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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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책 마지막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딸 펄의 대사일 것이다. 펄은 하와이 이민 2세대와 오늘날의 청년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무용을 전공하기 위해 하와이를 떠나 미국 본토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어한다. 반면 하와이에서 대학을 나와 교사가 되길 바라는 엄마 버들에게 펄은 “It’s my life. It’s none of your business!”라고 외치며 전형적인 세대 갈등을 보여준다.
작가는 펄을 통해 “엄마(사진 신부, 이민자)는 가난해서 팔려오거나 일본 없는 세상에서 편히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펄)처럼 꿈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비록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엄마는 매순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라고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책은 일제강점기 하와이 이민자를 다뤘지만 멕시코 이민자의 이야기를 그린 김영하의 <검은 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낸다. 이 책은 여성과 가정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사진 신부는 하와이 내 성비 불균형과 노동자들의 정착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됐다. 당시 일본인 비자 발급은 금지했으나 가족의 입국은 허용했기에 사진을 주고받아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하와이로 입국한 뒤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책에서처럼 여자들은 중매쟁이의 거짓말과 사진에 속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돈을 쓰레받기로 쓸어 담는다, 옷과 신발이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다, 여자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등의 거짓말에 조선의 여성들은 가난뿐만 아니라 유교 사회에서 받는 억압이나 차별에서도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주인공 버들도 2학년을 마치고부터 집안 사정 때문에 학교를 가지 못했고 “내도 핵교 보내줬으면 내 이런 맘 안 묵었을 기다.”(21p)며 하와이로 가길 결심한다.
내가 처음에 책을 읽을 때, 혼인신고를 해서 하와이로 가보니 신랑이 사실은 아빠뻘인 장면을 읽고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내 그 상황이 실제 이야기였던 걸 생각하니 웃음이 부끄러워졌다. 결혼하러 며칠 동안 배를 타고 타국에 도착했는데, 남편은 할아버지이고, 돈을 벌기 위해 갖은 일을 해야 하고, 공부는커녕 가정에서 아빠뻘의 남편을 돌보고 아이를 낳아야만 했다면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사진 신부가 들어온 뒤 하와이 한인 사회의 변화로는 가정이 형성되자 도박이나 마약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사회가 안정된 점이 있다. 가정과 자녀를 통해 한국 문화, 전통, 관습을 재생산할 수 있었고 하와이 내에서 한인 단체, 교회, 학교가 유지되며 독립운동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효과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사진 신부들이 당시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절망했는지 또 생계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고 독립운동에 도움을 주었는지를 주목하는 사람들은 없다. 이금이 작가는 사진 신부를 통해 거둬들인 효과가 아니라 역사 뒤에 감춰진 개인 특히 여성의 주체적인 노력을 주목한다.
당시 여성은 교육을 받기도 어려웠고, 시집을 가면 다른 집안사람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하지만 변화는 조금씩 시작되었다. 버들은 하와이로 향하기 전 묵었던 여관에서 김에스더를 만난다. 최초의 여성 의사인 김에스더는 이름이 왜 에스더냐는 버들의 질문에 “교회에서 세례명을 짓게 됐을 때 내가 고른 거야. 에스더는 자기네 동포를 구한 왕비야. 나도 미국에 가서 공부해 우리 동포를 구할 거야”(65p)라며 신여성의 포부를 보여준다. 당시 조선 여성들의 이름은 대충 지어지거나, 후에 태어날 아들을 바라며 지은 이름들이 많았다. 반대로 남자 형제의 이름엔 가문이나 부모의 뜻이 담겨 있었다. 후에 버들이 딸 아이의 이름을 펄(Pearl)이라고 지었고 은은하고 고귀해 보이는 진주처럼 자라라는 부모의 염원이 담겨있다.
홍주는 사진결혼 때에도 버들과는 달리 신랑감을 직접 고른다. 그녀는 버들과 재봉소를 직접 운영해 돈을 벌고 자동차도 구매한다. 시간이 지나선 미국인 찰리를 만나 사랑하고 결국에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낸다. 홍주는 순정만화에 나오는 고난에도 울지 않는 여주인공보다는 자신의 어려움에 정면으로 맞서고, 실패해도 계속 일어서는 강한 캐릭터이다.
