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눈사람] 흔한 서비스직 경험담

열네 번째 눈사람: 감정노동에 고통받는 서비스직 종사자에게
글 입력 2020.10.2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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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손님을 응대하는 서비스를 할 일이 잦아졌다. 진상 손님에 대한 각오는 하였으나, 처음 근무할 때는 불친절한 손님들에게도 쉽게 서운하곤 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CS마인드가 부족했던 탓도 있었다.


하지만, “진상 손님”이 상당히 포괄적인 개념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단순히 불친절한 손님들에게 기분 상하는 것은 순간뿐이었고, 쉽게 날려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불친절은 진상계의 애교에 불과했다. 차별과 갑질, 미디어에서 보이는 흔한 이야기들은, 다른 차원의 진상이었고, 이것이 과연 합당한 노동인지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


어쩌면 너무도 흔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늘 예시로 나오는, 그런 서비스직 경험담을 풀어보려 한다. 어쩌다 이런 일들이 이렇게 “흔한” 일이 되었을까? 왜 내 경험은 신선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도대체 왜, 신선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을까?




너 내가 누군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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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문화 시설에서 안내원으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이 말을 육성으로 들을 줄은 몰랐다. 너무 흔하다 못해 개그로 쓰이기까지 하는 바로 그 명대사,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이거 드라마에만 나오는 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육성으로 저 대사를 들었다는 신기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업무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손님은 시설이 기대와 다르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고, 주변에는 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손님은 내가 무전을 할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내 선에서 해결해야 했다.


일단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저건 질문일까, 감정 표현일까”였다. 그 정도로 황당했다. 질문이라고 하더라도, 알 리가 없지 않은가. 진짜 유명인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전혀 아니었다. 빠르게 머리를 굴려 답을 찾아내야 했다.


본인이 누군지 아냐는 황당한 질문에 대해 나는 “죄송합니다.”라고 답했고, 놀랍게도 정답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손님은 내 사과에 어느 정도 화를 풀었고, 매니저와의 대화를 요청했다. 나는 그제야 무전을 할 수 있었고, 상황은 그렇게 종료되었다.


혹시나 해서 매니저에게 그분을 아는지 물어보았지만, 내 질문 역시 의미 없는 질문일 뿐이었다. 아무리 불친절하고 진상인 손님들이 와도, 저 대사가 나온 적은 없었는데, 실제로 들어보니 더 낯선 기분이었다. 그분이 누군지 내가 알았어야 하는 걸까? 설령 안다 해도 답은 “죄송합니다.”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남자근무자 지원 요청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는 또 다른 문화 시설에서 안내원으로 근무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손님 한 분이 예매하지 않은 공간에 무단으로 들어갔고, 이를 확인한 다른 안내원들이 그 손님을 제지하고 있었다. 나는 무전을 통해 상황을 듣고 있었고, 손님을 응대하던 근무자는 손님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어떻게 대처할지 매니저에게 문의하였다.


돌아온 매니저의 답변은 간단했다. “남자 근무자가 가보세요.” 나는 이 답변을 듣고 이해가 가지 않아서, 선임 근무자에게 대체 이게 왜 해결책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답을 채 듣기도 전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남자근무자가 한마디 하자마자 알겠다며 손님이 자리를 이동한 것이었다.


내 질문에 선임 근무자는 아주 흔한 일이라며, 같은 안내도 남자 근무자의 안내만 듣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였다. 남자근무자와 여자근무자의 복장에는 큰 차이가 없으며, 똑같은 명찰을 달고 있고, 응대 방식에도 차이가 없다. 그럼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지만, 워낙 잦은 경우라 남자근무자가 꼭 필요하다는 대답만 들었다.


*


며칠 후, 나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 착용 안내를 하고 있었고, 2회 이상 안내에도 착용하지 않던 손님으로 인해 난감하던 상황이었다. 반복적인 안내를 내가 할 수 없어서 다른 안내원에게 부탁하였고, 마침 있던 남자근무자가 손님에게 착용을 안내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남자근무자와 눈을 맞추고 바로 마스크를 착용하던 손님. 바로 뒤에서 바라보며 전에 들었던 “흔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기분이 상당히 이상했다. 내가 안내할 때는 눈도 마주하지 않던 손님이었는데, 말 한마디에 바로 마스크를 착용할 줄은 몰랐다.


물론, 내가 이미 2회 안내를 한 상황이었고, 남자근무자가 세 번째 안내를 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3회라는 횟수가 동기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안내하는 동안에는 너무 답답했다거나 하는 자신만의 사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느낌이란 게 있지 않은가. 흔해 빠진 바로 그 상황이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분명 해당 문화 시설에 근무하는 안내원은 대부분은 여자인데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안내원은 안내원이다. 성별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특히나 고객 응대에서는 완전히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금은 근무를 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이 이야기에 찝찝함을 안고 있다. 여전히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는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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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직의 진상 손님으로 인한 감정노동 문제는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온 문제이다. 다행히 지금은 CS 마인드 교육이나 대응책이 많이 생겨나서 상황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손님들이 지켜야 할 것들인데, 정작 피해를 본 당사자들이 교육을 받고 변하려고 하니,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위의 일들 외에도, 직접적인 폭언, 협박성 발언, 신체적 위협 등 털어내기엔 무거운 수많은 경험을 하였다. 하지만, 급여를 받고 근무를 하는 입장이니까 당연히 감수해야 할 부분들이라 생각하고 넘겼다. 손님들 역시 대가를 지불하고 나에게서 서비스를 받는 것이니까.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들이 산 서비스에는 “근무자에게 함부로 대할 권리” 같은 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나는, 근무자는, 그런 서비스까지 제공한다는 동의를 한 적이 없으며, 합당한 대가를 받지도 못했다. 소비자가 자신이 대체 어떤 서비스를 산 건지 정확히 알고 정당한 주장을 해야, 서비스 제공자 역시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서비스직 종사자도 각자의 직업정신을 갖고 근무한다. 일하기까지 수많은 교육을 받고, 매뉴얼을 숙지하고, 준비해서 근무지에 나간다. 생각보다 전문적이고, 소중한 인력들이다. 없으면 가장 불편할 사람들이 바로 손님들인데, 상호 존중은 너무도 기본적이고 당연한 일이 아닐까?


언젠가 이토록 흔한 이야기가, 더는 흔하지 않은 이야기가 될 날이 오길 바란다. 누군가 이런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에이, 그런 사람이 어딨어.”라고 반응할 만큼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되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단순한 경험담이 아니라, 엄청난 사건으로 취급될 날이 와야 한다.


지금까지 나의 흔한 서비스직 경험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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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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