 [도서]

일상 속 경험에서 꺼내어보는 리커버에 대한 관심과 흥미
글 입력 2020.10.20 05:0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책을 수집하는 취미를 들이는 중이다. 예전엔 한 두어번 읽고 손이 가지 않는 책들이 책장을 빽빽히 차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빌려보되 많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주로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필기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그것을 담기 위한 펜과 종이가 필요했다. 담아가고 싶은 내용이 많으면 핸드폰 카메라로 간단히 찍어가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책을 한 권, 두 권 사서 늘 가방에 넣고다니며 연필로 좍좍 그어읽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무척이나 독서를 습관처럼 하는 사람이었다. 직업 상 스케줄이 유동적이고 바쁜 사람인지라 책을 빌려읽기 보다는 직접 사 읽되, 목표치를 정해두고 컴퓨터 메모장 같은 곳에 간단한 몇 줄짜리 독후감을 남겨두는 습관이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책을 그런 방식으로 읽어두는 것에 장점이 있다고 했다. 첫째로는 자신이 그 책을 읽던 당시 마음에 들었던 문장들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둘째로는 당시의 감상과 이후의 감상을 덧대어 더 풍부한 독서가 가능하다고 했다.

 

평소 책을 사서 읽는 것의 유익을 모르던 나인데, 그 모습을 보니 시간차를 두고 '나의 책'으로 길들이는 것에 대한 매력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쇼핑을 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꾸준히 백화점과 가게로 발길이 닿는 것처럼, 책을 사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니 자연스레 서점과 인터넷 도서 사이트들에 관심이 갔다. 도서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빳빳한 책들의 느낌이 무척 좋았다.

 

갖고 싶은 책들이 무척 많았지만, 책이란 것이 꼽다보면 부피가 꽤 있어 보관을 위한 공간을 꽤나 크게 차지하는 것이지 않나. 그래서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책들을 추리면서 나의 책을 찾아 나섰다. 사실 펼쳐서 읽어보기 전에는 책의 내용이나 문장이 내 마음에 다가오는지 알기가 어렵다. 그럴 때 기준이 되어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책의 표지였다.

 

 

EiAzIrNWoAAhOmt.png

ⓒ민음사 <보건교사 안은영>의

리커버 이벤트 홍보 이미지

 

 

나의 최종 선택은 넷플릭스를 통해 재밌게 봤었던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이 된 정세랑 작가의 장편 소설. 민음사에서 출판되는 책들은 언제나 같은 규격과 동일한 표지 레이아웃으로 특유의 통일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특별판의 경우 람한 작가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표지 커버의 전면과 커버 날개 부분 안의 양장본 커버까지 아트워크로 채워져있었다.

 

넷플릭스의 원작을 워낙 좋아했기에 작품에서 어떤 특징적인 소재들이 등장하는지 익히 알고 있었다. 또 기존 표지도 감각적인 아트워크로 그려져 있었다는 것도. 리커버는 그런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좋았다. 표지만 봐도 소설 속 주인공 '안은영'이 어떤 물건들을 들고다니는지 알 수 있었고, 람한 작가 특유의 오묘한 감성이 원작이 가진 감수성과 잘 맞아 떨어진다는 감상이 들었다. 게다가 특별판이라니! 내 책으로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여러모로 '소장'하고 싶은 욕구로 변해 정신없이 책을 사게 만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받아본 책의 만족도도 무척 컸다.

 

프레젠테이션1.jpg

 

보통 좋은 리커버의 사례는, 출간된지 오래된 책의 표지를 현대의 감각에 맞추기 위한 목적이 있거나, 기념하기 위한 목적이 있을 때 주로 쓰인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그런 면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이 역시 이전의 사례처럼, 표지만 봐도 여성에 대한 이야기, 사회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내용임을 암시하고 있다.

 


Ei-slDYVgAA7AVq.jpg

ⓒ민음사 <보건교사 안은영> 특별판 출간 마케팅

'카카오톡 테마' 홍보 이미지

 

 

흥미로운 것은 요즘의 리커버는 단순히 책의 내용을 잘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온전한 디자인과 마케팅의 역할, 곧 '굿즈'의 역할을 함으로서 더 소장하고 싶은 소비욕을 불러일으킨다. 알라딘, 교보문고, YES24 등의 대표적인 도서 판매 사이트에서 책의 컨셉이나 심미적 요소를 본딴 자체 굿즈를 만드는 것은 익숙한 문화이다.

 

이번에 소장한 <보건교사 안은영>의 경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바로 리커버 된 아트워크로 카카오톡 테마를 만들어 배포한 것. 사실 책과 카카오톡 테마라하면 전혀 연관이 없게 느껴진다. 그치만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덤 문화에 흔히 '일코(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 대외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한 이미지의 뉘앙스만 나타내고, 직접적인 노출은 피하고 싶을 때 하는 행위나 행태의 전반)'가 나타나는 것처럼, 책이라고 못할 것이 무엇인가 싶은 의견이다.

 

일각에서는 리커버가 책의 본질인 내용을 흐리고, 과열된 소비양상으로 이어져 출판으로서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주객이 전도된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책과 잡지를 구매해서 보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분명 시장 전체과 출판 업계, 나아가 글을 집필하는 작가들에게도 손해인 일이지 않을까. 어떤 방법과 연계되든, 그것이 소비자로 하여금 소장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작가들에게도 책의 이미지를 뚜렷하게 각인시키고 판매 수완도 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리커버 문화는 다소 상업적인 비판을 받더라도, 좀더 대중들에게 적극적인 문화로 뜨거워질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다.

 

케이팝 앨범만 해도 음악 뿐 아니라 사진, 영상, 디자인 등을 포함한 아트 디렉팅이 들어간다. 동시대에서 예술이란 것은 더 이상 예술 그 자체로 독립해 있을 수 없으며, 이러한 성질은 대중예술에서 극명하게 두드러진다. 그 매체가 문자 언어를 기반한 책이라고 하여 책을 펼쳐봐야만 알 수 있는 텍스트에 모든 부담을 걸어야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리커버를 통해 책의 첫 인상이 될 얼굴을 만들어내고, 읽고 싶게끔 한다면. 아쉬운 점보다는 순기능이 더 많은 새로운 신시대의 문화 마케팅 전략이 아닐까.

 


[지현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