소설 후반부에 세 여자가 자동차를 타고 해안으로 가는 장면은 주체적인 여성의 삶을 상징한다. “와히아와 한인들 중 자동차를 가진 이는 두 사람뿐이었다. 여자 운전자는 다른 민족을 통틀어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고 한인들 중에서는 처음이었다. 바다 건너 조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거기 살았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332p) 집 밖에 나가는 것도 조심스러웠던 조선 여성들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행복을 만드는 여성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 세 주인공 말고도 책에선 독립운동을 돕기 위해 노력했던 여성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버들과 함께 같은 배를 타고 하와이에 온 장명옥은 빅아일랜드 지방회 임원이 되어 독립운동을 돕는다. 이외에도 부인 구제회를 구성한 줄리엄마 등이 등장한다. 작가는 역사책 뒤에 숨겨진 여성들의 노력을 잊거나 사진 신부를 수동적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책은 세대 간의 차이에도 주목한다. 책에 등장하는 버들과 펄 한세대만 해도 인식의 차이가 크다. 현재, 일제강점기 이후 많은 세대가 지났고 당시의 일들은 역사책에서만 볼 수 있는, 동떨어진 이야기라 느낄 수도 있다.
펄은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며 “부모님 나라에 별 관심 없”(336p)다고 말한다. 또한 “자기 이름보다 성을 먼저 쓰는 한인들은 개인보다 가족을, 가족보다 나라를 우선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343p)고 말하며 자신에게 중요한 건 자기라 생각하는 전형적인 현대 청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버들의 아들인 데이비드도 전쟁에 참여하는 이유를 “내가 군대 가려는 건 그래서가 아니에요. 미국을 위해서도 아니고요. 내게는 지금이 기횝니다. 미국 사람들 눈에 나는 일본계라고요, 이럴 때 미국 시민이고 애국자라는 걸 보여줘야 해요. 그래야 나중에 내가 원하는 곳에 취직할 수 있고 성공도 할 수 있어요.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입대하려는 겁니다” (386p)고 말한다.
이는 데이비드의 아버지 태완이 독립운동을 했던 이유와는 정반대이다. “군사핵교에서 독립을 위해 맘이고 몸이고 다 바친다고 선서”(246p)한 태완과 “조선이 친정인기라. 친정이 든든해야 남이 깔보지 몬한다”(204p)는 줄리엄마 등 1세대 이민자들은 나라와 가족을 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2세대들에겐 자기 자신과 가족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던 펄은 “넌 이기적이다, 너 좋은 것만 하려는 거잖아”라는 오빠의 말을 곱씹으며 결국에는 부모 세대를 이해한다. 펄의 마지막 말인 “문득 그런 사람이 내 엄마인 게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의 끝과 끝처럼 세명의 엄마와 나는 이어져 있다. 나는 또 어느 곳에 있든 하와이, 그리고 조선과도 이어져 있다.”(396p)는 부모님, 윗세대를 이해하지 못했던 자식, 현세대 간의 화합 가능성을 암시한다.
역사 공부를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언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암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사건이 점처럼 찍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이야기가 쭉 연결된 선이다. 그리고 그 선은 무수히 많은 사람으로 인해 만들어진다. 조선의 독립에는 “수많은 독립군 중 한 명이었을 뿐 주인공이 아”(354P)닌 태완을 비롯한 많은 독립군이, 하와이 한인 사회에는 사진 한 장에 운명을 걸고 낯선 곳에서 홀로 서야 했던 사진 신부들의 희생들이 숨겨져 있다.
작가는 사건이 아니라 그들의 삶 전체를 비추고, 데이비드와 펄 그리고 우리와 같은 청년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뜨거웠고 주체적이었는지 알려준다. 역사가 시시한 과거 얘기일 뿐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금이 작가에 의해서 다시 태어난, 누구보다 뜨거웠던 세 여자들의 삶을 느껴보길 바란다.
[오지윤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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