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떻게 하면 그 구멍을 메울 수 있을까? [영화]
-
낯설고 먼 어느 곳에서
나는 그녀를 찾고 있었다
그녀를 찾는 이유는
그녀가 나를 찾기 때문이다
문 넘머의 불완전하고
조금은 잔혹한 세상
그런 세상을 좋아하려 노력하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가 정말 좋다
미유는 대학 졸업을 앞둔 채 취직 활동에 쫓기고 있다. 언제나 힘내려는 그녀에게 '나(다루)'와 지내는 시간은 참으로 안락함을 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고양이일 뿐이다.
가족, 친구, 미래 등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 그녀에게 어떠한 조언도 위로도 할 수 없다. 그저, 늘 등을 곧게 펴고 문을 열어 세상을 향해 나가는 그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또한 정말 좋아하는 그녀를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러기엔 '나'와 그녀의 시간은 똑같지 않다.
멀리 있는 건 작고 흐릿하게 가까이 있는 건 또렷하게 보인다. 추억도 마찬가지다. 옛날 일은 흐릿하게 방금 전 일은 또력하게 기억한다. 그랬는데...
요즘은 옛날 일이 방금 전 일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결국 '나'는 그녀의 품을 떠나게 된다.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품 안에서 그녀의 향기를 맡으면서. 그녀를 떠나면서 '나'는 생각한다. 자신의 일생은 행복으로 가득했다고.
그러나 약간의 걱정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녀라고. '나'는 그녀가 결코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약속을 한다. 꼭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 그리고 영화는 다시 첫 장면으로 되돌아간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 흘러가는 시간들>은 27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단편 영화이다. 고양이 '다루'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담은 영화였는데,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인상 깊었다.
어릴 적, 미유의 아버지가 준 물건을 손상시킨 다루를 미유는 엄마 몰래 버리러 나간 적이 있었다. 상자 안에 담긴 채 밖으로 나가게 된 다루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그녀는 나에게 이걸 보여주고 싶었구나'하고 생각한다. 또한 기운 없는 그녀를 위해 도마뱀을 잡아오는 장면에서, 놀란 미유를 보고 다루는 그녀가 기운을 차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고양이 시선으로만 이어지는 영화이기에 평소 해보지 못했던 생각들과 시점을 되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도 들었다. 말을 못 하기에 어쩌면 더 위로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면접에서 떨어진 미유는 힘내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힘내고 있는걸, 미유는 그렇게 말한다. 힘내라는 말은 격려의 말, 위로의 말인 동시에 상대방에게 압박을 주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이미 힘내고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라는 생각까지 들게 하며 오히려 더 기운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 모습을 잘 보여준 거 같다.
영화는 27분 안에 많은 걸 담아낸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미유가 다루와의 관계를 쌓아가며 추억을 만들고 앞으로를 이어가는 이야기. 취직 활동에 부딪힌 청년의 현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것. 많은 걸 담고 있지만 어지럽게 섞이지 않고 잔잔하게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꼭 나이가 많은 다루의 목소리처럼 말이다.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그림체에서부터 잔잔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다시 이것저것으로 바빠진 요즘, 숨을 돌릴만한 게 필요했고 그래서 선택한 영화였다.
27분 안에 무슨 이야기가 제대로 담기기나 할까, 그냥 그림만 보는 거지했던 생각과 달리, 생각 외로 내게 큰 힘을 줬다. 어떻게 하면 미유의 구멍을 메울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돌아오겠다고 한 다루에게. 힘내라는 말조차 할 수 없는 다루에게, 위로를 받은 영화였다.
[김승윤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