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근 사유공간 @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별관 Mo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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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고운 삼청동, ‘종로11번’ 버스를 타고 내려 파아란 ‘삼청로11길’ 표지판을 따라 자그마한 길로 들어서면 머지않아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별관 MoPS 건물이 보인다. 볕이 쨍하고 바람도 선선히 부는 아름다운 날씨에 보는 MoPS는, 건물부터가 예술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찾아온 전시는 고명근 작가의 개인전 ‘사유공간 Space of Contemplation’이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6시까지 운영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관람료는 없고, 코로나 19와 관련하여 입장 전 체온 체크와 간단한 방문자 개인정보를 작성하기에 비교적 안심하고 관람할 수 있는 전시이다. 건물은 1층 로비와 1.5층 문화공간, 2층 전시장과 2.5층 문화공간, 3층 전시장과 전망 좋은 옥상까지 갖추고 있다.
고명근 작가는 ‘사진조각’을 만드는 예술가이다. 작가는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일반적인 불투명한 인화지가 아니라 투명한 OHP 필름에 인화한 후 양면을 플렉시 글라스에 압착시킨다. 한 장소의 사진을 여러 방향에서 촬영하여, 그렇게 만들어진 여러 개의 투명한 인화된 사진들을 조합하여 입체적인 조각을 만든다. 장소의 장면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고명근 작가의 개인전인 이번 전시의 컨셉은 ‘사유’이다. 작가가 포착한 ‘사유’의 의미는 두 가지가 있다.
1. 사유思惟: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
2. 사유私有: 개인이 사사로이 소유함, 또는 그런 소유물
작가가 이번 전시의 제목과 컨셉을 '사유'로 정한 것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우선 이번 전시 속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하나의 작품에 한 인물만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공간인 작품이 한 개인이 사유私有할 수 있는 사유思惟의 공간임을 의미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격구가 있다. 작가는 이 말을 들어, 우리 개개인은 상호작용을 할 때에 깊은 사유에 빠지기 힘들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홀로 여행을 가는 것과 같이 혼자 한 공간에 있을 때, 혼자라고 느낄 때에는 깊게 사유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으며, 따라서 작가는 이번 전시에 의도적으로 한 인물만이 들어있는 작품들로 선정하였다고 한다.
작품 하나하나가 경외스러울 정도로 특색있고 훌륭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네 작품을 소개해 보려 한다.
첫 번째 작품은 위의 [Beijing 16-1]이다. 가볍게 보면 그렇게 특이해보일 것 없는 것 같지만, 확실한 특이점이 있는 작품이다. 오각기둥으로 구성된 본 작품은 내부 공간이 독특하다. 왼쪽 내부는 땡땡이 무늬가 있고 오른쪽 내부에는 그것이 없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필자의 해석을 피력해보자면. 위의 사진 조각의 구도를 고려하자면 좌측 내부는 건물의 내부이다. 반면 우측 조각의 내부는 '내부'임에도 불구하고 길거리, 즉 '외부'의 모습이다. 땡땡이 무늬는 벽지와 같이 어떤 장소의 실내임을 표현한 것이다.
좌측과 우측은 모두 작품의 '내부'인데, 한쪽은 정말 '내부'이고 한쪽은 '외부'라는 것이, 정말 오묘하다. 여기서 작가의 세계관 하나가 더 드러난다.
작가는 우리가 현실적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현대인들이 현실적 공간이라고 여기고 있을 뿐인 환영의 공간이라고 생각해 왔다고 한다. 작가는 이러한 작가의 세계관을 위의 작품을 통해 드러낸 것이다.
물론 이는 작가의 사상과 필자의 해석을 조합해 본 것일 뿐, 작가의 실제 의도와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위의 사진이 무엇 같아 보이는가? 필자는 처음 이 작품을 마주하였을 때는 아무런 갈피도 잡지 못하였다. 그저 뽀얗고, 아크릴판에 물을 뿌려놓은 것처럼 생긴 것 같다고 생각하였을 뿐이었다. 이후 작품의 제목을 보았는데, <포장마차 1>이라는 것이 아닌가.
아니 도대체 이것이 왜 포장마차인가? 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니 그제서야 형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사진 속 가운데 인물의 형상이 보이는가? 한 발짝씩 더 물러날수록, 포장마차의 천막과 형태까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였다.
결국, 이 작품은 비오는 날의 포장마차의 공간을 구현해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필자의 생각에 언어는 우리의 인지를 가두는 틀과 같은 것이다.
작품의 제목이라는 언어적 틀을 인지하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아니었던 것이, 그것을 읽은 이후에는, 무의식적으로 그 제목에 맞는 그림처럼 인지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의 생각과 몸을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결국, 언어적 규정에 입각하여 작품을 해석하는 본인을 발견할 수 있다.
다음 소개할 작품은 [Tokyo 16-2]이다. 이 작품의 특이점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다른 작품들에는 모두 인물이 한 명은 등장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정면의 사진은 컬러로 촬영되었지만, 양측면의 사진은 흑백으로 촬영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필자가 놓친 것이 아니라면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흑백사진인 부분이었다.
필자는 특히 우측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정면의 나무와 우측면의 나무는 모두 하나의 개체임에도 불구하고, 정면에서는 초록빛을 내뿜던 나뭇잎들이 한 모퉁이를 돌았더니 가차없이 흑백의 명암으로 표현된 것이 아닌가?
심지어 접착 부분의 모서리도 녹색 색채로 채워져 있는데 측면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 요소들은 필자가 이 작품에 빠져들도록 유도하였다. 세 번째 특이점은, 좌측면과 우측면 모두 꺾이는 모서리를 기준으로 정면에 대칭인 것이다. 그렇지만, 대칭을 정말 기묘하게 활용한 것은 다음에 소개할 작품이다.
필자에게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인 [Building-82]를 소개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번 오피니언을 마무리하려 한다. 첫 인상이 강렬한 작품은 아니었다. 필자는 본 전시를 5번 정주행하였는데, 필자 역시 감상 첫 바퀴에는 그냥 그랬던 작품으로 다가왔다. 두 번째 바퀴에서도 특징점을 잡아낸 것 같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딱 이 작품만이 가지고 있었던 특징점이 하나 있다.
위의 작품을 반반 나누어 좌측과 우측을 각각 확대하여 촬영해 본 것이다. 혹시 무엇인가 다른 것이 보이는가? 그렇다, 바로 정면에서 정중앙을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되어있다는 것이다.
중앙을 기준으로, 같은 글귀가 우측에는 정방향으로, 좌측에는 역방향으로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였는데, 그랬던 이유는 바로 두 장면이 대칭임에도 불구하고 좌측에는 자전거를 타는 인물을 배치해 두었고, 우측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작품이 대칭성을 띈다는 확신을 더해준 것은 정면의 중앙 하단에 있는 사자상이었다. 사자상의 모습이 하나인 것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색하게 갈라져 있다. 앞서 소개한 드린
작품처럼 모서리가 꺾임에 따라 대칭이 선대칭이 된 것은 있었지만, 갑작스레 정면의 중앙에서 한 선을 기준으로 대칭이 된 것은 이 작품밖에 없었다. 이상으로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별관 MoPS에서 진행중인 <고명근: Space of Contemplation 사유공간> 전시에 관한 오피니언을 마무리하려 한다. 갈 것을 고민하고 있다면 본 전시가 끝나기 전에 꼭 한 번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위의 사진은 미술관 주변에서 서성이던 고양이이다.
[최호용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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