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노트 Sigak] 4. 나의 감상 vs 작가 의도

미술 앞에서 마치 식사를 하듯 대화가 오간다면 어떨까
글 입력 2020.10.1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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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술은 늘 “처음”이야


“예술 작품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이것을 즐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언젠가 이 문장을 만나고 작은 함성을 터뜨렸다. “그래 맞는 말이야!” 하며 그냥 넘어가지 않고 작은 함성을 던졌던 이유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왠지 모를 안도감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술은 얼마든지 다르게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처음 보는 작품에 대한 내 감상을 말한다는 것이 늘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예술은 너무 다채롭다. 세상이 빠르게 흘러갈수록 예술도 빠르게 움직이고 새롭게 탄생한다. 그러기에 지금 나와 공존하는 예술의 모든 것을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적어도 오늘날에 한 사람이 찾아가는 대부분의 작품은 늘 ‘처음’ 그 자체일 것이다. 처음 가는 전시회고 처음 보는 작품이고 처음 알게 된 작가를 마주하는 순간. 당장 나로서도 충분히 많은 내용을 미리 알아두고 찾아간 전시는 정말 손에 꼽힌다. 미술을 만나는 건 늘 새롭고 낯선 일이다. 때론 용기가 필요하고, 힘을 낸 적극적인 발걸음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처음”, 작품 앞에서 무엇인가를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로 말하기가 망설여진다면 그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2. 미술은 결국 “사람”이다

 

미술사학자 E. H. 곰브리치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실상 미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과연 맞는 말이다. 미술가 없이 미술은 있을 수 없다. 사람 없이 예술은 있을 수 없다. 겉으로 보자면 우리는 완성된 작품을 만나는 것이지만, 결국 작가를 마주하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관객은 작품 앞에서 여러 방식으로 반응하며 곧 자연스럽게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는지 작품을 읽어 보기 시작한다.

 

이따금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 하는 일이 책을 읽는 것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전시 제목, 포스터, 소개글을 보며 어떤 전시회를 보러 갈지 정한다. 마치 서점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기 위해 표지를 보고 제목을 보고 목차를 살펴보듯이. 전시회에 가서 작품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한다. 마치 책 속에 담긴 여러 편의 글을 읽듯이. 책을 읽으며 내용에 완전히 몰입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아 잠시 멈추기도 하고, 인상 깊은 지점이 많다면 멈춰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그렇다. 전시에 완전히 몰입할 수도 있고, 이해가 되지 않아 물음표를 띄울 수 있고, 인상 깊은 작품이 있다면 얼마든지 머무르며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시회가 한 권의 책이라면, 책에 담긴 여러 이야기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창조한 사람은 미술가이고, 미술가의 작품을 세심히 읽어내고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의미와 맥락을 부여해 제목을 붙여 책으로 엮어낸 이는 전시 기획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모이고, 새로운 제목과 맥락이 더해지고, 그렇게 세상에 나온 하나의 전시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새로이 일어날 의미와 경험을 기다린다.

 

 

3. 미술에 대한 “대화”

 

글의 제목 “나의 감상 vs 작가의도”는 내가 몇 달 전에 작성한 주제 리스트에 쓰인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분명 이 문장을 쓰던 당시의 나는 이 두 가지를 ‘나누어서’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일 테다. 내가 하는 감상과 작가의 의도로 창조된 작품 그 사이에 대하여. 누군가에게는 정말 궁금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현대미술’을 어려워했을 때 종종 “내가 느끼고 생각한대로 마음대로 감상하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면서 감상하는 것이 맞는 걸까?” 속으로 혼자 질문하곤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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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표, Galaxy X/Y

 

: 《갤럭시 오디세이展》(2018) 전시에 전시되었던 인터렉티브 아트 작품이다. 가운데에 놓인 공을 굴리면 그 움직임에 따라 공간을 채운 우주 이미지가 함께 움직이는 작품이었다. 마침 같이 간 친구와 단둘만 남아서 정신없이(?) 공을 굴리며 공간을 가득 채운 우주를 즐겼던 기억이 난다. 20대 대학생 둘이 작은 방에서 공을 마구 굴리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라(오랜만에 떠올렸는데 웃음이 나온다). 그런 마음으로 작품을 즐기는 것도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다.

