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름다워지려던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 안희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글 입력 2020.10.1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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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창비' 트위터

 

 

어제 오래된 택배를 받았다. 예전에 거처를 옮기고 옮기는 과정에서 이삿짐들을 할머니 댁에 놔뒀었는데, 잠깐 맡겨둔다는 것이 그만 3년이나 지나버렸다. 결국 할머니의 독촉에 못이겨 부친 택배를 어제야 받았다. 오래된 종이 박스에서는 쿱쿱한 냄새가 났다. 할머니가 뭐라할 만도 했다. 무엇을 넣어놨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박스를 열었다. 성의 없게 개어진 (혹은 던져진) 대학 신입생 시절의 옷들이 가득했다. 지난 세월 나의 패션센스에 경악하며, 다 버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나머지 박스도 열었는데, 그랬는데. 무슨 진부한 전개인지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2학년 때까지 모아둔 편지 박스를 발견해버렸다.

 

친구가 교과서에 남겨놓은 메모, 이름도 모르는 후배에게 받은 수능 응원 편지, 공포에 떨게 한 집착의 편지들, 어떤 고백의 기록들, 술에 취해 뻗은 나에게 친구가 남기고 간 포스트잇, 내 쪽에서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들까지. 불과 몇년 전까지 나는 누군가와 손편지를 공유할 정도로 낭만적인 삶을 살았나 신기해하다가, 한 장 한 장 읽으며 마음이 뒤숭숭해져버리고 말았다.

 

죽어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3년 전까지 나는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성폭력의 기억과 외로움, 대학 입학 후 찾아온 패배감에 허덕이던 나는 교내 상담센터를 찾다가, 그마저도 중도에 그만두고 휴학한 뒤 몇 주를 집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서서히 느린 속도로 다시 삶을 살기 시작했거나, 어쩌면 아직도 못 빠져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오랜 시간을 걸려 온 택배가 출발한 그 시간은 오랜 시간 나에게서 지워져 있었다.

 

그런데 그 때의 편지를 마주하다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던 시기에, 나에게 남겨진 사람들의 흔적을 하나하나 읽는 것은 뭐랄까. 나의 생각이 틀렸다고, 어쨌거나 나는 그 때 살아있었다는 것을 남겨진 볼펜 자국 하나하나가 온 몸으로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썩 훌륭한 삶은 아니었더라도 살아있었다고, 살아서 지금까지 와 있다고 말하는 글자들 앞에 나는 생일선물로 받았던 안희연의 시집 속 한 구절을 떠올리고, 어쩐지 요새들어 부쩍 잦아진 것 같지만, 다시금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지워진 사람

누군가 썩은 씨앗을 심은 것이 틀림없다

아름다워지려던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어긋나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 

 

- 안희연, 「소동」 중

 

 

무언가를 잃어버려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고 싶은 시집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오랜 꿈일수도,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그것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는 삶이 “벗을 수 없어 몸이 되어버린 것”(「캐치볼」)이 된 어떤 것들이 있다.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은 상실 이후의 삶을 노래한다. 그러나 조심할 것, 상실한 대상이 아니라 삶에 대해 말한다. 부재하는 대상을 되새김질하며 지나간 추억이나 감정의 바다에 매몰되어 있지 않는다. 대상이 떠나간 뒤, 멈춰있었던만 같았던 그 '죽어있던 시간'과 이후의 상실한 주체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최선을 다해 산 척을 하는 것”(「업힌」) 같았을 날들이라도 삶은 삶이었다고, “아름다워지려던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 어긋나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소동」)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그 어떤 극복의 서사는 아니다. 무언가로 대신해보려고도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새로이 삶을 쌓아보려고도 하지만, 모두 헛된 것이었음을 발견할 뿐이다. 화자는 “꽃은 꽃으로만 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모든 게 절반”만 남은 정원의 “나머지 세계를 그려보기로” 한다. 그래서 절반의 바다를 가진 하늘, 절반의 새를 가진 꽃이 만들어진 정원이 만들어지는가 하지만 그 끝에서 만난 소녀의 말은 벼락같이 “비가 되어” 내리고, 모든 것을 원상태로 되돌려놓는다. 섣불리 대신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모든 시도들은 처참히 실패했다는 것을, “하나가 없으면 실은 전부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가끔의 정원」)

 

“도려낸 자리엔 새살이 돋는 것이 아니라 / 도려낸 모양 그대로의 감자가 남는다”(「스페어」). 잃어버린 것은 그냥 잃어버린 것이고, 그렇게 도려진 자리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을 계속해야 한다. 삶이 너무도 잘못된 것 같다고, 아무래도 “누군가 썩은 씨앗을 심은 것”(「소동」) 같지만, 썩은 씨앗이 어긋나며 자라나는 것을 기다린다. 그것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란 마치 수없이 있을 “돌 하나를 부수기 위해 집 전체를 부숴야 할 때”(「불씨」)와 같을 테지만, 그것을 함부로 절망적이라거나 우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도려진 마음의 자리를 매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랑하는 것을 영원히 잃어버린 후의 삶은 그 때와 같이 행복할 수는 없지만 다시 행복할 언젠가를 꿈꿀 수는 있을 것이다. “더렵혀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 여름은 다시 쓰일 수 있“고, 그것이 “영원에 가까운 헤아림”일지라도 충분히 아름답다.(「열과」)

 

그러니 삶은 삶이었다고. 그것이 썩은 씨앗인 것만 같더라도, 어긋났더라도. 그 ‘더럽혀진 바닥’에서 시작하여 다시 여름을 쓰기 시작한 우리의 삶 역시 몇 년 후에 도착할 시간에서는 아름다울 수도 있다고,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과 나에게 안희연의 시집을 보내며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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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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