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벨 자, 우울로 점철된 생의 기록 [사람]

글 입력 2020.10.1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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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e been tearing around in my fucking nightgown
24/7 Sylvia Plath …
 
 
*
 
 
첫 시작은 이 가사였다. 좋아하는 가수인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의 ‘Hope is a dangerous thing for a woman like me to have – but I have it’ 노래에서 짧게 언급되는 실비아 플라스. 시집을 출간할 만큼 문학을 탐닉하는 라나 델 레이는 여러 작가들에게 영감을 받고 종종 그것을 가사에 풀어내곤 했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빵 부스러기를 흘려놓은 것처럼, 라나가 가사 곳곳에 흩뿌려놓은 영감의 원천을 쫓아가며 노래와 함께 즐겼던 나는 역시나 실비아 플라스라는 이름을 찾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비아 플라스. 31세로 요절한 미국의 여성 시인으로 천재적인 작품 활동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정보를 찾아보든 실비아 플라스는 작품보다 그의 기이한 죽음으로 설명되고 있었다. 예술가의 죽음은 예술가의 명성을 드높여준다고 했나. 그 누구도 유명해지기 위해 자살을 의도하진 않겠지만 우연한 사건은 일찍이 져버린 예술가의 천재성을 다시 돌아보게 함과 동시에,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그를 다시 소환한다.
 
나 역시 실비아 플라스의 작품 세계보다는 오븐 속에 머리를 박고 가스를 마셔 자살을 선택했다는 그의 죽음에 먼저 관심이 갔다. 자극적인 가십거리를 접하는 것처럼 그의 죽음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하지만 사후에 작품보다 괴이한 죽음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는 걸 시인이 알게 된다면 그는 어떤 심정일까? 예술가는 항상 본인의 작품으로 삶이 읽히길 원할 텐데, 너무 했다, 싶었다. 나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시인이 남긴 유일한 소설 『벨 자』(1963)를 읽기 시작했다.
 
 
 
1. 벨 자, 우울로 점철된 생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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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 보면 유독 정이 가는 인물이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삶이 기구해서, 인물의 성격을 닮고 싶을 만큼 부러워서, 내가 평생 가질 수 없는 삶을 사는 인물이 매력적이어서…. 『벨 자』의 에스더 그린우드는 나와 비슷한 또래였고, 내가 한때 괴로워했던 생각들로 고민하고 있었다. 마치 내 일기장을 옮겨 놓은 것 같은 생각들에 공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 『벨 자』는 에스더 그린우드라는 시골 출신 대학생이 패션 잡지사 콘테스트의 입상자로 선정되어 인턴 생활을 하며 보낸 뉴욕에서의 한 달간의 시간과 그 이후 몇 달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에스더는 좋은 시를 창작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 있는 충실한 문학도다.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는 “미친 듯이 공부하고, 읽고, 쓰고 일하는 것”(48p)이다.
 
첫 뉴욕 생활을 시작한 에스더는 주변 환경과 뛰어난 사람들 속에서 압도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한순간 자신감이 차오른듯한 모습도 보인다. 나는 소설 초반에 가끔 보였던 에스더의 자신감과 당당함이 마음에 들었다. 자기 자신이 우등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 사실을 즐기고 있으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한 학생이라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A 학점과 장학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본인을 몰아붙이며 성과를 이루어내고 지적 호기심을 가진 자신의 모범적 이미지를 활용해 본인이 유리한 대로 판을 짜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대단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뉴욕에서 에스더는 점점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다고 느낀다. 잡지사에서 제공해주는 화려한 뉴욕 생활을 하지만 마음 한편은 여전히 공허하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수도 없이 생각했지만, 정작 인턴 생활이 끝나고 무엇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 에스더는 점점 활력을 잃어간다. 급기야는 이제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듯한 모습도 보인다.
 

 

“내가 끔찍하게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늘 부족했는데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내 특기는 장학금 따기와 상 타기였는데 이제 그것도 끝나가고 있었다. 경마장이 아니라 거리에 던져진 경주마가 된 기분이었다. 대학 우승자인 풋볼 선수가 양복 차림으로 월스트리트와 마주 선 느낌과 비슷했다. 트로피에 새겨진 날짜는 묘비의 날짜와 다름없었다.” (106p)

 

 
요리와 속기, 춤과 독일어를 못하는 자신이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언급한 후에 이어지는 문장이다. 장학금 따기와 상 타기를 잘 해냈던 우등생의 자신감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상에 순응하는 자아와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펼치고 싶은 자아가 충돌하고 시 쓰기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은 그 어떤 분야에서도 부족하다며 열등감을 표출한다.
 