 

 

한편 누군가는 이런 구분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몰입형 전시에서 자주 마주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 아트나 미디어 아트는 만들어진 의도 자체가 관객이 펼쳐진 작품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즐길 수 있는 미술이니 말이다. 이런 미술에 있어 ‘나의 감상’과 ‘작가 의도’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할까?

 

오늘날 공존하는 여러 모습의 미술을 보다보면 결국 이 두 가지는 작품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까이 맞물려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작품에 대한 나의 감상이 담긴 문서와 작가의 의도가 가지런히 쓰인 문서가 각각 따로 쓰여진 채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새로운 만남의 장으로서 펼쳐지는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이 나아왔으니 “나의 감상 vs 작가의도” 사이에 놓인 ‘vs’를 지워야 할 것 같다. 대신 연결이나 대화의 의미로 저마다 마음에 품은 기호를 쏙 넣으면 될 것 같다. 나는 “나의 감상 - 작가 의도” 정도로 간단히 표현해보려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관객인 나와 작품으로 말을 건네는 작가가 맞닿아 소통이 일어났던 순간에 대한 나의 경험 몇 가지를 꺼내보고자 한다.


 


 

 

(1)

 

시를 쓰는 지인과 우연히 짧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대화 중 그는 시를 쓰는 사람들끼리 오가는 ‘그들만의 리그’ 같은 평가만이 아닌, 일반 독자의 시선에서 무엇이 느껴지는지에 대한 피드백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술 전시 리뷰를 쓰는 나의 관점에서 피드백을 주면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해주었다. 나 역시 그의 의견에 동의했고, 그의 권유 덕분에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을 두고 시를 읽으며 그에 대한 감상글을 쓰게 되었다. 진지한 마음으로 시를 읽고, 느낀 것을 정리해보는 시간은 새로웠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시를 감상하는 것이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면 모든 예술을 향한 나의 감상 태도가 미술 작품을 보듯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처음으로 진지하게 읽어본 시라는 예술을 통해 나는 나의 기대보다 더 많은 것을 음미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2)

 

얼마 전 한 작가님의 개인전을 다녀온 후 썼던 리뷰글에 작가님이 직접 댓글을 달아주신 적이 있다. “멋진 감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짧고 굵은 댓글이었다. 내가 쓴 리뷰 글에 작가님의 대답을 직접 받는 건 처음이었다. 하트만 누르려니 허전한 것 같아 나름 고민하다 “저 역시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남겼다. 마음속은 “저 역시 좋은 전시와 작품을 통해 이런 생각을 하고 글로 남길 수 있게 해주셔서, 이토록 자유로운(?) 리뷰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도의 길고 긴 대답을 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내가 느낀 것과 생각한 것을 쓸 수 있는 힘도 얻게 되었다.

 

 

(3)

 

인디 애니메이션 리뷰 글에 작품 감독님께서 댓글을 남겨주신 적이 있었다. 여러 작품에 대해서 작품 소개글에 기반해서 쓴 감상과 함께, 내 감정과 상태에 따라 일어난 자유로운 해석도 함께 담은 글이었다. 감독님께서는 다양한 시선으로 쓰인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씀과 함께 작품을 인상 깊게 봐주신 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고 전해주셨다. 나 역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느낌과 생각이 담긴 글을 마음 두며 읽어주셨다는 것에 감사했다. 나는 그저 내 생각과 감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나의 감상이 의미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4)

 

인사동에서 열렸던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에서의 이야기다. 말없이 작품을 보거나 조곤조곤 작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린아이가 엄마 손을 잡아끌며 이렇게 외쳤다. “엄마! 숲 한가운데 해가 떠 있어! 진짜 희한하다!” 아이는 그림 앞에서 그 누구보다 크고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자기가 보고 느낀 걸 외치고 있었다. 습관처럼 지식을 꺼내던 나는 아이가 말한 그 희한한 작품 앞에 멈춰 섰다. 너무도 맞는 말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정말 희한하다. 숲 한가운데에 해가 떠 있거나 하니 말이다. 점점 멀어져가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예술은 대하는 내 마음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졌다. 나도 모르게 너무 딱딱하게 굳어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나도 아이처럼 그림을 정말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을 텐데. 한편으론 르네 마그리트가 이 아이의 감상을 어떻게 생각할지 괜히 궁금해졌다. 그가 아이의 말을 들었다면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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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연회Banquet

 

 

마르셸 프랭스: 당신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르네 마그리트: 내 작품이 전하려는 것은 한 편의 시라고 말하겠습니다.

