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낡은 게 늘 나쁘지만은 않아요 - 조의 아이들

글 입력 2020.10.12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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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해가 따스해지고 있었던 3월 즈음, 그레타 거윅이 새로운 영화를 찍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작은 아씨들이라는 이름을 듣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또?’였다. ‘그레타 거윅’다운 선택이기는 했으나, 2020년에 ‘작은 아씨들’이라니. 나는 속으로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못 쓴 소설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너무 눈에 익은 제목이었을 뿐이다. 아무리 빛이 나는 이야기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 익숙해지기 마련이니까.

 

같은 내용의 영화에조차 크게 관심을 두지 않다가 『조의 아이들』을 읽어보자고 결심한 것은 우습게도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이 곧 넷플릭스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전 내용에 해당하는 소설 『작은 아씨들』은 너무 어릴 때 보아 내용이 가물가물했고, 그래서 『조의 아이들』을 읽기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때, 넷플릭스가 기꺼이 나의 복습을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조의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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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다소 부담스러운 두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펼쳐보면 금방 알게 된다. 메그, 조, 에이미라는 이름들, 익숙한 마치 가의 이름들에 집중하다 보면 페이지는 순식간에 넘어가고, 금세 플럼필드의 소란스러움과 따스함이 손에 잡힐 만큼 생생해진다는 것을. 몇몇은 조금 일찍 떠나야만 했지만, 그래도 전편의 주인공들은 사랑스러운 모습 그대로 자라 책의 중심을 이룬다.

 

『조의 아이들』은 에이미와 로리의 결혼, 그리고 베스의 죽음 등 굵직한 사건들 이후 바에르 교수와 결혼한 조가 플럼필드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워내는 3부(『Little Men』)와 10년 뒤 플럼필드에서 성장한 이 아이들의 삶과 로맨스를 다룬 4부(『Jo’s Boys』)를 합쳐 번역했다.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의 끝에서 조를 비롯한 마치 가의 자매들이 전쟁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위해 기뻐하며 가정이 드디어 평안을 찾았음에 행복해하던 속 깊고 발랄한 어린 여성들이었다면, 『조의 아이들』에서 이들은 갈 곳 없는 아이를 진짜 부모처럼 보듬어주고 이끌어줄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어른으로 자란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내가 이 책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이들을 체벌이 아닌 사랑과 인내로 보살피는 플럼필드의 방식이라든가 인물들이 그려낼 삶의 모습이라는 게 지금 시대에는 너무 이상적이기만 해서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 신앙, 예의 같은 단어는 이제 인기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책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했다. 3부의 이야기는 아버지를 잃고 거리에서 지내던 냇이 플럼필드에 오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냇, 그리고 후에는 비슷한 처지에서 자란 냇의 친구 댄까지, 어린 아이들이 플럼필드에 적응하고 그곳에서 자라는 과정을 보며 예상치 못하게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냇을 비롯한 플럼필드의 모든 아이들은 요란스럽기도 하고, 또 가끔은 꽤 큰 말썽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조와 바에르 교수는 문제를 통해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친다. 말썽과 장난이 금기시된 학교와 문제를 일으키면 처벌을 내리는 지도에 익숙한 내게 플럼필드의 따스함은 낯설었다. 냇, 댄, 토미, 데미, 낸 등 플럼필드에서 자라는 열 세 명의 아이들은 분명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각자 뚜렷한 단점을 지니고 있다. (특별한 재능이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아주 평범한 아이들이라는 뜻이다. 그들이 크게 엇나가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조의 학교가 그들에게 베푼 가르침과 보살핌 덕분일 것이다.

 

플럼필드에서는 아이들을 책망하거나 무섭게 혼내기보다는 그들에게 잘못을 분명히 알려준 뒤, 끝없는 참을성으로 이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게 지도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데도, 그렇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어른을 만나기란 어렵다. 조와 바에르 교수의 사랑을 받으며 선하고 진솔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내가 위로를 얻은 것은 어쩌면 그런 방식의 가르침이 알게 모르게 내게도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내 주변의 어른들은 나를 기르며 무한한 인내와 끈기를 발휘하지는 못했다. 아마 그들도 플럼필드의 방식으로 교육받지는 못했겠지.

 

그래서 냇과 댄이 플럼필드에 받아들여지고, 조와 바에르의 자식과도 같은 존재로 자리 잡는 모든 과정을 보며 나는 마치 나 역시도 플럼필드의 아이들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은 따스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이 플럼필드에서 얻은 새로운 삶, 세상에 태어난 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기회가 내게도 주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참으로 낯설도록 올곧은 위로였다.

 

 

이 작은 꽃밭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했다. 반쯤은 잡초로 덮여 있던 꽃밭이었지만, 애정 어린 손길로 자상하게 보살피기 시작하자 다채로운 푸른 싹이 돋아났다. 온 세상의 어린 마음과 영혼에 가장 필요한 건 사랑과 보살핌이고, 그 따스함은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어나게 해준다. -p.184

 


또 크게 눈에 띈 것은 인물들이 가진 생명력이었다. 이 소설이 어느 정도는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설에서 만난 모든 인물들은 꼭 루이자와 함께 예전에 미국 어딘가에서 진짜로 발붙이고 살았을 것만 같았다. 물론 가끔 죄도 짓고, 실수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은 모두 사랑스러웠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인물은 낸, 그리고 댄이었다. 독립적이고 멋진 여성으로 자란 낸과 거칠지만 진실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삶을 꾸리는 댄의 서사는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

 

『작은 아씨들』, 그리고 『조의 아이들』을 누군가는 뻔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혹은 낡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소박하고 순수한 재미가 어린 삶, 어떤 환경에서도 성실한 기독교적 가치관을 담은 삶의 모습이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는 너무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또 가끔은 내가 사는 시대와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아서 쉽게 공감할 수 없었던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다소 고리타분한 가치를 말하고 있을지라도, 책은 대단한 작품들이 꼭 가져야만 하는 단 한 가지를 놓치지 않고 있다. 바로 자유롭고 열정적인 인간, 가끔은 내면의 무언가와 갈등하기도 하는 인간에 대한 맑은 시선이다.

 

『조의 아이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은 작품이 지나온 세월과는 상관없이, 작가가 얼마나 인간을 사랑했는지, 얼마나 그 선함을 사랑했는지만은 변함없이 독자의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런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진정성 있는 위로로 다가오기도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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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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