소설이 진행되며 에스더의 열등감과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리고 한 달간의 뉴욕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에스더에게 살아갈 의욕을 완전히 앗아가 버린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선택된 학생들만 들을 수 있다는 글쓰기 수업을 못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에스더에게 글쓰기는 전부이다. 요리와 속기를 못 하고 춤을 못 추고 독일어를 할 줄 모르고, 세련되지 못한 패션 센스와 부족한 연애 경험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가지고 있는 유일한 분야. 글쓰기 수업을 기대하며 힘든 뉴욕 생활을 버텨왔는데,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되자 에스더는 살아갈 이유를 잃는다. 그 사건을 기점으로 에스더의 우울은 증폭되어 글을 읽지도 못하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다.
 
에스더의 정신 건강은 날로 악화되고 칼로 팔목을 그으려고도 한다.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에스더는 결국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자살시도는 실패에 그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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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평온했다. 벨 자(Bell jar)가 내 머리 위 2미터쯤 되는 곳에 매달려 있었다. 내 몸은 순환하는 공기를 향해 열려 있었다.”

 

 
벨 자는 종 모양의 유리 덮개다. 유리 덮개를 통해 보는 세상은 안쪽에서도, 바깥쪽에서도 왜곡되기 마련이다. ‘숨 막히게 뒤틀린’ 벨 자는 언제나 머리 위에 존재해있고 언제든지 내려와서 에스더를 가둬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가령 이런 셈이다. 남자친구인 버디 윌러드는 결핵에 걸려 요양원에 있으면서 에스더에게 병문안을 부탁했고, 자신의 불어난 몸집을 당당하게 에스더에게 밝히기도 한다. 심지어 병실에서 윌러드 부인이 되는 게 어떻겠냐고 에스더에게 청혼까지 한다. 자신의 병수발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반면 에스더는 정신병원에 있을 때 어떤 누구도 병문안을 오지 않기를 바랐고, 변해버린 자신의 외적인 모습을 숨기고 싶어 했다. 버디와는 다르게 인슐린 주사로 인해 불어난 몸을 혐오했다.


 

“이제 네가 누구한테 시집갈지 걱정이다, 에스더.”

“뭐라고?”

나는 파낸 눈을 던지다가, 눈가루가 날려서 눈을 깜빡이며 대꾸했다.

“네가 누구한테 시집갈지 걱정이라고. 네가…….”

버디는 언덕과 소나무들, 언덕 위로 솟은 눈 덮인 건물들을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이런 데 있었으니.” (321p)

 

 

버디는 부탁하지도 않은 병문안을 와서 위로는 못할망정 에스더의 신경을 긁는다. 병원 신세를 경험했던 본인과 에스더에게 너무 다른 판단 기준을 적용하는 게 아닌가? 버디의 황당하고 이중적인 잣대는 에스더의 머리 위에 있는 벨 자(Bell jar)를 몇 센티나 아래로 끌어당겼을 것이다.

 

 
 
2. 에스더 그린우드와 실비아 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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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는 실비아와 무척이나 닮아있다. 소설 『벨 자』는 우울로 점철된 실비아의 생의 기록과 다름없다. 그의 생애를 살피자면 어려서부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길지 않은 삶 동안 그것을 세상에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여덟 살 때 《보스턴 헤럴드》에 시 작품을 실을 정도로 문학 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창작 능력 역시 뛰어났다.
 
1950년, 실비아는 장학생으로 스미스대학에 입학하여 문학을 공부했고 1953년엔 인기 패션 잡지 《마드모아젤》의 편집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55년 최우등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실비아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러니까 『벨 자』속 에스더는 실비아 자기 자신이다. 실비아는 대학 생활과 잡지사 인턴 생활에서 느낀 불안과 우울을 에스더를 통해 소설로 표현했다.
 