 

- 1962년 마르셀 프랭스와의 인터뷰 중


 

자주 겪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예술을 두고 어떤 소통이 일어날 때마다 각진 엄숙한 화이트 큐브 마냥 잔뜩 긴장한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미술 작가들의 인터뷰나 이야기를 찾아보고 읽을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의외로 오늘날 미술은 이미 굳어진 ‘난해하다’라는 인상과 달리 과거의 그 어떤 미술보다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많은 미술 작가가 인터뷰에서 질문에 따라 자신의 예술관과 작품 세계를 소개하다 “관객이 이번 전시를 통해 무엇을 보고 감상하기를 바라시나요?”라는 마지막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관객이 작품을 통해 저마다의 경험을 꺼내고, 자신만의 관점을 통해 해석하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그래서 이런 질문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건 나일지도 모르겠구나.”

 

“아주 재미있게도 우리 시대에 가장 전위적이라 믿어지는 아티스트들은 관람객들이 그들만의 소통을 하기를 원한다. 관람자가 작품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마음껏 즐기는 관람자가 작품의 일부이고 완성자다. 여전히 현대미술은 어렵지만, 오픈마인드라면 얼마든지 가서 즐기면 된다. 많은 작가들도 간절히 고대하는 바일 것이다.” 언젠가 인상 깊어서 메모해 둔 현대미술을 강의하시는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많은 작가들이 관객이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 경험하기를 원한다는 지점에 생각이 머문다. 그 말의 의미는 곧 많은 예술 작품이 가진 의도와 그 의미는 나를 포함한 다른 관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소통이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소통이란 무엇일까.

 

나는 내가 나름 고군분투하며 쓴 미술에 대한 글들을 생각해보다 “정말 희한하다!”라고 천진난만하게 외치던 아이의 말을 떠올렸다. 가만, “소통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라니, 이미 그렇게 일어난 모든 말과 이야기 자체가 작품을 통해 일어난 의미이고 소통이 아닌가. 그리고 그 순간에서 조금씩 그리고 하나씩 관객은 작가를 알아감으로써 조금 더 작품의 이야기를 읽어가고, 작가는 작품 앞에서 움직이는 관객에게 귀 기울이고 살펴봄으로써 작품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맞물린 사이에서, 조금씩 다가가며 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글의 시작에 있던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말 속 ‘즐기는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을 것이다. 호기심 어린 마음을 가진 어린 아이부터 지식을 갖추고 작품을 보려는 진지한 전문가까지 그 누구나 말이다. 그리고 교수님의 말씀을 통해 생각하자면 ‘즐기는 사람’은 곧 마음의 준비가 된, 오픈마인드를 가지고 다가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좋은 감상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를 구분하는 기준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자유롭게 떠올리고 새롭게 상상한 것을 나누는 대화부터, 저마다의 지식을 동원하며 감상한 내용을 평가하는 대화까지, 그러니까 그 어떤 대화든지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만은 확실하다. 이야기가 읽히지 않고 이야기에 대한 누군가의 말이 없다면, 작품의 의미는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고 새로운 의미조차 일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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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크리트 티라바니자, untitled(free/still)

 

 

글을 쓰는 동안 한 작품이 계속 떠올랐다. 어느 날 예술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는 음식을 요리했다. 작품이라기엔 너무 평범한 행동일 수 있다. 근데 그 음식을 요리한 장소가 바로 미술 작품이 전시되는 갤러리였다. 예술가는 음식을 요리해서 찾아오는 모든 관람객에게 무료로 나누어주었다.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점심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갤러리에 몰려들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갤러리에 모여 식사를 하며 자연스레 대화하기 시작한다. 작품을 만든, 정확히는 작품으로서 하나의 상황을 만들어낸 작가는 뒤로 물러나고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과 대화가 일어난다. 딱딱하고 엄숙한 갤러리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음식 냄새와 온갖 조리 기구와 요리 얼룩,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그들 간의 대화만이 공간에 가득 찬다. 문득 예술에 대해 오가는 대화가 이토록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익숙한 것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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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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