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보통에 대하여 (박혜수 작가)

글 입력 2020.10.1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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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의 나는 미술대학에 진학한지 3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 에요?’라는 식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작품 한 두 점이 시선을 빼앗거나 마음에 든 적은 꽤나 많았지만 해당 작가의 전반적인 작품 흐름이나 가치관 자체가 와 닿고 공감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학교 수업 시간에 좋아하는 작품 혹은 작가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고 그 때 처음으로 박혜수 작가님과 그 분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박혜수 작가님은 자본주의 목적 아래 개인의 삶에서 사라지는 가치에 대해 사색하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리서치 한 후 시각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그런 작가님의 작업 중에서도 ‘보통’ 시리즈는 감히 말하자면 그동안 막연하게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나의 생각을 그대로 구현해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깊이 공감이 갔다.

 

작가님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잣대가 되어버린 ‘보통’이라는 관념의 이중성에 주목하여 ‘보통’에 적용되는 잣대와 가치관들을 시각화하고 관람객 스스로가 생각하는 보통의 의미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유도했다. 내가 관심이 있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주제에 대해 깊이 파고들고 그것을 시각화 하여 관람객들과 소통하고 내 작업을 보며 관람객이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게 내게는 가장 이상적인 작업이었던 터라 단번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Project Dialogue Vol.3 – the Definition of Bo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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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보통의 정의>는 언젠가부터 우리사회의 최소한의 기준이 되어버린 ‘보통’에 대한 연구이다. 작년에 학교에서 박혜수 작가님의 초청강연이 있었는데 작가님이 자신의 작업들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다. 작가님이 ‘보통’이라는 키워드를 이토록 깊게 연구하게 된 계기는 바로 작가님의 어머님과의 대화였다. 어머님은 미대에 진학하여 작가 활동을 하면서도 흔히들 ‘잘 그린다’라 고 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맨날 연구하고 설문 조사하는 작가님이 특이하게 느껴 지셨고, 작가님은 본인 스스로를 이 정도면 보통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셨다고 한다.

 

대학에 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고 이러한 기준들이 사람마다 꽤나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혼란스러워 했었다. 평소에 ‘상식적으로’, ‘인간적으로’, ‘보통은’ 등의 말을 달고 살던 나에게 이러한 가장 근본적인 기준 자체가 흔들리는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보통’ 시리즈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감동과 위안을 느꼈다.

 

 

 

'Average Pole' _2013_ fluorescent lamp, pipe_variable dimen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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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시리즈 중 가장 인상깊었던 작업을 꼽아보자면 ‘Average Pole’이다. 이 작업은 설치작업으로 2013년 통계청 발표 대한민국 남녀 키를 지정하고 있다. 관객들이 이 조명바가 키를 의미한 것을 깨달었을 때 관객들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확실한 표정의 변화가 우리사회에서 사람들이 왜 그토록 평균이 되려 하는지 잘 나타낸다. 조명바가 평균 키 임을 깨달은 관객 중 평균키 이상의 사람들은 갑자기 매우 여유로워지는 반면, 이하의 사람들은 급격하게 위축되는 양상을 보였다. 나는 이 작업이 ‘보통’시리즈의 핵심을 관람객들이 가장 직관적으로 몸으로 느끼게 될 수 있는 작업이라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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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보통검사’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은 사람들은 보통의 반대를 ‘특별함’이 아닌, ‘이상함’으로 인식했고, ‘이상함=나쁜 것’으로 통했다. 때문에 남들 의식하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최소한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여선 안되는 법으로 ‘보통사람’되기를 선택했단 뜻이다. 오죽하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라는 말이 있을까 싶었다.

 

 

[김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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