이후에 실비아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만난 시인 테드 휴즈와 1956년에 결혼하고 1957년부터 2년 동안 모교인 스미스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1960년에 첫 시집 『거대한 조각상』을 출간했고 같은 해에 딸을 출산했으며, 1962년에 아들을 출산했다. 하지만 남편인 테드 휴즈의 외도로 인해 같은 해 10월부터 별거를 시작했고 그 다음 해인 1963년 2월 11일, 1살과 3살인 두 아이를 남긴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벨 자』 속 에스더는 이성애자 여성으로서 남성을 향한 끌림을 가지고 있지만, 결혼에 대한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적이다. ‘여자가 결혼해서 자식을 가지면 세뇌가 되고, 나중에는 전체주의 국가에 사는 노예처럼 둔해진다(117p)’고 이야기할 만큼 결혼보다 개인의 성취를 우선시하는 인물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1950년대를 살아간 여성으로서 가진 생각일까, 아니면 결혼 후에 가진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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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에 반복된 임신과 출산과 양육은 “미친 듯이 공부하고, 읽고, 쓰고 일하는” 삶으로부터 실비아를 점점 멀어지게 했다. 실비아는 생전에 남편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육아의 부담마저 떠안은 채 불안한 창작 생활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실비아는 남편의 외도로 별거 후에 아이 둘을 혼자 키우며 생활고에 시달렸다.
 
1981년에는 테드 휴즈가 엮은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이 출간되었고, 다음 해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작가 사후에 출간된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시인은 현재까지 실비아 플라스가 유일하다. 하지만 테드 휴즈가 실비아 사후에 그의 일기에 손을 대고, 자신에게 불리한 작품을 삭제했다는 등 실비아의 작업물을 온전한 상태로 출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실비아 플라스는 죽어서까지 벨 자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3. Hope is a dangerous thing for a woman like me to have - But I hav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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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 델 레이의 노래로 글을 시작했으니 라나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어보려 한다. 라나 델 레이의 음악 세계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는 ‘우울’이다. 1집 Born to die라는 제목처럼 쓸쓸한 곡의 분위기와 우울하게 씹히는 가사가 그의 음악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예술가들이 특히 어떤 면에서 우울감에 쉽게 빠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고, 할리우드 새드코어의 전형이 된 라나가 왠지 위태로운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의 정규 앨범을 거치면서 밝은 분위기의 곡도 발표하고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면서 절망에서 희망을 향하는 라나의 음악에 문득 마음이 놓였다. 비교적 최근에 발표된 곡 Hope is a dangerous thing for a woman like me to have – but I have it은 멜로디 자체도 어둡고 차가운 데다, 실비아 플라스와 같은 우울의 상징적 존재를 불러내며 노래한다. 마치 에스더가 글쓰기에서 희망을 찾았지만 글쓰기가 자신을 좌절시켰을 때 삶을 포기해버린 것처럼, 희망이 배신하는 게 두려워 희망을 품기 어렵다는 가사가 에스더의 삶과 겹쳐 보였다.
 
하지만, 잘 들어보면 제목의 끝에도, 노래의 마지막 가사에도 “But I have it”이 있다. 자신과 같은 여자가 희망을 갖는 건 어렵지만 아무튼 가졌단다. 소설은 많은 미래를 보여주진 않지만 에스더가 병원을 퇴원하고 학교로 돌아간다는 내용으로 끝맺는다. 머리 위로 드리워진 벨 자가 언제 다시 내려올지 모르지만 어쨌든 정신병원을 퇴원하는 건 유의미한 회복이다.
 
실제로 실비아 플라스도 생애 전반에 걸쳐 우울증을 앓았지만, 첫 번째 자살 시도 이후 치료를 받고 회복되어 죽음으로 생이 끝나기 전까지 많은 훌륭한 시들과 『벨 자』라는 소설을 탄생시키지 않았나.


 
나는 살아있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살아있다.
 

 

원문으로는 “I am, I am, I am.” 소설의 후반부에서 에스더는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아직 숨이 붙어있음을 강박적으로 확인하고 생의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힘겹게 읊조리는 것 같았다. 실비아가 마지막 자살 시도를 하기 전 자신을 구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등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었다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살아있다는 감각을 갈구했던 그의 마음이 시리도록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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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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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당분
    • 실비아의 죽음과 "밤에 마음껏 걸어 다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그의 한 구절만 알고 있었는데 벨 자 꼭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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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연
    • 당분항상 관심 갖고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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